문득 제비와 같이 경쾌하게 전보 배달의 자전거가 지나간다. 그의 허리에 찬 조그만 가방 속에 어떠한 인생이 압축되어 있을 것인고. 불안과 초조와 기대와, ... 그 조그만 종이 위의, 그 짧은 문면(文面)은 그렇게도 용이하게 또 확실하게 사람의 감정을 지배한다.

사람은 제게 온 전보를 받아들 때 그 손이 가만히 떨림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구보는 갑자기 자기에게 온 한 장의 전보를 그 봉함(封緘)을 떼지 않은 채 손에 들고 감동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전보가 못되면, 보통 우편물이라도 좋았다. 이제 한 장의 엽서에라도, 구보는 거의 감격을 가질 수 있을 게다.

흥, 하고 구보는 코웃음쳐 보았다. 그 사상은 역시 성욕의, 어느 형태로서의 한 발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물론 이 결코 부자연하지 않은 생리적 현상을 무턱대고 업신여길 의사는 구보에게 없었다. 사실 서울에 있지 않은 모든 벗을 구보는 잊은 지 오래였고 또 그 벗들도 이미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여 오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지금 무엇들을 하구 있을구. 한 해에 단 한 번 연하장을 보내줄 따름의 벗에까지 문득 구보는 그리움을 가지려 한다. 이제 수천 매의 엽서를 사서, 그 다방 구석진 탁자 위에서... 어느 틈엔가 구보는 가장 열정을 가져 벗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보았다.

한 장 또 한 장, 구보는 재떨이 위에 생담배가 타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그가 기억하고 있는 온갖 벗의 이름과 또 주소를 엽서 위에 흘려 썼다. 구보는 거의 만족한 웃음조차 입가에 띄우며, 이것은 한 개 단편소설의 결말로는 결코 비속하지 않다 생각하였다. 어떠한 단편소설의... 물론 구보는 아직 그 내용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어떻든 벗들의 편지가 참말 보고 싶었다. 누가 내게 그 기쁨을 주지는 않는가. 문득 구보의 걸음이 느려지며, 그 동안 집에 편지가 와 있지를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가장 뜻하지 않았던 옛 벗으로부터의 열정이 넘치는 글이나 아닐까, 하고 제 맘대로 꾸며 생각하고 그리고 물론 그것이 얼마나 근거 없는 생각인줄 알았어도, 구보는 그 애달픈 기쁨을 그렇게 가혹하게 깨뜨려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벗에게서 온 편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혹은 어느 신문사나 잡지사... 그러면 그 인쇄된 봉투에 어머니는 반드시 기대와 희망을 갖고, 그것이 아들에게 무슨 크나큰 행운이나 약속하고 있는 거나 같이 몇 번씩 놓았다 들었다 또는 전등불에 비추어 보았다...

그리고 기다려도 안 들어오는 아들이 편지를 늦게 보아 그만 그 행운을 놓치고 말지나 않을까, 그러한 경우까지를 생각하고 어머니는 안타까워 할 게다. 그러나 가엾은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감동을 가진 그 서신이 급기야 뜯어보면, 신문 1회 분의, 혹은 잡지 한 페이지 분의 잡문의 의뢰이기 쉽다.

구보는 쓰디쓰게 웃고 다방 안으로 들어선다. 사람은 그곳에 많았어도, 벗은 있지 않았다. 그는 이제 이곳에서 벗을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