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갔다 오니, 구보는 웃는 얼굴을 짓기에 바쁘다. 어느 벗의 조카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구보가 안경을 썼대서 언제든 눈깔 아저씨라 불렀다. 야시 갔다 오는 길이라우. 그런데 왜 요새 토옹 집에 안 오우, 눈깔 아저씨. 응, 좀 바빠서...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었다. 구보는 순간에 자기가 거의 달포 이상을 완전히 이 아이들을 잊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에서 찾아내고 이 천진한 소년들에게 참말 미안하다 생각했다. 가엾은 아이들이다. 그들은 결코 아버지의 사랑을 몰랐다. 그들의 아버지는 다섯 해 전부터 어느 시골서 따로 살림을 차렸고, 그들은, 그래 거의 완전히 어머니의 손으로만 길리웠다
어머니에게 허물은 없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아버지도 말하자면 착한 이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역시 여자에 대하여 방종성이 있었다. 극도의 생활난 속에서, 그래도 어머니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열 여섯짜리 큰딸과, 아래로 삼 형제. 끝의 아이는 명년에 학령이었다. 삶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면서도 그 애마저 보통학교에 입학시킬 것을 어머니가 기쁨 가득히 말하였을 때, 구보의 머리는 저도 모르게 숙여졌었다.
구보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기를 좋아한다. 때로 그는 아이들에게 아첨하기조차 하였다. 만약 자기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생각만 하여볼 따름으로도 외롭고 또 애달팠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게도 단순하다.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반드시 따랐다.
눈깔 아저씨, 우리 이사한 담에 언제 왔수. 바루 저 골목 안이야. 같이 가아, 응. 가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역시 시간을 생각하고, 벗을 놓칠 것을 염려하고, 그는 이내 그것을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찌할꾸. 구보는 저편에 수박 실은 구루마를 발견하였다.
너희들, 배탈 안났니. 아아니, 왜 그러우. 구보는 두 아이에게 수박을 한 개씩 사서 들려주고, 어머니 갖다 드리구 나눠줍쇼. 그래라. 그리고 덧붙여, 쌈 말구 똑같이들 나눠야 한다.
생각난듯이 큰 아이가 보고하였다. 지난 번에 필운이 아저씨가 바나나를 사왔는데, 누나는 배탈이 나서 먹지를 못했죠, 그래 막까시를 올렸드니만... 구보는 그 말괄량이 소녀의, 거의 올가망이 된 얼굴을 눈앞에 그려보고 빙그레 웃었다. 마침 앞을 지나던 한 여자가 날카로웁게 구보를 흘겨보았다.그의 얼굴은 결코 어여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이 그리 났는지, 그는 얼굴 전면에 대소 수십 편의 삐꾸를 붙이고 있었다. 응당 여자는 구보의 웃음에서 모욕을 느꼈을 게다. 구보는 갑자기 홍소하였다. 어쩌면 이제 구보는 명랑하여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집으로 자꾸 가자는 아이들을 달래어 보내고, 구보는 다방으로 향한다. 이 거리는 언제든 밤에 행인이 드물었고, 전차는 한길 한복판을 가장 게으르게 굴러갔다. 결코 환하지 못한 이 거리, 가로수 아래 한두 명의 부녀들이 서고, 혹은 앉아 있었다.
그들은 물론 거리에 몸을 파는 종류의 여자들은 아니었을 게다. 그래도 이, 밤들면 언제든 쓸쓸하고, 또 어두운 거리 위에 그것은 몹시 음울하고도 또 고혹적인 존재였다. 그렇게도 갑자기 부란(腐爛)된 성욕을, 구보는 이 거리 위에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