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을

찾는 사람들은, 어인 까닭인지 모두들 구석진 좌석을 좋아하였다. 구보는 하나 남아 있는 가운데 탁자에 가 앉은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그곳에서 '엘만'의 '발스 세티멘털'을 가장 마음 고요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선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약무인한 소리가 구포씨, 아니요...

구보는 다방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에 느끼며,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중학을 2, 3년 일찍 마친 사나이. 어느 생명보험회사의 외교원이라는 말을 들었다. 평소에 결코 왕래가 없으면서도 이제 이렇게 아는 체를 하려는 것은 오직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먹은 술 탓인지도 몰랐다.

구보는 무표정한 얼굴로 약간 끄떡하여 보이고 즉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사나이가 또 한번, 역시 큰 소리로, 이리 좀 안 오시요, 하고 말하였을 때, 구보는 게으르게나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탁자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 좀 앉으시요. 참, 최군, 인사하지. 소설가, 구포씨.

이 사나이는, 어인 까닭인지 구보를 반드시 '구포'라고 발음하였다. 그는 맥주병을 들어 보고, 아이 쪽을 향하여 더 가져오라고 소리치고, 다시 구보를 보고, 그래 요새두 많이 쓰시우. 무어 별로 쓰는 것 없습니다.

구보는 자기가 이러한 사나이와 접촉을 가지게 된 것에 지극한 불쾌를 느끼며, 경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와 사이에 간격을 두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딱한 사나이는 도리어 그것에서 일종 득이감을 맛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한 잔 십 전짜리 차들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그렇게 몇 병씩 맥주를 먹을 수 있는 것에 우월감을 갖고 그리고 지금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구보에게 술을 따라 권하고 내 참, 구포 씨 작품을 애독하지. 그리고 그러한 말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보가 아무런 감동도 갖지 않는 듯 싶은 것을 눈치채자,

"사실, 내 또 만나는 사람마다 보구, 구포 씨를 선전하지요."

그러한 말을 하고는 혼자 허허 웃었다. 구보는 의미몽롱한 웃음을 웃으며, 문득 이 용감하고 또 무지한 사나이를 고급으로 채용하여 구보 독자 권유원(仇甫讀者勸誘員)을 시키면, 자기도 응당 몇십 명의 독자를 획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런 난데없는 생각을 하여 보고 그리고 혼자 속으로 웃었다.

참 구포 선생, 하고 최군이라 불리운 사나이도 말참견을 하여, 자기가 독견(獨鵑)의 <승방비곡>과 윤백남의 <대도전(大盜傳)>을 걸작이라 여기고 있는 것에 구보의 동의를 구하였다. 그리고, 이 어느 화재보험회사의 권유원인지도 알 수 없는 사나이는, 가장 영리하게,

"물론 선생의 작품은 따루 치고..."

그러한 말을 덧붙였다. 구보가 간신히 그것들을 좋은 작품이라 말하였을 때, 최군은 또 용기를 얻어, 참 조선서 원고료는 얼마나 됩니까. 구보는 이 사나이가 원호료라 발음하지 않는 것에 경의를 표하였으나 물론 그는 이러한 종류의 사나이에게 조선 작가의 생활 정도를 알려 주어야 할 아무런 의무도 갖지 않는다.

그래, 구보는 혹은 상대자가 모멸을 느낄지도 모를 것을 알면서도 불쑥, 자기는 이제까지 고료라는 것을 받아 본 일이 없어, 그러한 것은 조금도 모른다고 말하고, 마침 문을 들어서는 벗을 보자 그만 실례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어라 말할 수 있기 전에 제자리로 돌아와 노트와 단장을 집어들고, 마악 자리에 앉으려는 벗에게,

"나갑시다. 다른 데로 갑시다."

밖에, 여름 밤, 가벼운 바람이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