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웃을 때마다, 말할 때마다, 언제든 수건 든 손으로 자연을 가장하여 그의 입을 가린다. 사실 그는 특히 입이 모양 없게 생겼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구보는 그 마음에 동정과 연민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애정과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연민과 동정은 극히 애정에 유사하면서도 그것은 결코 애정일 수 없다.
그러나 증오... 증오는 실로 왕왕 진정한 애정에서 폭발한다... 일찍이 그의 어느 작품에서 사용하려다 말았던 이 일절은 구보의 옅은 경험에서 추출된 것에 지나지 않았어도, 그것은 혹은 진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객쩍은 생각을 구보가 하고 있었을 때, 문득 또 한 명의 계집이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럼 이 세상에서 정신병자 아닌 사람은 선생님 한 분이겠군요. 구보는 웃고, 왜 나두... 나는, 내 병은,
"다변증(多辯症이)라는 거라우."
"무어요. 다변증..."
"응, 다변증. 쓸데없이 잔소리 많은 것두 다아 정신병이라우."
다른 두 계집도 입 안 말로 '다변증'하고 중얼거려 보았다. 구보는 속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서 공책 위에다 초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관찰은 무엇에든지 필요하였고, 창작의 준비는 비록 카페 안에서라도 하여야 한다. 여급은 온갖 종류의 객을 대함으로써 온갖 지식을 얻으려 노력하였다.
잠깐 펜을 멈추고, 구보는 건너편 탁자를 바라보다가 또 가만히 만족한 웃음을 웃고, 펜 잡은 손을 놀린다. 벗이 상반신을 일으키어 또 무슨 궁상맞은 짓을 하는 거야... 그리고 구보가 쓰는 대로 그것을 소리내어 읽었다.
여자는 남자와 마주 대하여 앉았을 때, 그 다리를 탁자 밖으로 내어놓고 있었다. 남자의 낡은 구두가 탁자 밑에서 그의 조그만 모양 있는 숙녀화를 밟을 것을 염려하여서가 아닐 게다. 그는 오늘 그가 그렇게도 사고 싶었던 살빛 나는 비단 양말을 신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웠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흥, 하고 벗은 코로 웃고 그리고 소설가와 벗할 것이 아님을 깨달았노라 말하고 그러나 부대 별의 별것을 다 쓰더라도 나의 음주 불감증은 얘기 말우... 그리고 그들은 유쾌하게 웃었다.
구보와 벗과
그들의 대화의 대부분을, 물론 계집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능히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던 듯이 가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죄가 아니었고, 또 사람은 그들의 무지를 비웃어서는 안 된다. 구보는 펜을 잡았다. 무지는 노는 계집들에게 있어서, 혹은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나 아닐까.
그들이 총명할 때, 그들에게는 괴로움과 아픔과 쓰라림과... 그 온갖 것이 더하고, 불행은 갑자기 나타나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게다. 순간 순간에 그들이 맛볼 수 있은 기쁨을, 다행함을, 비록 그것이 얼마나 값없는 물건이더라도, 그들은 무지라야 비로소 가질 수 있다. 마치 그것이 무슨 질리나 되는 듯이, 구보는 노트에 초하고 그리고 계집이 권하는 술을 사양 안했다.
어느 틈엔가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만한 비다. 은근한 비다. 그렇게 밤늦어, 그렇게 은근히 비 내리면, 구보는 때로 애달픔을 갖는다. 계집들도 역시 애달픔을 가졌다. 그들은 우산의 준비가 없이 그들의 단벌 옷과, 양말과 구두가 비에 젖을 것을 염려하였다.
우끼짱...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취성이 들려왔다. 구보는 창 밖 어둠을 바라보며, 문득 한 아낙네를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것은 '우끼'... 눈이 그에게 준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광교 모퉁이 카페 앞에서, 마침 지나가는 그를 적은 소리로 불렀던 아낙네는 분명히 소복을 하고 있었다.
"말씀 좀 여쭤 보겠습니다."
여인은 거의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말라고 걸음을 멈추는 구보를 곁눈에 느꼈을 때, 그는 곧 외면하고, 겨우 손을 내밀어 카페를 가리키고 그리고,
"이 집에서 모집한다는 것이 무엇이에요."
카페 창 옆에 붙어 있는 종이에 여급 대모집. 여급 대모집 두줄로 나누어 쓰여 있었다. 구보는 새삼스러이 그를 살펴보고, 마음에 아픔을 느꼈다. 빈한은 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제 자신 일거리를 찾아 거리에 나오지 않아도 좋았을 게다. 그러나 불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와, 그는 아직 새로운 슬픔을 가슴에 품은 채 거리에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일 게다.
그에게는 거의 장성한 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이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던 까닭에 가엾은 이 여인은 제 자신 입에 풀칠하기를 꾀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게다. 그의 처녀 시대에 그는 응당 귀하게 아낌을 받으며 길리웠을지도 모른다. 그의 핏기 없는 얼굴에는 기품과 또 거의 위엄조차 있었다.
구보가 말을 삼가 여급이라는 것을 주석할 때 그러나 그 분명히 마흔이 넘었을 아낙네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혐오와 절망을 얼굴에 나타내고, 구보에게 목례한 다음 초연히 그 앞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