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틈엔가 구보는 조선은행 앞에까지 와 있었다. 이제 어디로,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었다. 그러면 어디로... 구보가 또다시 고독과 피로를 느꼈을 때, 약 칠해 신으시죠 구두에. 구보는 혐오의 눈을 가져 그 사나이를, 남의 구두만 항상 살피며 그곳에 무엇이든 결점을 잡아내고야마는 그 사나이를 흘겨보고,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일면식도 없는 나의 구두를 비평할 권리가 그에게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거리에서 그에게 온갖 종류의 불유쾌한 느낌을 주는, 온갖 종류의 사물의 사물을 저주하고 싶다 생각하며, 그러나 문득 구보는 이러한 때, 이렇게 제 몸을 혼자 두어 두는 것에 위험을 느낀다. 누구든 좋았다. 벗과, 벗과 같이 있을 때, 구보는 얼마쯤 명랑할 수 있었다. 혹은 명랑을 가장할 수 있었다.

마침내 그는 한 벗을 생각해 내고, 길가 양복점을 들어가 전화를 빌렸다. 다행하게도 벗은 아직 사(社에) 남아 있었다. 바로 지금 나가려든 차야, 하고 그는 말했다. 구보는 그에게 부디 다방으로 와주기를 청하고, 그리고 잠깐 또 할 말을 생각하다가, 저편에서 전화를 끊어버릴 것을 염려하여, 당황하게 덧붙여 말했다.

"꼭 좀, 곧 좀, 오..."

다행하게도

다시 돌아간 다방 안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또 문득 생각하고 둘러보다, 그 벗 아닌 벗도 그곳에 있지 않았다. 구보는 카운터 가까이 자리를 잡고 앉아, 마침 자기가 사랑하는'스키퍼'의 '아이 아이 아이'를 들려주는 이 다방에 애정을 갖는다.

그것이 허락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는 지금 앉아 있는 등의자를 안락 의자로 바꾸어, 감미한 오수를 즐기고 싶다. 이제 그는 그의 앞에, 아까의 신기료 장수를 보더라도 고요한 마음을 가져 그를 용납하여 줄 수 있을 게다.

조그만 강아지가 저편 구석에 앉아, 토스트를 먹고 있는 사나이의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구두코를 핥고 있었다. 그 사나이는 발을 뒤로 물리며, 휘 휘, 강아지를 쫓았다. 강아지는 연해 꼬리를 흔들며 잠깐 그 사나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돌아서서 다음 탁자 앞으로 갔다.

그곳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는, 그는 확실히 개를 무서워하는 듯 싶었다. 다리를 잔뜩 웅크리고 얼굴빛조차 변하여 가지고, 그는 크게 뜬 눈으로 개의 동정만 살폈다. 개는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그러나 저를 귀해주고 안 해주는 사람을 용하게 가릴 줄이나 아는 듯이,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또 옆 탁자로 갔다.

그러나 구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그곳이 잘 안 보였다. 어떠한 대우를 그 가엾은 강아지가 그곳에서 받았는지 그는 모른다. 그래도 어떻든 만족한 결과는 아니었든 게다. 강아지는 다시 그곳을 떠나, 이제는 사람들의 사랑을 구하기를 아주 단념이나 한듯이 구보에게서 한 칸통쯤 떨어진 곳에 가 네 발을 쭉 뻗고 모로 쓰러져버렸다.

강아지의 반쯤 감은 두 눈에는 고독이 숨어 있는 듯 싶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모든 것에 대한 단념도 그곳에 있는 듯 싶었다. 구보는 그 강아지를 가여웁다 생각한다. 저를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일지라도 다방 안에 있음을 알려 주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문득 자기가 이제까지 한 번도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거나, 또는 그가 핥는대로 손을 맡기어 둔다거나, 그러한 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한 일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내고, 손을 내밀어 그를 불렀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휘파람을 분다. 그러나 원래 구보는 휘파람을 안 분다. 잠깐 궁리하다가, 마침내 그는 개에게만 들릴 정도로 '캄, 히어' 하고 말해 본다.

강아지는 영어를 해득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머리를 들어 구보를 쳐다보고 그리고 아무 흥미도 느낄 수 없는 듯이 다시 머리를 떨어뜨렸다. 구보는 의자 밖으로 몸을 내밀어, 조금 더 큰 소리로, 그러나 한껏 부드러웁게, 또 한 번, '캄, 히어' 그리고 그것을 번역하였다. '이리 온'

그러나 강아지는 먼젓번 동작을 또 한번 되풀이하였을 따름. 이번에는 입을 벌려 하품 비슷한 짓을 하고 아주 눈까지 감는다. 구보는 초조와, 또 일종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맛보며, 그래도 그것을 억제하고, 이번에는 완전히 의자에서 떠나,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강아지는 진저리치게 놀라 몸을 일으켜 구보에게 향하여 적대적 자세를 취하고, 캥, 캐캥하고 짖고 그리고 제풀에 질겁을 하여 카운터 뒤로 달음질쳐 들어갔다.

구보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강아지의 방정맞은 성정을 저주하며, 수건을 꺼내어 땀도 안 난 이마를 두루 씻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당부하였건만, 곧 와주지 않는 벗에게조차 그는 가벼운 분노를 느끼지 않으면 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