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의

오후 두 시,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그곳 동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이야기를 하고, 또 레코드를 들었다. 그들은 거의 다 젊은이들이었고 그리고 그 젊은이들은 그 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기네들은 인생에 피로한 것같이 느꼈다.

그들의 눈은 그 광선이 부족하고 또 불균등한 속에서 쉴 사이 없이 제 각각의 우울과 고달픔을 하소연한다. 때로 탄력 있는 발소리가 이 안을 찾아들고 그리고 호화로운 웃음소리가 이 안에 들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방에 깃들인 무리들은 그런 것을 업신여겼다.

구보는 아이에게 한 잔의 가배 차와 담배를 청하고 구석진 등 탁자로 갔다. 나는 대체로 얼마가 있으면... 그의 머리 위에 한 장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어느 화가의 '도구류별전'. 구보는 자기에게 양행비가 있으면, 적어도 지금 자기는 거의 완전히 행복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격에라도... 동경도 좋았다.

구보는 자기가 떠나온 뒤의 변한 동경이 보고 싶다 생각한다. 혹은 더 좀 가까운 데라도 좋았다. 지극히 가까운 데라도 좋았다. 오십 리 이내의 여정에 지나지 않더라도, 구보는 조그만 '슈케이스'를 들고 경성 역에 섰을 때, 응당 자기는 행복을 느끼리라 믿는다. 그것은 금전과 시간이 주는 행복이다.

구보에게는 언제든 여정에 오르려면, 오를 수 있는 시간의 준비가 있었다. 구보는 차를 마시며, 약간의 금전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온갖 행복을 손꼽아 보았다. 자기도, 혹은 8원 40전을 가지면, 우선 조그만 한 개의, 혹은 몇 개의 행복을 가질 수 있을 게다. 구보는 그러한 제 자신을 비웃으려 들지 않았다. 오직 고만한 돈으로 한때, 만족할 수 있는 그 마음은 애달프고 또 사랑스럽지 않은가.

구보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자기가 원하는 최대의 욕망은 대체 무엇일고 하였다. 석천탁목은 화롯가에 앉아 곰방대를 닦으며, 참말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꾸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있을 듯 하면서도 없었다. 혹은 그럴 게다. 그러나 구태여 말하여, 말할 수 없을 것도 없을 게다.

'원차마경의 구여붕우공폐지이무감'은 자로의 뜻이요, '좌상객상만 회중주불공'은 공융의 원하는 바였다. 구보는 저도 역시, 좋은 벗들과 더불어 그 즐거움을 함께 하였으면 한다.

갑자기 구보는 벗이 그리워진다. 이 자리에 앉아 한 잔의 차를 나누며, 또 같은 생각 속에 있고 싶다 생각한다.

구둣발 소리가 바깥 포도를 걸어 와, 문 앞에 서고, 그리고 다음에 소리도 없이 문이 열렸다. 그러나 그는 구보의 벗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두 사람은 거의 일시에 머리를 돌리고 그리고 구보는 그의 고요한 마음속에 음울을 갖는다.

그 사나이와

구보는 일찍이 인사를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공교롭게 어두운 거리에서였다. 한 벗이 그를 소개하였다. '말씀은 많이 들었었습니다'하고 그는 말하였었다. 사실 그는 구보의 이름과 또 얼굴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구보는, 구보는 그를 몰랐다. 물론 채 어두운 곳에서 그대로 헤어져 버린 구보는, 뒤에 그를 만나도 그를 그라고 알아내지 못하였다. 그 사나이는 구보가 자기를 보고도 알은 체 안 하는 것에 응당 모욕을 느꼈을 게다.

자기를 자기라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것이라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평온할 수 없었을 게다. 그러나 구보는, 구보는 몰랐고 모르면 태연할 수 있다. 자기를 볼 때마다 황당하게 또 불쾌하게 시선을 돌리는 그 사나이를, 구보는 오직 괴이하게만 여겨왔다. 괴이하게만 여겨 오는 동안은 그래도 좋았다. 마침내 구보가 그를 그라고 알아낼 수 있었을 때, 그것은 그의 마음에 암영을 주었다.

그 뒤부터 구보는 그 사나이와 시선이 마주치면, 역시 당황하게 그리고 불안하게 고개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여 놓는다. 구보는 다방 안의 한 구획을 그의 시야 밖에 두려 노력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섭의 번거러움을 새삼스러이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구보는 백동화를 두 푼 탁자 위에 놓고 그리고 공책을 들고 그 안을 나왔다. 어디로... 그는 우선 부청 쪽으로 향하여 걸으며, 아무튼 벗의 얼굴이 보고 싶다 생각하였다. 구보는 거리의 순서로 벗들을 마음속에 헤아려 보았다. 그러나 이 시각에 집에 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