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구보는 벗의 누이에게 짝사랑을 느낀 일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저녁, 그가 벗을 찾았을 째, 문간으로 그를 응대하러 나온 벗의 누이는, 혹은 정말 나이 어린 구보가 동경의 마음을 갖기에 알맞도록 아름답고 깨끗하였는지도 모른다.
열 다섯 살 짜리 문학 소년은 그를 사랑하고 싶다 생각하고, 뒷날 그와 결혼할 수 있다 하면 응당 자기는 행복이리라 생각하고, 자주 벗을 찾아가 그와 만날 기회를 엿보고, 혹 만나면 저 혼자 얼굴을 붉히고 그리고 돌아와 밤늦게 여러 편의 연애시를 초하였다. 그가 자기보다 세 살이나 위라는 것을 생각할 때, 구보의 마음은 불안하였다.
자기가 한 여자의 앞에서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여도 결코 서투르지 않을 나이가 되었을 때, 여자는 이미 그 전에 다른 더 나이 먹은 이의 사랑을 용납해 버릴게다. 그러나 구보가 그것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도 강구할 수 있기 전에, 여자는 참말 나이 먹은 남자의 품으로 갔다.
열 입곱 살 먹은 구보는, 자기의 마음이 퍽이나 괴로웁고 슬픈 것같이 생각하여 들고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들의 행복을, 특히 남자의 행복을 빌려 들었다. 그러한 감정은 그가 읽은 문학서류에 얼마든지 쓰여 있었다. 결혼비용 삼천 원, 신혼여행은 동경으로, 관수동에 그들 부처를 위하여 개축된 집은 행복을 보장하는 듯 싶었다. 이번 봄에 들어서서, 구보는 벗과 더불어 그들을 찾았다.
이미 두 아이의 어머니인 여인 앞에서 구보는 얼굴을 붉히는 일없이 평범한 이야기를 서로 할 수 있었다. 구보가 일곱 살 먹은 사내아이를 영리하다고 칭찬하였을 때, 젊은 어머니는 그러나 그애가 이 골목 안에서는 그중 나이 어림을 말하고 그리고 나이 먹은 아이들이란, 저희보다 적은 아이에게 대하여 얼마든지 교활할 수 있음을 한탄하였다.
언제든 딱지를 가지고 나가서는 최후의 한 장까지 빼앗기고 들어오는 아들이 민망하여, 하루는 그 뒤에 연필로 하나하나 표를 하여 주고 그것을 또 다 잃고 돌아왔을 때, 그는 골목 안의 아이들을 모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딱지에서 원래의 내 아이 물건을 가리어 내어, 거의 모조리 회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젊은 어머니는 일종의 자랑조차 가지고 구보에게 들려주었었다.
구보는 가만히 한숨 짓는다. 그가 그 여인을 아내로 삼을 수 없었던 것은 결코 불행이 아니었다. 그러한 여인은, 혹은 한평생을 두고 구보에게 행복이 무엇임을 알 기회를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조선 은행 앞에서 구보는 전차를 내려 장곡천정으로 향한다. 생각에 피로한 그는 이제 마땅히 다방에 들러 한 잔의 홍차를 즐겨야 할 것이다.
몇 점이나 되었나. 구보는 그러나 시계를 갖지 않았다. 갖는다면 그는 우아한 회중시계를 택할게다. 손목시계 - 그것은 소녀 취미에나 맞을게다. 구보는 그렇게도 손목시계를 갈망하던 한 소녀를 생각하였다. 그는 동리에 전당 나온 십팔금 손목시계를 탐내고 있었다. 그것은 4원 80전에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시계 말고 치마 하나를 해 입을 수 있을 때에, 가지는 행복의 절정에 이를 것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벰베르크' 실로 짠 보일 치마, 3원 60전. 하여튼 8원 40전이 있으면, 그 소녀는 완전히 행복일 수 있었다. 그러나 구보는 그 결코 크지 못한 욕망이 이루어졌음을 듣지 못했다. 구보는 자기는 대체 얼마를 가져야 행복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