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아들이 제 방에서 나와, 마루 끝에 놓인 구두를 시고, 기둥 못에 걸린 단장을 꺼내 들고 그리고 문간으로 향하여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 가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중문 앞까지 나간 아들은, 혹은 자기의 한 말을 듣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또는 아들의 대답소리가 자기의 귀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이번에는 중문 밖에까지 들릴 목소리를 내었다.

"일즉어니 들어오너라."

역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중문이 소리를 내어 열려지고, 또 소리를 내어 닫혀졌다. 어머니는 얇은 실망을 느끼려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려 한다. 중문 소리만 크게 나지 않았으면, 아들의'네' 소리를, 혹은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다시 비누질을 하며, 대체 그대는 매일 어딜 그렇게 가는 겐가, 하고 그런 것을 생각하여 본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 여섯 살 짜리 아들은 늙은 어머니에게는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거리였다. 우선 낮에 한번 집을 나서면 아들은 밤늦게나 되어 돌아왔다. 늙고 쇠약한 어머니는 자리도 깔지 않고, 맨바닥에가 팔을 괴고 누어 아들을 기다리다가 곧잘 잠이 든다.

편안하지 못한 잠을 두 시간씩 세 시간씩 계속될 수 없다. 잠깐 잠이 들었다 깰 때마다, 어머니는 고개를 들어 아들의 방을 바라보고, 그리고 기둥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다. 자정- 그리 늦지는 않았다. 이제 아들은 돌아올게다.

어머니는 아들이 어서 돌아와 자라고 빌며, 또 어느 틈엔가 꼬박 잠이 든다.

그가 두 번째 잠을 깨는 것은 새로 한 점 반이나 두 점, 그러한 시각이다. 아들의 방에는 그저 불이 켜 있다. 아들은 잘 때면 반드시 불을 끈다. 그러나 혹은 어느 틈엔가 아들은 돌아와 자리에 누워 책이라도 읽고 있는 게 아닐까.

아들에게는 그런 버릇이 있다. 어머니는 소리 안 나게 아들의 방 앞에까지 걸어가 가만히 안을 엿듣는다. 마침내 어머니는 방문을 열어 보고 입때 웬일일까, 호젓한 얼굴을 하고, 다시 방문을 닫으려다 말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나이 찬 아들의 기름과 분 냄새 없는 방이, 늙은 어머니에게는 애달펐다. 어머니는 초저녁에 깔아 놓은 채 그대로 있는 아들의 이부자리와 베개를 바로 고쳐 놓고, 그리고 그 옆에가 앉아 본다. 스물 여섯 해를 길렀어도 종시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자식이었다.

설혹 스물 여섯 해를 스물 여섯 곱하는 일이 있다더래도 어머니의 마음은 늘 걱정으로 차리라. 그래도 어머니는 그가 작은며느리를 보면, 이렇게 밤늦게 한 가지 걱정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참, 이애는 왜 장가를 들려구 안하는 겐구."

언제나 혼인 말을 꺼내면, 아들은 말하였다.

"돈 한푼 없이 어떻게 기집을 먹여 살립니까?"

"하지만... 어떻게 도리야 있느니라. 어디 월급쟁이가 되드래두, 두 식구 입에 풀칠이야 못헐라구..."

어머니는 어디 월급자리라도 구할 생각은 없이, 밤낮으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혹은 공연스리 밤중까지 쏘다니고 하는 아들이 보기에 딱하고 또 답답하였다.

'그래두 장가를 들어 놓면 맘이 달러지지.'

'제 계집 귀여운 줄 알면, 자연 돈벌 궁릴 하겠지.'

작년 여름에 아들은 한'색시'를 만나본 일이 있다. 그 애면 저두 싫다구는 않겠지. 이제 이놈이 들어오거든 단단히 다져보리라... 그리고 어머니는 어느 틈엔가 손주 자식을 눈앞에 그려보기조차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