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벗이 왔다. 그렇게 늦게 온 벗을 구보는 책망할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으나, 그보다 먼저 진정 반가워하는 빛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사실 그는, 지금 벗을 가진 몸의 다행함을 느낀다.

그 벗은 시인이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건장한 육체와 또 먹기 위하여 어느 신문사 사회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때로 구보에게 애달픔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래도 그와 대하고 있으면, 구보는 마음속에 밝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나, 소다스이를 다우."

벗은 즐겨 음료 조달수(曺達水)를 취하였다. 그것은 언제든 구보에게 가벼운 쓴웃음을 준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적어도 불쾌한 감정은 아니다.

다방에 들어오면, 여학생이나 같이 조달수를 즐기면서도 그래도 벗은 조선문학 건설에 가장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하루에 두 차례씩, 종로서와, 도청과, 또 체신국엘 들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한 개의 비참한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땅히 시를 초하여야만 할 그의 만년필을 가져, 그는 매일같이 살인 강도와 방화 범인의 기사를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 이렇게 제 자신의 시간을 가지면, 그는 억압당하였던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쏟아 놓는다.

오늘은 주로 구보의 소설에 대하여서였다. 그는 즐겨 구보의 작풍을 읽는 사람의 하나이다. 그리고 또 즐겨 구보의 작품을 비평하려드는 독지가였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후의에도 불구하고, 구보는 자기 작품에 대한 그의 의견에 그다지 신용을 두고 있지 않았다. 언젠가 벗은 구보의 그리 대단하지 않은 작품을 오직 한 개 읽었을 따름으로, 구보를 완전히 알 수나 있었던 것같이 생각하고 있는 듯 싶었다.

오늘은 그러나 구보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벗은, 요사이 구보가 발표하고 있는 작품을 가리켜 작가가 그의 나이 분수보다 엄청나게 늙었음을 말했다. 그러나 그분이면 좋았다. 벗은 또, 작가가 정말 늙지는 않았고, 오직 늙음을 가장하였을 따름이라고 단정하였다.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

구보에게는 그러한 경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이 오직 가장에 그치고, 그리고 작가가 정말 늙지 않았음은 오히려 구보가 기꺼하여 마땅할 일일 게다.

그러나 구보는 그의 작품 속에서 젊을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만약 구태여 그러려 하면 벗은, 이번에는 작가가 무리로 젊음을 가장하였다고 말할게다.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구보의 마음을 슬프게 하여 줄게다.

어느 틈엔가 구보는 그 화제에 권태를 깨닫고 그리고 저도 모르게 '다섯 개의 임금(林檎 - 능금. 사과를 말한다 - 편집자 주*)' 문제를 풀려 들었다. 자기가 완전히 소유한 다섯 개의 임금을 대체 어떠한 순차로 먹어야만 마땅할 것인가. 그것에는 우선 세 가지의 방법이 있을 게다.

그중 맛있는 놈부터 차례로 먹어가는 법. 그것은 언제든, 그 중에 맛있는 놈을 먹고 있다는 기쁨을 우리에게 줄게다. 그러나 그것은, 혹은 그 결과가 비참하지나 않을까. 이와 반대로, 그 중 맛없는 놈부터 차례차례로 먹어가는 법. 그것은 점입가경, 그러한 뜻을 가지고 있으나 뒤집어 생각하면, 사람은 그 방법으로는 항상 그 중 맛없는 놈만 먹지 않으면 안되는 셈이다. 또 계획 없이 아무거나 집어먹는 법. 그것은...

구보는 맞은편에 앉아, 그의 문학론에 앙드레 지드의 말을 인용하고 있던 벗을, 갑자기 이 유민(遊民)다운 문제를 가져 어이없게 만들어 주었다. 벗은 대체, 그 다섯 개의 임금이 문학과 어떠한 교섭을 갖는가 의혹하며, 자기는 일찍이 그러한 문제를 생각하여 본 일이 없노라 말하고,

"그래, 그것이 어쨌단 말이야?"

"어쩌기는 무에 어째."

그리고 구보는 오늘 처음으로 명랑한, 혹은 명랑을 가장한 웃음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