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에 앉아서 숨을 돌리자 온몸이 후끈한 게 여간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오한도 가시고 따뜻한 기운이 가슴과 배에까지 퍼져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코와 뺨은 손으로 만져봐도 여전히 아무 감각도 없었다. 이렇게 얼어붙으면 아무리 뛰어도 언 것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손발도 아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몸의 얼어붙은 부분은 점점 더 커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꽉 눌러버리고 잊어버리려고 했다. 뭔가 다른 생각을 해 보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그는 그런 기분, 그런 공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해도 그 생각은 악착같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머리에는 완전히 얼어죽은 자신의 시체의 모습까지 환상처럼 떠올랐다.

이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 길을 따라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좀 느리게 걸어보기도 했지만 자신의 몸에서 얼어붙은 부분이 점점 확대되는 상상을 하게 되면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러는 동안 개는 줄곧 그의 뒤를 따라서 뛰고 있었다. 그가 두 번째로 넘어지자 개는 꼬리를 말아 앞발 위에 걸치고 안타깝게 그의 앞에 마주앉았다. 그 눈초리가 어쩐지 이상하게 보였다. 그 따뜻하고 안전한 모습을 보며 그는 화가 치밀었다. 그가 욕을 퍼부어대자 개는 귀를 내려뜨리며 마치 용서를 빌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오한이 전보다 더 빨리 닥쳐왔다. 이제 바야흐로 그는 추위와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사방에서 추위가 사정없이 몸으로 스며든다. 쫓기는 심정으로 그는 또다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처 백 피트도 가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다시 고꾸라졌다. 이것이 그의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숨을 돌려 바로 앉았다. 그는 이제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물론 그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이렇게 거창한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머리에 처음 떠오른 비유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목을 잘린 닭처럼 파닥거리고 버둥거리는 것 같다는…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 자기가 지금까지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 어쨌든 얼어죽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좀더 점잖은 모습으로 그것을 맞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마음속에 새로운 평화가 깃드는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희미하게 졸음이 찾아왔다. 이건 좋은 생각이다. 잠이 들면서 죽어가는 것이다. 마취제를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얼어죽는 것이 그다지 끔찍한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소름끼치게 죽는 일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동료들이 이튿날 자기의 시체를 발견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자기 자신도 동료들과 함께 이쪽으로 길을 따라 걸으면서 자기의 모습을 찾고 있다. 여전히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길모퉁이를 돌아서자 자기가 눈 속에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건 이미 자기 자신이 아니다.

왜냐 하면 자기 자신은 그 몸뚱이를 벗어나 동료들과 함께 서서 그것이 그렇게 눈 속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춥다… 미국 본토에 돌아가면 정말 추운 것이 어떤 것인가를 사람들에게 확실히 얘기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문득 설퍼 크리크 노인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훈훈해 보이는 모습, 여유있는 자세로 파이프를 물고 있는 그 노인의 모습이 아주 뚜렷이 떠오른다.

"말씀하신 것이 맞았어요. 어르신, 그 말씀 그대로라구요…" 그는 설퍼 크리크의 노인을 향해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잠에 빠져들었다. 개는 그의 앞에 마주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길고도 느릿느릿한 황혼 가운데 짧은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도무지 불을 피울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저렇게 눈 위에 주저앉아서 불을 피우지 않는 일을 개는 아직 경험한 적이 없다.

어둠이 주위를 덮어오자 개는 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개는 앞발을 번갈아 들어올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다가 주인이 호통을 칠까 두려워 금방 귀를 숙이곤 했다. 그러나 그는 도대체 아무 말도 없다. 이윽고 개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조금 더 있다가 그의 옆으로 기어가 시체의 냄새를 맡았다.

개는 털을 쭈뼛 세우며 뒤로 얼른 물러났다. 싸늘한 하늘 아래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뛰어노는 것 같다. 개는 거기서 그렇게 울부짖으며 서 있었다. 그러다가 몸을 돌렸다. 캠프가 있을 것처럼 짐작되는 방향으로 개는 뛰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먹을 것과 물을 공급해줄 다른 인간을 찾아 개는 빠르게 길을 따라 뛰어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