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눈 위에 앉아서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서 이빨로 장갑을 물어서 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밑을 내려다보고 자기가 정말 일어섰는지 확인해야 했다. 두 발의 감각이 사라져서 사실상 그는 대지로부터 격리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그렇게 우뚝 서 있는 모습만 보여줘도 개의 마음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의심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단호한 모습으로 매질을 한다며 소리를 지르자 개는 언제나처럼 순순히 그에게 다가왔다. 개가 손이 미치는 거리에까지 다가오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개에게 손을 불쑥 뻗었다. 그러나 손가락이 쥐어지지도 않고 이미 감각이 다 사라진 것을 알고 그는 속으로 소름이 끼쳤다.

두 팔도 이미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잠깐 동안 자기의 손이 이미 마비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개가 도망가지 전에 얼른 두 팔로 개의 몸뚱이를 꼭 붙잡았다. 개는 울부짖으며 몸부림을 쳤지만 그는 그렇게 눈 위에 주저앉아서 개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개 몸뚱이를 안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다. 도저히 죽일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미 그의 손으로는 칼을 뺄 수도, 쥘 수도 없다. 개의 목을 조를 수도 없다.

손은 이제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진 것이다. 그는 개를 놓아줬다. 개는 다리 사이에 꼬리를 감추고 울부짖으며 뛰어 달아났다. 그리고 나서 40피트쯤 떨어진 곳에 멈춰서 귀를 날카롭게 쫑긋하며 그를 이상하다는 듯 지켜봤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기의 손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두 팔 끝에 여전히 손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자기 손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기묘한 일이었다. 그는 팔을 휘두르면서 장갑 낀 손을 옆구리에 때렸다. 5분쯤 그렇게 하자 피가 심장에서 몸의 표면으로 흘러나오면서 오한이 그쳤다.

그러나 두 손의 감각은 역시 살아나지 않았다. 두 팔 끝에 손이 추처럼 매달려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둔하고 무거운 죽음의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이미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동상, 손발을 잘라내야 하는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이걸 깨닫는 순간 죽음의 공포가 불현듯 그의 폐부를 찔렀다. 그는 희미한 자국을 따라 시냇가 길을 뛰었다. 개도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는 아무 목표도 없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무작정 뛰었다. 이런 공포는 난생 처음 느끼는 것이다. 눈을 헤치며 허둥지둥 뛰어가는 동안 그의 눈에는 별의별 것이 다 보였다. 크리크의 둑, 오래 전에 떠내려와 쌓인 나무조각들, 잎이 다 떨어진 백양목, 저 하늘… 그렇게 계속 뛰자 몸에 열이 났다. 오한도 멎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뛰면 발은 더워질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얼마 동안 뛰어가면 캠프에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료들도 만날 수 있다. 손가락 몇 개, 그리고 얼굴이 망가질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캠프에까지 가기만 하면 동료들이 돌봐줄 테니까 다른 곳은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머리에는 다른 생각도 떠오르고 있었다. 과연 캠프까지, 동료들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까. 몇 마일, 몇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 않은가.

동상에 걸리고서 시간이 너무 지났다. 얼마 못 가서 곧 몸이 뻣뻣해져서 쓰러질 것이다. 그리고 죽게 된다. 이런 생각을 그는 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물리치려고, 무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뒤로 물러섰다가 어느새 다시 나타나 그에게 속삭였다. 그는 다시 이런 생각을 물리치고 억지로라도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다.

발이 대지를 차고 있다. 그리고 몸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도 발은 완전히 얼어서 전혀 감각이 없다. 이렇게 얼었는데도 뛸 수 있다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몸뚱이가 땅 위를 낮게 날고 있는 것 같다. 대지와는 맞닿아 있지 않다. 어딘가에서 희랍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머큐리를 본 적이 있다. 대지를 낮게 스치며 나는 머큐리도 지금 이런 기분일까?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동료들이 있는 캠프까지 뛰어간다는 그의 방법에는 허점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의 체력이 그걸 받쳐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몇 번 발을 헛디디고 비틀거리다 마침내 엉거주춤 쓰러졌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앉아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쉬지 말고 줄곧 그냥 걷기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