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어려운 일도 있었지. 단 혼자서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래도 난 잘 빠져나왔어. 원래 늙은이들 가운데는 쓸데없이 걱정만 하는 작자들이 있단 말이야.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 정말 중요한 것은 침착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별일 없을 거야. 사내 자식이라면 누구나 혼자서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이다.
하지만 뺨과 코는 너무 빨리 얼어붙고 있었다. 그는 자기 손가락이 그렇게 빨리 마비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완전히 마비된 것이다. 나뭇가지를 집어들려고 해도 손가락을 거의 구부릴 수 없었다. 손가락과 몸뚱이가 자기 자신과 무관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가지를 만져도 자기가 정말 손에 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했다. 자기 자신과 손끝을 연결하는 끈이 끊어진 셈이다.
그러나 이제 그건 별 문제가 아니다. 불이 타고 있으니 말이다. 불꽃이 탁탁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안전을 보증해주는 것이다. 그는 모카신의 끈을 풀었다. 모카신은 완전히 얼음에 덮여 있었다. 무릎까지 올라온 두터운 독일제 양말이 얼어붙어서 마치 강철로 다리를 덮고 있는 것 같았다.
모카신 끈은 엄청난 화재가 일어나 뒤틀린 철근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마비된 손으로 모카신 끈을 잡아당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칼집에서 칼을 뺐다.
그러나 모카신 끈을 칼로 끊기도 전에 재앙이 일어났다. 이것은 어쩌면 그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의 실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나무 밑에 불을 피운 것이 잘못이었던 것이다. 불은 나무 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피워야 한다. 그런데 그는 덤불에서 작은 가지를 꺼내어 불에 넣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만 했다.
그가 불을 피운 그 나무의 가지에는 눈이 무겁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지난 몇 주일 동안 바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가지마다 눈이 그득 얹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마른 나뭇가지를 잡아당길 때마다 전나무에는 조금씩 충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물론 그 충격이란 정말 미미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재난이 일어날 수 있었다.
전나무의 높은 나뭇가지에서 눈더미가 우르르 쏟아졌다. 눈더미는 그 밑에 있는 가지의 눈더미와 합쳐져서 계속 내려온다. 전나무의 가지 전체의 눈이 마치 눈사태처럼 커져서 쏟아져내린 것이다. 아무 예고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눈더미는 그와 모닥불 위에 쏟아져 순식간에 불을 꺼 버렸다. 불은 이제 흔적조차 없었다. 불이 타던 자리에 하얀 눈더미만 어지럽게 덮여 있었다.
그는 아찔했다. 마치 사형 선고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불이 타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다시 침착을 되찾았다. 설퍼 크리크의 그 노인이 했던 말이 옳았다. 동행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지금 같은 위기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이 대신 불을 피워줄 테니까.
좋다, 어쨌든 내가 직접 다시 불을 피워야 한다.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다. 아마 지금은 불을 잘 피운다 해도 발가락 몇 개 잃는 것쯤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발은 이미 심각하게 얼어 있는 상태다. 게다가 불을 새로 피우려면 시간이 좀 더 걸려야 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주저앉아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이 흘러가는 동안 그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무가 사람 뒷통수를 때려 불을 꺼트리는 일이 없도록 탁 트인 넓은 곳을 골라 불을 피울 받침대를 놓았다. 그리고 나서 홍수에 휩쓸려 내려온 무더기에서 마른풀과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모았다.
손가락으로는 도저히 그 물건을 집을 수 없어서 그는 손바닥으로 그것들을 긁어모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썩은 가지와 파란 이끼 부스러기 따위 불 피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도 많이 섞이게 된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체계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나중에 불이 잘 피워지면 집어넣을 굵은 가지들까지 한 아름 모아놓았다.
이러는 동안 개는 옆에 앉아서 어떤 안타까움의 표정을 눈에 드러내면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개에게 불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지금 불을 피우는 것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의 표정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준비를 모두 마치고 그는 다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벚나무 조각을 찾아 뒤적였다. 호주머니 속에 벚나무 조각이 들어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손가락에 감각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버스럭거리며 계속 뒤졌다. 손에 쥐려고 해도 도무지 잡히질 않는다. 이러고 있는 동안 점점 발이 얼어간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는 점점 공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래도 냉정을 잃으면 안 된다. 그는 자신의 공포에 맞서 싸웠다. 장갑을 입에 물고 손에 끼운 다음 두 팔을 흔들면서 옆구리에 손을 갈겼다. 앉아서 그렇게 하다가 이제는 일어나서 손을 옆구리에 계속 때렸다.
그러는 동안 개는 눈 위에 앉아서 그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여우처럼 풍성한 꼬리로 따뜻하게 앞발을 덮고, 여우처럼 뾰족한 귀를 쫑긋 세운 채 도사리고 앉은 모습이었다. 저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따뜻한 옷을 입고 나와 포근하고 안전하겠지… 그는 팔을 흔들어 손을 몸에 때리면서 이 짐승에 대해 부러운 생각이 마음속으로 뭉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한참 그렇게 때리자 손가락에 희미한 감각의 신호가 느껴졌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점점 심해져서 찌르는 것처럼 아파졌다. 하지만 이 아픔이야말로 그에게는 반가운 것이다. 그는 오른쪽 장갑을 벗고 벚나무 껍질을 꺼냈다. 공기에 노출된 손가락은 다시 순식간에 마비된다.
그는 유황 성냥 다발을 꺼냈다. 그러나 혹독한 추위에 얼어붙어 손가락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성냥을 하나 꺼내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 성냥 다발을 눈 위에 떨어트렸다. 집어올리려고 해 본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마비된 손가락으로는 만질 수도, 집을 수도 없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발, 코, 뺨… 어느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모든 마음을 성냥에 집중한다. 촉감 대신 이제 시각에 의지한다. 손가락이 성냥 다발 양쪽에 가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런 다음 손가락을 오므린다 - 이를테면 오므리려고 마음을 먹는 것이다.
모닥불 - 5. 실수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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