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장갑을 낀 한쪽 손으로 감각이 없어진 코와 뺨을 부벼댔다. 정말 지독한 추위다. 구레나룻이 수북하게 길렀지만 그것은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혹독한 추위 속으로 쑥 내민 코를 보호할 수는 없었다. 안타까운 코… 공기는 지독하게 차가웠다.
그의 바로 뒤에는 개가 한 마리 따라오고 있었다. 그 지방의 특산이라고 할 수 있는 에스키모 개였다. 털이 잿빛인 순수한 에스키모 개다. 이 놈은 겉모습이나 그 성질이나 모든 점에서 사촌이라고 할 수 있는 야생 늑대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개는 혹독한 추위에 질린 것 같았다. 개는 지금이 밖으로 돌아다닐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그것은 이성에 의지하는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정확했다.
사실 지금 날씨는 단순히 영화 50도를 넘는 추위가 아니었다. 영하 60도, 아니 70도를 이미 넘어선 추위였다. 화씨로 영하 170도였던 것이다. 빙점이 영하 32도이니까, 그것은 빙점 아래 107도가 된다(지금 이 소설에 나오는 온도는 화씨를 말한다. 이 온도를 섭씨로 따지면 약 영하 77도 정도가 된다- 편집자 주*)
개가 온도계 따위를 알 리는 없다. 개의 머리 속에는 인간이 두뇌로 느껴 아는 것처럼 그렇게 추위라는 명확한 의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다. 막연하게나마 위험을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개는 뭔가 활기가 없이 주춤거리면서 열심히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면서 개는 그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할라치면 혹시 캠프라도 찾은 것 아닌지, 어디 일시적으로 피난처를 만들어 불이라도 피우는 것 아닌가 싶어서 열심히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개는 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불이 피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사람이 불을 피우지 않으면 개는 눈 속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몸을 움츠리고 지독하게 추운 공기를 피해 체온을 유지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었다.
개의 털에도 입김이 얼어서 얼음이 매달려 있었다. 특히 턱과 코 끝, 눈썹이 얼어서 하얗게 되어 있었다. 사람의 빨간 턱수염과 콧수염에도 그렇게 얼음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더 울퉁불퉁했고, 더운 숨을 내쉴 때마다 점점 더 큰 고드름이 나타났다. 더구나 그는 담배를 씹고 있어서 그 침을 뱉을 때마다 당장 얼어붙어 턱에 들러붙었다. 마치 얼음으로 입 마개를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호박(琥珀) 색깔의, 그리고 그 호박처럼 단단해진 수염은 점점 길어졌다. 만일 넘어지기라도 하면 마치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곳에서 씹는 담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야 항상 감수해야 할 덕목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전에도 그는 두 번이나 혹독한 추위에 밖으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때는 이렇게 춥지는 않았다. 그래도 17마일쯤 걷고 나서 온도계를 보니까 한 번은 영하 50도, 또 한 번은 55도였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평탄하게 계속 이어지는 숲속 길을 그는 몇 마일 계속 걸었다. 그리고 나서 검은 조약돌이 깔린 넓은 평야 지대를 가로질러 조그만 시냇가에 이르렀다. 그는 언덕을 내려가 얼어붙은 시내를 건넜다. 이것이 바로 헨더슨 크리크였다. 그러니까 분기점에서 10마일 떨어진 지점인 것이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열 시였다. 시속 4마일의 속도로 걸은 셈이다. 이대로 계속 가면 열두 시 반쯤이면 분기점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예정대로 잘 도착한 다음, 홀가분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그는 마음먹었다.
크리크의 시냇물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자 개는 뒤로 쳐졌다. 개는 꼬리를 내리고 어딘지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길은 옛날부터 쭉 썰매가 다니는 길이다. 하지만 언제나 보이던 썰매 자국은 오늘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이 몇 인치 두께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지난 한 달 동안 아무도 이 고요한 크리크를 지나간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굳세게 계속 걸었다. 그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지금은 그저 머리 속에 분기점까지 가서 점심을 먹는다는 것, 여섯 시쯤에는 캠프에 도착해서 동료들을 만나게 될 것이란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말을 걸 상대도 없다. 또 상대가 있다 해도 지금처럼 입이 얼음 마개로 막힌 상태에서는 말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저 무덤덤하게 연신 담배를 씹으면서 호박 색깔의 수염을 점점 더 키울 뿐이었다.
그래도 이따금 정말 지독하게 춥다는, 그리고 이런 추위는 아직 겪어본 일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걸어가면서 장갑 낀 손등으로 뺨과 코를 부볐다. 그것은 거의 본능적인 동작이었다. 그렇게 코를 부비는 손을 그는 계속 바꿨다. 그러나 아무리 문질러도 손을 떼자마자 볼은 금방 마비되고 다음 순간 코끝이 얼어붙었다.
아마 별 수 없이 뺨은 동상에 걸릴 것이다. 그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버드가 끼고 다니던 그 기다란 코걸이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 그는 뼈저리게 후회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가 되니까 그걸 알 수 있었다. 그 물건은 코는 물론 양 볼까지 덮을 수 있어서 볼도 보호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어쨌든 그 따위가 뭐 대수랴. 볼이 동상에 좀 걸리면 어떻단 말인가. 좀 아플 따름이다. 그렇다고 대단하게 위험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속에 별다른 생각은 없었지만 그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크리크가 구부러진 모퉁이나 떠내려온 나무 따위가 쌓여 있는 곳 이런 불의의 사태가 생길 수 있는 곳은 유심히 살피면서 단 한 순간도 발끝에 신경을 집중해 긴장을 풀지 않았다. 크리크가 구부러지는 모퉁이에서는 놀란 말처럼 멈칫하고 길을 빙 돌아 살피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모닥불 - 2. 겁에 질린 개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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