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어제 저녁때 큰형수께서 반지값을 들고 몸소 나의 셋방까지 찾아왔더군요. 형수는 돈이 넉넉지 못해 좋은 반지를 살 수는 없겠다고 말하며 겉으로나마 미안해서 쩔쩔매더군요. 돌아가며 형수가 마지막으로 말했어요. 너무 여자만 믿지 말고 도련님도 이제부턴 새사람이 되어보라구 말요.
잠시 후에는 둘째형수가 신부의 시계값을 들고 허겁지겁 찾아왔더군요. 늦어서 어떻게 하나? 도련님. 내일 아침에 시계를 사도 늦지는 않겠수? 둘째형수는 시계값 삼만 원을 마련하느라고 이틀 동안 동네 골목길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겨우 이제야 마련했다는 거요. 둘째형수도 나에게 충고하기를 잊지는 않더군요.
도련님, 부부라는 건 그저 남과 남이 만나서 사는 거니까는 아무리 사이가 가깝고 허물없다고 하여도 늘 남자 체신 잃는 짓은 삼가도록 조심해요. 그리고 여자를 위해주어야 한다구. 댁의 형님처럼 그렇게 쌀쌀맞게 굴어서는 못 써요. 나는 형수들로부터 난생 처음 들어보는 도련님이라는 호칭이 그저 황송스럽기만 하고 한편 형수들의 말이 백번이나 옳은 것만 같아서 무조건 머리를 끄덕이며 명심하겠노라고 대답했지요.
둘째형수를 보내놓고 나는 곧장 목욕탕으로 가서 말끔히 몸을 닦았지요. 실로 몇달 만에 목욕탕엘 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라구요. 그러나 내일이면 아내를 맞아들일 놈이 목욕이야 안할 수 있겠소?
이미 작은누님이 속옷과 비누, 수건 등속을 죄다 사왔기 때문에 목욕을 마치고 나는 내의부터 말끔히 갈아입었죠. 그러구 나니까 몸과 마음이 정말 날아갈 것처럼 시원합디다. 내일이면 나도 결혼하는구나, 저녁때 혼자 내 방에 앉아 있을 때는 이 생각이 내 머리에 꽉차서 나는 퍽 흥분했다구요.
사실 서른 일곱살이 되는 오늘까지 결혼이야 꿈에도 생각 못하고 살아왔죠. 어떤 여자가 나 같은 놈에게 시집을 올 턱도 없었고 또 그런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동전 한푼 없는 놈이 뻔뻔스럽게 장가를 들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겠소? 그런데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결혼이 막상 내일로 박두했다고 생각하니까 도무지 실감이 안 날 뿐더러 공연히 흥분 상태에 빠지게 된 거죠.
오늘 아침에는 큰누님과 작은누님이 함께 내 방으로 찾아와서 트렁크에 내가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챙겨넣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나의 옷차림과 몸단장을 거들어주었어요. 그런데 큰누님이 이때 느닷없이 눈물바람을 하는 겨를에 나는 혼이 났다 이거요. 글쎄 양친을 여의고서 고생만 지독하게 해오던 놈을 그놈이 아무리 무직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날림 엉터리로 장가를 보내는 법이 어디 있겠느냐고 큰누님이 새삼스럽게 푸념을 늘어놓으며 눈물을 펑펑 쏟는 거요.
그러자 작은누님도 거기에 덩달아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나를 이따위로 대우하는 형들을 원망한다 이거요. 내 입장이 참 난처했죠. 사태가 거기까지 발전할 줄은 미처 몰랐거든요. 누님들이 그러니까 공연히 나도 슬퍼지고 금방 눈물이 나올 듯해서 정말 혼이 났수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냉정한 말투로 쏘아붙였지요.
누님들은 뭐요?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눈물을 보일 건 뭐냐 말이요.
내 말이 떨어지자, 누님들은 그만 당황하여 허겁지겁 눈물을 훔치고는 금방 어거지로 웃는 척하더군요. 얘야. 이 속옷은 어디로 가던지 거기서 숙소를 정하는 즉시 갈아입으라구. 신부에게 신랑이 첫날부터 더럽게 보인다면 큰 수치니까 말이지. 큰누님이 새하얀 고급 내의를 트렁크에 넣으며 말했지요. 그러니깐 누님들은 우리가 사진관에 들러서 사진만 찍고는 즉시 신혼여행을 떠날 걸로 믿고 있었던 거죠.
누님들은 약수동 로터리까지 내려와서 나를 전송하였어요. 사진관까지 따라와서 신부 몰래라도 두 사람이 사진을 찍는 장면도 구경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걸 먼발치에서나마 전송하고 싶다고 누님들이 우겼지만 내가 그걸 극력 사양했지요. 누님들이 보는 앞에서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신부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누님들이 택시의 덜미에 대고 손을 흔들었고, 나도 뒤를 돌아보며 마주 손을 흔들었지요, 그러나 내가 갈 데가 어디 있읍니까? 거기까지 일은 무사하게 끌어는 왔지만 막상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야겠다는 것은 미처 생각해두지 못했다, 이거요. 결국 나는 별다른 도리 없이 매일 찾아오던 이 공원으로 다시 돌아온 거요. 자, 이쯤해두면 나의 신부가 시방 어디에 있는지 아시겠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