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누님은 당장 일어섰어요. 자기 눈으로 색시를 자상하게 살펴보겠다 이거요.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큰누님이 그렇게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어서 나는 거기에 반대할 도리는 없었죠. 이렇게 되어 나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큰누님과 함께 약수동 로터리로 나와 가게 안에는 누님만 들여보내놓고 나는 마틴양장점 앞에서 서성거리며 누님이 나오는 때만을 기다렸지요.
고비라면 이때가 고비였다구요. 가게로 누님이 들어가기 전에 절대로 아무개와 인척이 된다거나 아무개 때문에 왔다는 사실을 밝히지 말아달라, 그 색시는 나에게는 누님도 형제도 없는 줄로만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누님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긴 하였으나 누님이 행여나 그 주의를 까먹고 거기서 내 이름을 대거나 자기가 가게 들른 용건을 밝히게 될까봐 나는 전전긍긍했죠. 누님이 그렇게 하는 날이면 만사는 깨져버리니까 말요. 나는 그때 정말 그 가게 앞에서 달아나버리고 싶어서 혼이 났수다. 하지만 참을성 있게 꾸욱 견디었죠.
한참만에 누님이 가게문을 열고 나오는데 보니까 상당히 흡족한 표정이었다구요. 그 까닭은 색시 될 사람이 뜻밖에도 썩 훌륭했더라 이거요. 누님은 가게 안에서 내가 걱정했던 실수 따위는 저지르지 않았던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다면 누님의 표정이 그렇게 밝아보일 턱이 없는 거지요.
저렇게 좋은 색시가 왜 너 같은 남자하고 결혼하겠다는 거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큰누님이 그점이 이상하다는 듯 이렇게 물었죠. 나는 얼른 대답했지요.
그거야 누님이 몰라서 그렇지. 그 여자 다리가 이상해 뵈지 않습디까?
잘 모르겠던데.
그 여자 사실은 약간 다리를 절고 있다구요. 얼른 봐서는 모를 정도로 약간.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을 택했지. 그렇지 않으면 어림이나 있는 얘긴가요?
내가 이렇게 능청을 떠니까 누님도 그제서야 납득이 간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지요. 누님이 다시 말했어요.
그 색시가 너를 착실한 남자로는 본 게로구나. 재산은 좀 있는 편이고 자기 몸이 불구이고 그러니까 잘난 척하는 남자보다는 무능해도 착실해 뵈는 남자를 택했다 이말이지?
그렇지요. 바루 그거죠.
일이 생각보다는 쉽게 진행된다는 데에 신바람이 나서 나는 연거푸 누님에게 맞장구를 쳤다구요.
결혼 날짜는 아주 빠르게 잡았지요. 처녀나 총각이나 피차 과년한 사람들이고, 그리고 떠들썩하게 소문을 낼 만한 결혼이 아닌 바에야 쥐도새도 모르게 빨리 해치운다는 것이 날짜를 빨리 잡은 이유라구요. 하여튼 그날부터 큰누님이 앞장을 서서 내 결혼 준비를 서둘렀죠.
나는 누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공연히 돈을 들여 번다하게 식을 올릴 생각도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새옷 한 벌씩 입고 사진관으로 가서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 삼겠다, 요즘에는 더구나 국가에서도 허례허식은 말리는 형편이 아니냐, 아내가 될 여자의 생각이 그러한데 뭐 잘났다고 내가 거기에 반대할 수 있느냐, 나는 옷이나 몇벌 싸들고 신부의 집으로 들어가면 그뿐이다. 그렇지만 이쪽 체면도 있고 성의 문제도 있으니깐 신부에게 한두어 가지 예물만은 사주어야겠다. 그 예물값만 형제들이 마련해다오.
큰누님은 대뜸 그거 참 잘 생각했다고 말했지요. 물가도 비싼데 신부의 머리가 참 실리적으로 돌아간다구 말이죠. 이윽고 큰누님이 형네와 작은누님에게 이 사실을 대충 전달하고 부조를 요청하였을 때 그들은 단번에 의심부터 하였죠. 무슨 놈의 혼인이 소문도 없다가 그리 갑자기 이뤄지느냐고 말요. 그렇지만 큰누님이 직접 자기 눈으로 상대방 색시를 확인했다는 내역을 자세히 얘기하고, 일이 그렇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보증을 하고 나서자, 제 아무리 의심이 많고 박정했던 그네들도 더 의심할 도리가 없게 됐죠.
결국 큰형은 신부의 반지값을 마련하기로 하였고 작은형은 신부의 시계값을 맡았으며, 작은누님은 신부와 신랑이 당장 입을 의복값을 맡았다구요. 마지막으로 큰누님은 우리들의 신혼여행 비용을 자청하고 나섰어요. 내가 그것만은 너무 미안해서 한사코 거절했는데도 누님은 결혼식마저 생략하는 판에 신혼여행까지 생략해버린다면 신부가 너무나도 가엾다고 말하면서 한사코 자기가 그 돈을 마련하겠다고 우기는 것이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