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난데없이 형씨에게 술을 권했던 이유가 바루 거기에 있다구요. 이 트렁크와 이 말쑥한 새 양복과 이 와이샤쓰와 이 고급 넥타이 말이죠? 형씨, 어떻습니까? 멋이 있습니까? 멋이 있으면 있다고 말하시오.
정말 멋있고말고요. 아까부터 줄곧 참 멋이 있으시다고 내심 감탄하고 있던 참이었죠.
그것뿐이었소? 그냥 멋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밖에 다른 생각은 못했나요?
다른 생각이라뇨? 무슨 생각을.
내가 신랑처럼 보이지는 않았냐, 그말이요.
그 남자는 사뭇 답답하다는 듯이 얼른 이렇게 쏘아부쳤다.
하하, 이제야 나도 알겠소. 어쩐지 그 비슷하다고 보았지요.
나는 그러나 그 남자에 대한 약간의 의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저녁나절 을씨년스러운 공원의 숲속에 앉아서 혼자 술을 마시는 신랑, 그것은 더욱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그런 기색에는 아랑곳없이 그 남자가 다시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면 어떤 놈이 장가들면서 그 누구에게도 술 한잔 사지 않고 쓱싹 넘어가는 놈을 보았소? 나도 한가닥 양심은 있다 이거요. 그렇기 때문에 내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형씨를 청한 거요.
그게 사실이라면 이 술은 고맙게 받아 마시겠소. 그리고 두 분의 행복을 빌어드리지요.
나는 이 자칭 신랑이 세번째 건네주는 술잔을 받아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푸욱 놓고 술을 드시오. 더 마시고 싶다면 이까짓 소주나 오징어쯤이야 얼마든지 더 살 테니깐. 시방 나는 신혼여행을 왔으니까 말요. 현금이 좀 있다 이거요.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왔다구요? 하필이면 이렇게 쓸쓸하고 볼품없는 공원으로?
그렇소. 내가 매일 나와서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비비고 살던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온 거요. 저기 저 밑동아리가 문드러진 소나무만 봐도 여기가 지긋지긋하지만, 다른 데 어디 갈 곳이 없으니까 결국 여기로 오고 말았죠.
그렇담 신부는 어디 있습니까? 근처의 호텔에라도 남아 있습니까?
호텔?
그 남자는 이렇게 반문하더니 한바탕 껄껄대고 웃어제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라 그는 마음을 터억 놓고 요란한 소리로 웃었지만 이번에도 그 웃음소리에는 어쩐지 실성한 사람의 웃음처럼 허전한 여운이 스며 있었다.
형씨가 그렇게 궁금하게 생각하니까, 그렇다면 내 신부가 시방 어디 있는지 얘기할까요?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고 그 남자가 약간 침울해진 어조로 물어왔다. 나는 물론 고개를 끄덕여보았다. 그 남자는 다시 술을 한잔 쭈욱 들이켠 다음 벌써 가까이 서 있는 나무들의 윤곽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캄캄해진 주변의 숲속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더니 이윽고 내게 눈길을 돌리고 말하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