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에 내가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곳도 바로 이 공원의 숲에서였죠. 그때 나는 여기 풀밭 위에 누워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몹시도 고파왔다구요. 물론 오후만 되면 늘 배가 고파왔지마는 그날은 유달리 허기증이 심했다구요.
아참, 내 소개부터 간단하게 해야겠군. 나는 말입니다. 나는 금년 서른일곱 살이고, 저기 약수동 산비탈 중턱에 삼만 원에 월 삼천 원짜리 삭월세방을 빌려 혼자서 자취 생활을 해왔죠. 내가 중학교 일학년 때에 사변이 났는데 그때 경관이었던 우리 부친께서 빨치산에게 맞아죽는 바람에 나는 학교를 작파하게 되었고 그러니까 내 학력은 중학 일년으로 그치고 만 거죠.
사회 경력이라야 내게는 군대 경력밖에는 없다구요. 몇차례 집짓는 데에서, 지하철 공사장에서, 학교 건물 짓는 데에서 일당으로 몇푼씩 받고 날품팔이 노릇을 했던 경력을 빼놓으면 이날 이때까지 직업다운 직업을 가져본 일이 없다구요. 그러니, 나 같은 놈에게 어떤 년이 시집이나 올라구 하겠소? 형씨. 학력도 재산도 직업도 에미 애비도, 밥 벌어먹을 뾰족한 재간 하나 조차도 깡그리 없는 나 같은 놈에게 말요. 아니 이건 여담이고요.
서울에는 두 명의 형네 가족과 역시 두 명의 누님네 가족들이 있지마는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는 않지요. 그 이유야 뻔하지요. 내가 학력도 직업도 없는,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소용이 되지 않을 놈이기 때문이겠죠. 형제지간의 의리? 그런 것이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가지고 있지, 사실 요즘 세상이야 피차에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면 남이나 매한가지죠.
하여튼 그따위 골치 아픈 얘기는 집어치우고 말요. 그날 아침에 공원으로 나올 적에 간밤에 남았던 식은 밥 한덩어리로 조반을 때웠고 점심은 걸른 판국이었으니 허기증이 나지 않을래야 않을 도리가 없었지요.
그런데 이때 허기증에 덩달아서 진짜로 큰 걱정이 생겼다구요. 그것은 당장 배가 고프다는 그 사실보다도 다가오는 겨울을 어떻게 지내느냐, 아시다시피 겨울철에는 날품팔이 일자리도 구할 수 없는데 이 겨울 동안에 어떻게 굶지 않고 견디어 배기느냐, 하는 걱정이었죠.
나는 시방 내년 봄에는 부산의 배 만드는 공장으로 내려가서 일할 희망에 부풀어 있죠. 어떤 사람이 봄만 되면 거기에 집어넣어주겠다고 약속했다구요. 거기서 삼년만 기술을 배우면 다음부터는 제법 대우도 받을 수 있다고 그사람이 말하더군요. 시방 나는 그 꿈에 부풀어 있다구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금년 겨울만 굶지 않고 견디어 배기는 게 나의 지상목표였죠.
하지만 암만 궁리해보아도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 말씀입니다. 하다못해 당장 다음날 끼니거리도 없었다니까요.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그냥 막막하기만 하지요. 그렇다고 형네나 누님네에게 찾아가보았자, 결과는 뻔할 거다 이거요. 왜 그러느냐 하면, 이미 그들은 내가 뭐라고 말해도 그말은 듣지 않고 믿지 않기로 작정들을 했거든요.
가령 내가 그네들을 찾아가서 내년 봄에는 틀림없이 부산 배 만드는 공장에 취직이 되어 내려간다, 그러니깐 그때에는 무직에서 오는 문제, 가난에서 오는 문제, 형제지간의 의리를 앞 세우고 줄창 괴롭히려고 드는 놈에 대한 복잡한 감정문제, 그놈을 무지막지하게 외면해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의 심리적 갈등 따위, 이런 문제들이 눈이 녹듯 없어져버린다, 그러니까 이번에 딱 한번만 도와다오.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도와다오. 이렇게 극구 얘기하여도 그들은 전혀 믿으려고 들지 않는다구요. 하기야 몇년 동안 살아오면서 곧 취직이 되노라고 거짓말을 하고서 푼돈을 뜯어낸 일이 한두 번은 아니니깐, 이제는 나에게 두번 다시 속지 않으려고 귀를 솜으로 틀어막을 만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