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눈앞이 캄캄했을 때 문득 묘안이 떠오른 거요. 정말 그 생각을 왜 일찍 하지 못했을까, 후회막급일 지경이었다구요. 그렇다. 결혼을 하자. 이 기회에 결혼을 하면 되겠다고 나는 생각했죠. 결혼은 누구나 일생에 한번 하는 것이고, 그 한번의 결혼에는 제 아무리 박정하고 의심이 많은 형네나 누님네라 할지라도 그냥 외면할 수만은 없을 거다, 이겁니다.
어느 때든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내게 비록 약소한 금액이나마 부조금을 내어놓지 않을 수는 없을 터이니까 나는 그 부조금을 가장 곤란을 겪고 있는 이때에, 가장 허기증이 심하고 가장 돈이 아쉬운 이때에 미리 앞당겨서 받아쓰겠다, 이런 얘기죠.
그런데 여기에도 한 가지 문제는 내가 진짜로 결혼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믿지 않을 수 없도록 그들을 설득하는 일이었죠. 나는 우선 제일 어수룩한 큰누님을 찾아갔다구요. 내가 첫마디에 결혼을 하게 되었노라고 말하자 큰누님은 다짜고짜 그따위 거짓말은 집어치우라고 툭 쏘아붙이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어요.
나는 물론 어수룩한 큰누님일지라도 그다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쯤 미리 예상했지요. 큰누님이 그렇게 나오자 내가 도리어 화를 벌컥 냈다구요, 아마 어떤 명배우도 그때 나처럼 해내지는 못했을 거요. 사실 나는 진짜로 화를 내고 있었으니깐 연기치고는 최고 연기였죠.
내가 누님에게 말했죠. 어차피 결혼을 하면서 치사하게 형제의 도움 따위는 받지 않기로 작정했던 아무개요. 나이 서른일곱 먹은 동생이 가까스로 결혼한다는 게 그게 그렇게 불쾌하게 들린다면 누님에겐 이 문제는 다시는 꺼내지도 않겠소. 이렇게 사뭇 단호하게 말하고서 비장한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큰누님이 획 돌아앉으며 내 바지자락을 붙잡았지 뭐요.
대관절 그렇다면 상대는 누구냐? 큰누님이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죠. 상대요? 남이나 다름없는 동생의 결혼상대는 알아서 무얼 하우? 내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쏘아붙였다구요. 이녀석 봐, 상대방이 쓸 만한 처녀인가 아닌가 그걸 내가 알아보려고 묻는데 저렇게 화만 내고 있어. 누님의 태도는 벌써 완연히 돌변했지 뭐요.
그걸 일단 확인하고 나는 이윽고 나와 결혼하기로 서로 약속했다는 처녀를 가르쳐주었지요. 그 처녀는 약수동 로터리에 있는 마틴 양장점의 재단사죠. 물론 그녀와 나는 결혼 약속은커녕 피차 말 한마디 나눈 일도 없는 막막한 사이지만 큰누님 앞에서 제일 먼저 내 머리에 떠오른 여자가 하필 그 여자였기 때문에 그 처녀가 그만 나의 결혼상대자로 되어버린 거죠.
하기야 매일처럼 그 가게 앞으로 지나다니며 나는 그 색시를 자주 보아왔고, 그리고 어느때는 색시를 아내로 맞을 수만 있다면 나는 만족하겠다고 제멋대로 상상해본 일도 있기는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