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은 나의 신상에 관해서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을 해왔다. 그런 뒤에 그는 매우 실례가 되는 질문일는지 모르겠으나 손님은 이곳에 무슨 용무로 왔느냐고 물었다. 이곳은 교통사정도 퍽 좋지 않고 숙박시설도 전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곳이라고 경관은 덧붙여 말했다.
막상 경관이 이렇게 물어오자, 나는 얼른 마땅한 대답이 나와지지 않았다. 그의 질문은 확실히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경관은 미처 답변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의 얼굴을 더욱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빤히 쳐다봤다. 나는 내가 거기에 대해서 반드시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냐고 경관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경관이 말했다.
손님께선 우리들의 임무 수행에 가급적 협조해주십쇼. 그리고 여기는 특히 해안지구가 돼놔서 좀 까다롭습니다.
나는 경관에게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시 여기에 온 용건이 무엇이냐는 경관의 질문에는 얼핏 답변이 나와지지 않았다. 경관은 그렇다면 손님께서 지서까지만 동행해주셨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직무상 일단 자세한 기록을 남겨둬야 하니까요. 별달리 오해는 마십시오.
그는 정말 나를 끌고 갈 작정인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나에게 동행을 재촉했다. 이때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서 있던 민섭씨가 경관 앞으로 불쑥 다가섰다.
이분은 일부러 우리를 찾아주신 분이오. 먼 길을 일부러 예까지 찾아주셨다는 말이오.
민섭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러니까 방금 내가 어떤 용건으로 왔느냐고 묻지 않았소?
경관이 이번에는 민섭씨를 향해 말했다. 그러나 민섭씨의 증언이 효험을 얻었는지 경관의 표정이나 어조는 처음처럼 그다지 딱딱하지는 않았다. 그 기미를 놓치지 않고 민섭씨가 다시 말했다.
이분은 우리를 만나보고는 곧 떠나실 거요. 용건이 무어 따로 있겠소? 이분은 정말 오늘 떠날 거니까.
민섭씨의 우직스런 주장에 경관은 하는 수 없다는 듯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러면 박 주사가 이 손님의 신분에 대해서 이후라도 책임을 지겠소?
민섭씨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경관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당신은 어제부터 이 부락에서 취한 행동은 혐의를 받기에 똑 알맞은 것이었다, 따라서 앞으로는 그 점을 잘 알고 행동하라고 주의를 시키고는 돌아갔다.
경관이 돌아가고 불과 몇 분이 지났을 때 마테오의 사내동생이 언덕바지 위에로 허겁지겁 뛰어 올라왔다. 집 앞에 이르자, 녀석은 몹시 숨이 가빠하며 두 눈을 자꾸만 두리번거렸다. 마침 민섭씨와 마테오와 나는 아직까지 마당에 그대로 서 있던 참이었다.
병규야! 너 새벽부터 어딜 갔다 오냐?
그 녀석을 보고 마테오가 불쑥 물었다. 그러자 병규는 당황하여 얼굴빛이 빨개졌다. 녀석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이 놈아! 새벽부터 어딜 갔었느냐고 네 형이 묻지 않아?
방금 경관에게 경을 치른 탓인지 민섭씨의 표정은 한층 험악했다. 병규는 흥분하고 있는 제 아버지의 앞을 떠나려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마테오가 녀석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병규의 팔목을 얼른 붙잡았다.
네가 지서에 갔었지? 바른대로 말해봐.
마테오가 아우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병규는 나를 힐끗 쳐다봤을 뿐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옆에서 그 모양을 지켜보던 민섭씨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이놈이 한 짓입니다. 이걸 어떻게 한다? 손님에게 미안해서 이걸 어떻게 하냐고?
민섭씨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혼자서 쩔쩔매고 있었다. 위장이 약한 아이처럼 비쩍 마른 마테오의 동생은 허기져 보이는 눈으로 나의 반응을 열심히 지켜보았다. 그 아이의 눈빛은 방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손님을 경계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네가 그러지 않았지? 그럼 그렇다고 형에게 말해.
나는 병규의 한쪽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나는 다시 민섭씨를 향해 가령 이 아이가 제보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섭씨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았다.
이놈아! 누가 널더러 그런 짓을….
그는 더 참지 못하고 거의 울먹일 듯한 목소리로 버럭 소리치며 마당가에 뒹구는 막대기를 주워들고 병규에게로 다가섰다. 나는 얼른 민섭씨의 소매를 붙잡았다. 바로 이때 뒤란 쪽에서 영애가 앞마당으로 나왔다.
이미 동이 훤히 터 있었으므로 그녀의 얼굴을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영애는 미란이를 안고서 약간 멈칫멈칫 하면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용서해달라고 나에게 말했다. 물론 병규에 관한 얘기겠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엇이라고? 무엇이라고 했어?
뜻밖에도 나는 퉁명스럽게 그녀에게 반문했다. 나는 뒤늦게 화가 난 사람처럼 그녀를 한동안 노려보다가 영애로부터 미란이를 거칠게 빼앗아서 두 팔로 꼭 끼어안았다.
그날 아침 나는 양일부락을 떠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