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에는 몇 사람의 교우들이 미리 와서 마테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얀 옷을 입은 부녀들이었는데 모두 십리나 시오리쯤 되는 밤길을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마테오는 조그만 마루방을 공소의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마루방은 그들의 흙벽 집에서는 제일 큰 방이었다. 강당의 제단에는 세 개의 촛불이 이미 켜져 있었고 제단 앞에는 마테오의 동생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영애도 거기 있었다. 그녀는 부녀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있다가 강당의 입구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뒤로 훔칠 물러나 앉았다.
불빛이 흐릿해서 이번에도 그녀의 얼굴이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영애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이사벨라야. 왜 그래? 그녀가 놀라는 걸 보고 옆에 앉아 있던 부인이 이렇게 묻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강당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밤에 사순절 첫 번 주일 기도가 있어요. 손님께선 피곤하실 텐데 일찍 주무세요.
강당에서 다시 밖으로 나온 마테오가 이렇게 말하고 나를 뒤란으로 데리고 갔다. 내가 인도된 방은 강당 뒤켠에 붙어 있는 골방인데 겨우 두 사람이 잘 수 있을 만큼 좁다란 방이었다. 이부자리는 이미 방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옷을 벗고 자리에 눕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마테오는 강당으로 돌아갔다.
방바닥이 얼음장처럼 차가웠으나 나는 피곤해서 곧 잠을 청하려고 하였다. 이때 문득 옆에 붙어 있는 강당 쪽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와 나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기도소리는 아주 똑똑하게 들려왔다.
사랑하는 예수여, 우리를 위하여 온갖 수난을 감수 인내하신 주의 사랑을 보답하며….
마테오가 먼저 기도문의 한 구절을 읽고 나면 부녀들과 녀석의 동생들이 그것을 따라 암송했다.
…성모 마리아의 공은을 힘입어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려 하오니, 죄를 뉘우치는 마음과 그의 수난을 함께 나눌 마음을 우리에게 박아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주를 사랑하게 하시며 성직자들의 성화와 모든 죄인들의 개과천선을 은혜로이 허락하소서.
기도문을 인도해가는 마테오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의젓했다. 그를 따라서 암송하는 부녀들이나 마테오의 동생들도 결코 목청을 높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찬 마룻바닥 위에 앉아서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고 있었다.
그들이 십사처(十四處)에 이를 때까지 나는 종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물론 나는 예수의 수난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그와 같은 기도소리를 예전에도 잠자코 듣고 있었던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때에는 마테오의 어머니가 교우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마테오 어머니의 목소리는 유난히 날카로워서 그녀가 기도문을 암송할 때면 이웃집까지도 그녀의 소리가 똑똑하게 들려왔다. 그런데 그때 마테오 어머니가 자주 암송하던 기도문을 지금 나는 다시 듣고 있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천주의 성모마리아여,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새벽녘에 나는 누가 큰소리로 떠드는 바람에 잠을 깼다. 마테오야. 손님을 깨워라. 빨리 가서 손님을 깨우란 말여. 건넌방에서 민섭씨가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이내 마테오가 내가 있는 골방으로 들어오더니 관할 지서에서 경관이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나는 옷을 주워 입고 경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앞마당으로 나왔다. 경관은 자전거를 마당 한쪽에 세워놓고 민섭씨를 상대로 무엇인가 연달아 묻고 있었다. 민섭씨는 흡사 죄를 지은 사람처럼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나와 경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