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을 켜지 않고 자빠져 있는 거냐?
민섭씨는 별안간 누구에겐지 꽥 고함을 쳤다. 그러자 잠깐 동안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심지를 돋운 램프가 방안을 밝혀놓았다. 민섭씨는 어느덧 방 아랫목에 앉아서 무릎 위에 애기를 앉혀놓고 손바닥으로 애기의 뱃가죽을 연달아 문지르고 있었고 그의 맞은편에는 서로 한두어 살 터울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아이와 두 명의 계집아이가 벽을 등지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방금 마당에서 채소를 다듬던 아이도 어느 틈에 방으로 들어와 거기 끼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벙어리처럼 입을 꾸욱 다물고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난 낯선 사람을 놀란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나를 향한 채 움직일 줄 모르는 그들의 눈길에는 무엇보다 상대방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연했다.
한동안 나는 아이들의 강한 시선에 사로잡혀 어쩔 바를 몰랐다. 그들은 마치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놓여져 있는 미이라들처럼 그렇게 꼼짝하지 않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낡은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광대뼈가 드러나 보일 만큼 말라붙어 그만한 나이 때의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은 모르실 거요. 모두 그 이후로 태어난 애들이죠.
미란이의 뱃가죽을 문지르면서 민섭씨가 나에게 말했다.
이 애들아, 손님에게 인사드려. 이분은 고마운 아저씨라구. 이분이 우리를 일부러 찾아주셨어.
나를 지켜보던 아이들의 얼굴에 잠깐 영문 모를 감동의 기색이 스쳐갔다. 그들의 시선도 약간 부드러워졌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마저 떠올랐다. 두 명의 사내아이와 두 명의 계집아이는 미리 연습이라도 해두었던 것처럼 일제히 무릎을 꿇고 방바닥에 성급하게 이마를 부딪쳤다.
그건 그렇고, 손님이 시장하실 텐데. 이애, 영자야. 빨리 저녁 준비를 해야지.
민섭씨는 이때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영자를 바라보았다.
언니가 와야 돼요.
영자는 간단하게 대꾸할 뿐,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무가 없냐?
민섭씨가 기어드는 소리로 또 물었으나 영자는 이번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그녀의 대답은 충분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약주라도 한 되 받아와. 손님을 이렇게 앉혀둘 수야 있냐.
아닙니다. 술 같은 건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자꾸만 사양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벽장 속에서 커다란 약주병을 꺼내들고 영자를 재촉했다.
빨리 약주 한 되 받아와. 꾸물대지 말고 빨리.
아저씨는 벌써 술을 하셨군요. 저는 정말 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귀한 손님인데. 나는 물론 전작이 있지요. 저녁나절에는 약주 한잔 마시지 않고는 염판에서 돌아오기 힘들지요. 그놈의 바람이 귀를 따갈 것 같은걸.
영자는 술병을 받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영자가 나간 사이에 청년 하나가 장지문을 열고 방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는 방안에 앉아 있는 낯선 얼굴을 발견하고는 적이 놀란 듯 눈을 두리번거렸다. 겨우 스무 살을 넘겼을 듯한 청년인데 오랫동안 병을 앓은 사람처럼 얼굴빛이 창백했다.
너 어디 있다가 오는 거냐?
청년을 보자, 민섭씨가 버럭 역정을 냈다.
뒷방에서 자고 있었어요.
자고 있었다고? 이 녀석아. 잠으로 끝장을 볼 참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