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섭씨는 다시 나를 향해 이아이가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테오를 모르시던가요?

 

민섭씨는 사뭇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되물었다.

 

아아, 마테오.

 

나는 불현듯 소리치면서 벌떡 일어서서 청년의 굵다란 팔목을 힘껏 붙잡았다. 엉겁결에 내게 팔목을 붙잡힌 녀석은 더욱 어리둥절해진 눈초리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영애는 어디 있어요? 영애가 여기 있나요?

 

그제서야 나는 마테오의 누이인 영애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있어요. 산에 나무하러 갔어요.

 

이번에는 마테오가 대답했다.

 

벌써 바깥이 캄캄해졌을 텐데, 이렇게 늦게까지 산에 있다고?

 

이미 밤이 되었고 더구나 지금은 겨울인데 산에서 땔감을 구한다는 일이 나는 얼핏 믿어지지 않았다.

 

낮에는 산림 감시원 때문에 산에 갈 수 없지요.

 

마테오가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네가 마테오냐?

 

여전히 녀석의 팔목을 붙잡은 채 내가 물었다. 녀석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머리만 몇 번 끄덕거렸다. 마테오의 표정이 너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이때 민섭씨가 옆에서 거들었다.

 

너는 이분을 몰라보겠냐?

 

마테오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섭씨는 다시 이분이 누구라는 것을 간단히 설명하고는 끝으로 이분이 일부러 우리를 찾아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테오의 표정에도 역시 손님을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기색이 역연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녀석의 얼굴은 전혀 입을 열려고 하지 않고 손님인 나를 싸늘한 눈초리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몹시도 답답했다. 하지만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마테오의 말은 도리어 당연했다. 나는 마테오의 팔목을 놓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아이가 그때 몇 살이나 되었을까요?

 

민섭씨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한참동안 생각한 다음에 대답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지요.

 

그렇다면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이었겠군. 이애는 워낙 여기서만 주욱 갇혀 살고 있으니까 사교성이 도무지 없어요. 그러나 영애는 기억하고 있을 거요. 그 애는 마테오보다 다섯 살이나 위니까.

 

약주를 마시면서 민섭씨는 취기가 오름에 따라 말이 더욱 많아졌다. 그는 여태 감춰오던 아주 구차스런 얘기까지 서슴지 않고 꺼내놓았다. 민섭씨는 지금 자기 마누라가 부재중이라서 오늘 저녁식사 대접이 여의치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육년 동안 척추결핵을 앓아오다가 방금 치료를 받으려고 광주의 병원으로 갔다는 것이다.

 

육년이나 되었는데 이제야 치료를 받으러 갑니까?

 

내가 이렇게 묻자, 민섭씨의 표정이 병자처럼 일그러졌다.

 

보다시피 무어 가진 게 있어야 말이지요.

 

그는 두 손바닥을 활짝 펴보였다. 그는 자기가 사실은 염전의 전주가 아니고 이제는 염판의 일개 품팔이꾼이 되었노라고 털어놓았다. 염판에서는 일당 삼백 원씩 받는데 그것도 날씨가 궂은 날은 일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민섭씨가 염전의 전주라고만 생각되었다. 그의 풍채나 말씨는 아직도 전주다왔다. 그렇게 생각되는 민섭씨가 품삯이 너무나도 박하다고 투덜거릴 때 나는 적이 당황했다. 어떻게 하여서 염판의 품팔이꾼이 되었느냐는 따위의 말은 나는 묻지 않았다. 민섭씨가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떠들었다.

 

이 아이들은 소학교도 미처 마쳐주지 못하게 되어다오. 작년에 자진퇴학을 시켰거든요. 저놈만은 간신히 중학을 마쳤는데, 그러나 지금 중학 졸업장이 무엇에 소용됩니까?

 

그는 턱으로 마테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부지중에 어성을 높여 그렇다면 아직 어린아이들을 언제까지 방안에 가둬둘 참이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민섭씨는 대답 대신으로 한번 길게 한숨을 쉬고 나서, 아주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비록 막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가 돼버렸지만 새로 일할 만한 곳을 찾아 어디든지 가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아직 나이 젊었을 때 일찍 이곳을 떠났어야 하는 건데. 그는 이렇게 탄식하였다. 그러나 한편 이 염산을 떠나기가 몹시 겁이 난다고도 말했다. 굶어죽기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웬일인지 염산을 떠나기가 두렵다는 것이다.

 

지금 나의 생각으론 인천이나 군산 쪽으로 가볼까 해요. 그쪽 염전에 찾아가 보면 설마 나 한 사람 일할 자리야 없을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