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언제 제일 외롭지?”
뒷골목 노천카페에서 잠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명진에게 물었다. 우리는 방금 도심 거리인 트베르스카야 대로를 지나 이곳으로 왔다.
“푸훗!” 너무 엉뚱한 질문에 명진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조금 전 비브리오첵카 이미나레니나 역 플랫폼에서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던 명진의 모습을 나는 떠올렸다. 자기를 찾기 쉽게 하려고 그녀는 언제나 에스컬레이터 앞에 오뚜기처럼 서서 나를 기다린다. 그렇게 봤기 때문일까? 표정 없는 얼굴로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백인들 사이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쓸쓸하게 보였다.
“저는 외로운 걸 못 느껴요. 너무 바빠서요.”
웃음이 담긴 눈으로 명진이 나를 바라본다. 정직한 답변일까?
“설마 그럴까? 이 먼 나라에 와서 친구도 없이 십 년 넘게 지내는데 외로움을 못 느껴?”
“친구가 왜 없어요? 저 친구 많아요. 한국 애들보다 러시아 친구가 많거든요. 교회 가면 물론 한국 애들도 많이 만나지만. 그런데 그 애들과 깊은 얘기는 못해요. 도리어 러시아 애들하곤 깊은 얘길 자주 하죠.”
“넌 러시아 말을 잘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러시아 말을 잘 해서가 아니고요. 하긴 잘 못하는 편도 아니지만. 아무튼 저는 러시아 애들과 대화가 잘 통해요.
“왜 그럴까? 한국 친구들에겐 감추고 싶은 게 많아서 그럴까?”
명진은 눈을 굴리며 잠자코 있다. 나는 그녀가 정직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선생님은 언제 외로움을 느끼세요? 외로우세요?”
잠시 어둡던 명진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왜? 그런 걸 묻지? 이번에는 내가 기습받은 기분이다.
“자꾸 그 말씀을 되풀이하시는 게 수상쩍어서요. 결국 외로워서 러시아도 오신 거군요.”
“외로워서 러시아까지 왔다.” 나는 그 말을 흉내 냈다.
“나는 미처 못 느꼈는데 듣고 보니 그럴듯하군.”
“친구를 찾아서요. 제가 맞췄죠?”
그녀에게 내 맘 속 깊은 곳을 발각당한 기분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역시 그것이 진실인가.
“친구라니, 누가 내 친구야?”
“K 선생과 좋은 친구가 될지 누가 알아요?”
“나는 그 사람에 관해 아는 게 조금도 없어. 더구나 말도 통하지 않는데.”
“그래도 지금 그 분을 기다리고 있지 않아요? 친구끼리 구태여 말이 필요 없는 때도 있어요. 진실된 관계는 말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문 군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러나 가상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그런 말이 내겐 조금도 실감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