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툴스카야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불과 삼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툴스카야 역은 도심의 환상선(環狀線) 깔쪼에서 고작 두 정거장 바깥으로 나오는 위치에 있다. 아파트는 아주 낡았고 주로 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교통 사정은 좋은 편이다. 도심까지 불과 십 분이면 달려갈 수 있다. 하나뿐인 방에는 피아노와 미니 컴포넌트가 있고 이름 난 바이올린 연주가들의 각종 음반이 수 십 장 진열되어 있다. 음악도인 방의 주인이 남겨둔 물건들인데 덕분에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나는 자주 음악 감상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파트는 사 층인데 나는 공기 순환을 위해 뒤쪽 베란다 창을 종일 열어 두고 지냈다. 뒤편에는 으슥한 골목길이 있고 그 길 저쪽에는 큰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볼품없는 숲이 있다. 골목길에는 가끔 행인들이 지나가고 쓰레기를 거두어 가는 1톤 트럭이 들어와서 잠시 머물기도 했다. 해가 밝은 오전에는 유모차를 끌고 한가롭게 걷고 있는 근처 단지의 젊은 주부들도 눈에 띄었다.
해질녘이 되면 술을 거나하게 마신 행인이 혼자 무슨 말을 중얼거리며 비틀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주정꾼도 손에는 그날 구입한 식료품을 담은 손가방을 으레 하나씩 들고 있었다. 이 골목길 허공에는 전선 몇 가닥이 지나가고 있는데 낮에는 언제나 비둘기들이 네댓 마리, 때로는 수십 마리씩 전선 위에 떼 지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끔 아파트 주방 창턱으로 날아와 앉아 있는 비둘기를 발견할 때도 있었다. 비둘기가 주방 창턱까지 날아온 이유가 음식 냄새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바로 눈앞에 나타난 새가 언제나 반가웠다. 이방의 새들이 낯선 이방인을 낯가림하지 않고 찾아 준 사실이 고마운 것이다. 그런 새를 발견하면 나는 비둘기와 몇 마디 얘기라도 주고받을 것 같은 기대감에 설레면서 창턱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서서 손님의 동태를 살핀다. 만약 새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러시아 말이 아니라도 서로 뜻이 통하지 않을까? 새들은 국적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기척을 느낀 비둘기는 내게 한 마디 인사말도 건넬 틈을 주지 않고 자기 친구들이 있는 전선 쪽으로 잽싸게 날아가 버리곤 했다.
‘먹을 걸 조금 마련해 두고 손님을 기다려야 할까?’
다음에는 새의 먹거리를 창턱에 놓아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조반으로 먹다 남긴 식빵 부스러기를 주방 창턱에 놓아두고 새를 기다렸다. 지하철역 부근에 있는 종합상가 건물 앞마당에는 정말 많은 비둘기들이 떼 지어 놀고 있다. 아마 수백 마리쯤 될 것이다. 그 부근에 먹거리가 풍부한 탓인지 새들은 살이 통통 올라 있다. 너무 살이 쪄서 뒤뚱거리며 걷는 새도 있다.
이 새들은 사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빵부스러기나 과자 조각을 던져 주면 새들은 사람의 턱 밑까지 다가와 먹거리를 말끔히 먹어 치우고 천천히 물러난다. 새는 내가 먹이를 창턱에 놓고 주방에 머무는 동안에는 한 차례도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잠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창턱에 놓아둔 먹이는 어느새 치워지고 없었다. 비둘기가 와서 먹고 돌아간 것이다. 나는 비둘기와 서로 말을 트는 데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러시아 말을 거의 한 마디도 입 밖으로 꺼낼 줄 모른다. 오래 전 간단한 인사말 몇 마디를 익혔으나 정확한 발음은 잊어 버렸고 그런 서툰 발음으로 지껄일 용기가 나지 않아 아예 입을 굳게 닫아 버렸다.
언어 때문에 나는 이 도시에서 벙어리이고 귀머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치 자폐증에 빠진 소년처럼 혼자 문 밖으로 나가기가 겁났다. 엉뚱하게 먼 나라까지 와서 수인처럼 갇혀 살고 있다고 문 군에게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길을 걷다가 아담한 카페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잠시 쉬고 싶어도 나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이런 때 명진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피아노 연습에 바쁜 그녀를 아무 때나 불러낼 수는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 놓고 찾아가는 식당이 하나 있다. 종합상가 건물 일층에 있는 피자 코너인데 나는 대체로 하루 한 차례는 그 가게 바깥에 임시로 마련된 야외 식탁에 앉아 있곤 했다. 그 가게 메뉴가 식성에는 맞지 않아도 거기서는 러시아 말을 한 마디 하지 않아도 간단하게 한 끼 해결이 되었다.
피자 코너는 모든 메뉴를 큰 유리 진열장 속에 진열해 두기 때문에 내가 손짓과 함께 한국말로 ‘이것!’ 혹은 ‘저것!’이라고 외치면 종업원은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초기에는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한국말의 이 지시대명사를 듣고 식당의 젊은 아가씨들이 자기네끼리 눈을 마주치며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곤 했으나 같은 일을 몇 번 경험하자, 그들도 나의 독특한 주문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