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뭐지? 저 그림 괜찮은데.” 

 

작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귀를 쫑긋 세우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앙증맞은 모습에 나는 움찔했다. 

 

“저 책 제목이 뭔가? 동화 같기도 한데.” 

 

서점에서 나오다가 행길 쪽 진열장에 놓인 책의 표지를 발견하고 나는 명진에게 물었다.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서서 표지 그림을 들여다봤다. 

 

“네. <넌 언제 외롭니?>라는 제목이네요.” 

 

‘넌 언제 외롭니?’ 나는 명진의 소리를 흉내 냈다. 

 

“그 제목 재미있네. 무슨 책일까?” 

 

명진이 재빨리 서점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책을 대강 살펴보고 밖으로 나왔다. 

 

“동화책이 아니에요. 애완동물, 그러니까 강아지 말고도 고양이, 다람쥐, 거북이 등을 잘 기르고 먹이는 사육 가이드예요.” 

 

“저 책 한 권 사 볼까?” 나는 그림에 끌려 가벼운 유혹을 느꼈다. 

 

“애완동물 사육가이드가 필요하세요?” 

 

“아니, 그냥 제목과 그림이 맘에 들어.” 

 

“제목만 보고 책을 사세요? 호호, 그림이 아니고 사진인데요.” 

 

명진이 웃는 바람에 책을 사겠다는 충동이 금방 사라졌다. 명진과 함께 행인들이 붐비는 인도를 다시 걷고 있는데 방금 본 책 표지에 나온 강아지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가 묵고 있는 아파트 거실 피아노 위에는 명함 크기만 한 강아지 사진 한 장이 놓여 있다. 나는 집을 떠날 때 그 사진을 특별히 마련해 가지고 왔다.

 

사진은 여름 풀밭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 잠시 멈춰 서서 제 주인을 바라보는 그리미의 모습이다. 내가 방금 책 표지의 사진을 보고 움찔 놀란 건 그 사진이 그리미의 얼굴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리미는 그림처럼 예쁘다고 아내가 붙여준 이름이다. 그리미는 이웃집 젊은 부부가 집을 옮겨 가면서 우리에게 억지로 떠맡긴 강아지이다. 이 조그만 개는 처음부터 크게 환영받지는 못했지만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자기의 노력으로 완전한 우리 집 가족이 되었다.

 

집에 있을 때 나는 그리미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많은 대화도 나눈다. 물론 나 혼자 개를 향해 일방적으로 떠드는 소리지만 이건 혼자 벽을 향해 지껄이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개는 아마 내가 던지는 말들 가운데서 적어도 몇 마디는 이해할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어쩌다 찾아온 손님에게 그리미가 음악도 듣는다고 허풍을 친 적도 있었다. 

 

“이 강아지가 바흐를 듣는다고요?” 

 

내 농담에 손님은 정색을 하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농담이라고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반드시 농담이라고 할 수도 없을 걸’ 하고 중얼거린다. 그리미는 주인이 음악을 들을 때 주인의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아 음악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침묵을 지켜 준다. 이처럼 그 시간에 걸맞게 행동하는 그리미가 음악을 전혀 듣지 않는다고 단언할 근거가 내게는 없다. 

 

‘넌 언제 외롭지?’ 나는 아마 그리미와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하는 동안 이 물음을 수차례 그리미에게 던졌을 것이다. 내가 많은 시간을 녀석과 함께 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사실 그리미는 늘 외롭다. 친구도 피를 나눈 가족도 그리미에게는 없다. 가족이 누군지도 모른다. 아마 녀석이 가장 두렵고 겁내는 건 외로움일 것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녀석은 필사적으로 주인의 바지 자락에 매달리고 주인의 이부자리 속으로 기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