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콘스탄찌노보는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는 러시아에서 십사 년째 살아오지만 그렇게 풍광이 좋은 곳은 처음 봤어요. 직접 가서 보시면 선생님도 감탄이 절로 나올 겁니다.”
문 군은 몇 달 전 K가 그를 그곳으로 데려가서 하루 동안 머물다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논문 준비로 시간에 쫓기지만 않았다면 며칠 더 묵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는 말도 했다.
“아름다운 호수도 있고 중부 러시아의 멋진 전원 풍경을 볼 수 있어요. 그런 곳에 가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죠. 러시아에서 몇 해씩 생활해도 그런 곳에 가 볼 기회가 좀처럼 없거든요.”
내게 K를 연결해 준 서울의 L 교수도 랴잔 주의 다차에 관해 문 군과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콘스탄찌노보에 대한 내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모스크바에 와서 K를 기다리는 동안, 기대감은 조금씩 식어 갔다. K가 약속된 날짜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콘스탄찌노보는 실재하는 땅이 아닌, 소재지도 확인되지 않은 추상적인 지명으로 차츰 변했다.
K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를 기다린 지 벌써 달포가 지났다. K와 나를 연결해 주는 문 군도 그가 언제 모스크바로 돌아올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문 군은 그와 통화가 가능하긴 해도 저쪽에서 전화기를 자주 꺼 놓고 있거나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서 K의 목소리 듣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도리어 내게 하소연한다. 통화하기 어렵기는 문 군 쪽도 녹록치 않다. 그는 시내에 있지만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그는 학위 논문 최종 심사가 바로 코앞에 닥쳐서 끼니 찾아 먹는 것도 잊고 지낼 만큼 바쁘다는 것이다.
문 군은 낮에 도서관이나 논문 지도교수 댁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숙소에는 늦은 밤에 돌아간다. 문 군의 휴대폰도 먹통 상태일 때가 잦다. 그는 문체가 매우 까다롭기로 소문난 제정시대 작가 자미아찐의 작품을 논문 주제로 삼았는데 그의 문장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떤 때는 휴대폰 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게다가 지도교수라는 노인은 성격이 까다롭고 엄격한 인물로 그의 옆에 있는 동안 어쩌다 문 군의 휴대폰 벨소리라도 울리면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무서운 눈초리로 문 군을 노려본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나와 콘스탄찌노보 사이에는 첫 목적지인 짙은 안개가 첩첩이 쌓여 있는 것이다.
K는 모스크바에서 수천 킬로나 떨어진 카자흐스탄의 알마타에 머물고 있다. 러시아 시민인 그가 생활 근거가 그곳이고 이 여름에 왜 그곳에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K는 정말 그곳에 있는 것인가?’ 혹 그는 지금 모스크바 거리를 활보하면서 입장이 난처해서 나를 외면하느라고 엉뚱한 속임수를 쓰는 건 아닐까?’
가끔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들 때도 있다. K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모르는 나는 그런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K가 거기서 하는 일이 뭐요?”
“저야 알 수 없죠. 워낙 바쁜 분이니까. 거기서 정리할 일이 있나 본데 내용은 모릅니다. 어른에게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묻기도 곤란하고요.”
가끔 가뭄에 콩 나듯 나는 문 군과 통화 기회를 갖는다. 도서관이나 지도교수 댁에서 용무를 다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불쑥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그는 어두운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전화를 하는지도 모른다. 음악도인 명진을 자기 대역으로 내게 소개시킨 것도 이런 전화를 통해서였다.
‘음악 얘길 나눌 수 있을 거라고 했더니 기꺼이 선생님을 위해 시간을 내겠대요. 그 학생에게 아파트 전화번호를 알려줬어요.’ 바로 다음날 레닌도서관 광장으로 나가서 나는 명진을 만났다.
“계시는 아파트는 어떻습니까? 역시 오래된 아파트라 불편한 점이 많으실 텐데요.”
“잠자고 쉬는 데는 불편은 없소. 요즘은 비둘기가 내 친구요. 비둘기랑 얘기하다 보면 하루해가 그냥 저물어 가요.”
“툴스카야 역 근처에 비둘기가 엄청나게 많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제가 시간 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