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라도레의 탑이군." 제로니모가 말했다. 까를로는 눈을 들었다. 그는 제로니모가 얼마나 정확하게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볼라도레의 탑이 지평선 너머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 멀리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까를로에겐 마치 그 사람이 길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선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람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까를로는 그 사람이 국도에서 자주 만나곤 하던 헌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까를로는 좀 놀랐다. 그 헌병이 가까이 왔을 때에야 그가 삐에르 테넬리라는 것을 알아보고 안심했다.

과거 어느 오월에 두 형제는 모리니요네의 라가찌 호텔에서 그와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헌병은 자기가 옛날에 하마터면 어느 부랑인한테 칼로 찔려죽을 뻔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어떤 사람이 길에 멈춰 섰어." 제로니모가 말했다.

"헌병 테넬리야." 까를로가 말했다.

그들은 헌병에게 가까이 갔다.

"안녕하세요? 테넬리 씨." 까를로는 말하고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어쩔 수 없게 됐다." 헌병이 말했다. "너희 둘을 우선 볼라도레의 지서까지 연행을 해야겠다." "예?" 장님이 외쳤다.

까를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은 아닐 거야. 여기 아래쪽에서 벌써 그 일을 알 리가 없으니까...'

"어차피 너희들 가는 길하고 같은 방향이니까..." 헌병이 웃으면서 말했다. "함께 가도 너희들 별 일은 없을 거야."

"왜 아무 말도 안 해, 형?" 제로니모가 물었다.

"응, 그래. 이야기할게. 제발, 헌병 나리... 대관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도대체 저희들이 무얼... 제가 혹시 무슨... 정말이지 전 아무것도 모르겠는데요."

"어쩔 수 없어. 아마 넌 무죄일지도 몰라. 내가 뭘 알겠어. 하여간 너희들은 저 위에서 손님들 돈을 훔쳤다는 혐의야. 그래서 우리는 너희들을 붙잡아 가두라는 전보를 받았단 말이야. 그래, 너희들은 죄가 없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어쨌든 함께 가자!"

"왜 아무 말도 없어, 형?" 제로니모가 물었다.

"내가 이야기할게. 응 그래, 내가 이야기할 거야."

"자, 이젠 가자! 거리에 이렇게 서 있으면 뭐할 거야? 햇볕이 따갑잖아. 한 시간 안으로 목적지까지 가야 해. 자, 어서 가자!"

까를로는 이제까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제로니모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천천히 걸어갔다. 헌병이 그들의 뒤를 따르고...

"형, 왜 말이 없어?" 제로니모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제로니모,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모든 것이 밝혀지겠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 때 이런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법정에 서기 전에 동생에게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안될 일이다. 헌병이 우리가 하는 얘기를 다 들을 테니까.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법정에서 나는 말해야지... 재판장님... 이렇게 말해야지... 다른 도둑질과는 다릅니다, 그러니까 설명을 드리자면...

그는 머릿속으로 법정에서 이 사건을 분명하고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찾느라고 애를 썼다. '어제 어떤 신사분이 마차를 타고 고개를 넘어가다가... 그 사람은 미치광이였는데... 혹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요... 그래서 그 사람이...'

도대체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란 말이냐! 누가 그런 말을 믿어줄 것인가?... 그가 이렇게 주절주절 지껄이게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다. 이 따위 어리석은 이야기를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로니모조차도 그걸 믿어주지 않는다. 그는 옆에 있는 동생을 쳐다보았다. 장님의 머리는 오랜 습관대로 발걸음에 따라 박자를 맞춰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 얼굴 표정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공허한 시선은 멍하게 위를 향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까를로는 갑자기 동생의 이마 뒤에서 어떤 생각이 오가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역시 그랬어...' 제로니모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형은 나한테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것도 훔쳤던 거야. 형은 그래도 괜찮겠지... 눈이 멀쩡하니까. 그래서 형은 그 눈을 잘 써먹고 있는 거라구...'

그렇다. 제로니모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틀림없다... 내게서 돈이 발견되지 않는다 해도 그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법정에서나 제로니모 앞에서나 마찬가지다. 나는 감옥에 갇힐 것이다. 그리고 동생도... 그렇다. 나와 마찬가지로 동생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동생은 금화를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더 이상 생각을 계속할 수 없었다.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다.

그는 자기가 이 사건 전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지 나는 한 가지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난 일년 동안이라도 기꺼이 감옥에 들어갈 것이다... 만일 제로니모가, 형이 자기를 위해 도둑질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만 한다면... 10년이라도 좋다.

그때 제로니모가 갑자기 멈춰섰다. 그래서 까를로도 따라서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헌병이 화를 내며 물었다. "자 빨리 가자!" 그때 헌병은 장님이 갑자기 기타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두 손으로 형의 볼을 더듬는 것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장님은 그리고 나서 입술을 까를로의 입에 가까이 대고 형에게 입을 맞추었다. 까를로는 처음에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희 자식들 지금 미친 거야?" 헌병이 물었다. "얼른 가잔 말이야! 너희 때문에 햇볕에 타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제로니모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땅바닥에서 기타를 집어들었다. 까를로는 길게 한숨을 쉬고 손으로 다시 제로니모의 팔을 붙잡았다. 도대체 그럴 수가 있을까? 동생이 더 이상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니! 마침내 제로니모가 모든 걸 알아차렸단 말인가? 그는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옆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가!" 헌병이 소리쳤다. "이 자식들, 아무래도 맛을 봐야겠군!" 그리고 헌병은 까를로의 옆구리를 한 대 갈겼다.

까를로는 눈먼 동생의 팔을 꼭 부여잡고 앞으로 이끌며 다시 걸어갔다. 그는 전보다  훤씬 더 빨리 걸었다. 제로니모가 어린 시절 이래 두 번 다시 보여주지 않았던, 부드럽고 복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까를로도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제 자기에게 더 이상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법정에서나 또 이 세상 다른 어느 곳일지라도. 그는 다시 동생을 얻은 것이다... 아니, 그는 처음으로 동생을 얻은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