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는 벌써 떠났다. 그러나 제로니모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까를로는 감히 나서서 노래를 그만 하게 할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 목소리가 또다시 떨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때 이층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리아가 제로니모를 불렀다. "도대체 왜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그래? 나는 노래를 들어도 한 푼도 못 줘!"

제로니모는 멜로디 중간에서 노래를 그쳤다. 마치 그의 목소리와 기타 줄이 동시에 끊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까를로가 그 뒤를 따라갔다. 객실에서 그는 동생의 옆에 앉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동생에게 사실을 알려주려고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제로니모야." 그는 말했다. "너에게 맹세할게... 생각해 보란 말이야. 제로니모야,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믿을 수 있니? 내가... 그렇게..."

제로니모는 말이 없었다. 그의 죽은 눈이 창을 통해 잿빛 안개 속을 내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까를로는 계속 이야기했다. "자, 그래. 그가 미치지 않았다고 해도 좋아. 하지만 그는 뭔가 잘못 알았을 거야. 그래, 그 사람은 뭔가 잘못 생각한 거야." 그러나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 자기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그걸 느끼고 있었다.

제로니모는 초조하게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까를로는 갑자기 쾌활하게 말을 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러겠니? 내가 너와 똑같이 먹고 마신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새 옷이라도 사면 너도 그걸 잘 알고 있잖아. 내가 무엇 때문에, 도대체 뭘 하려고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겠어? 도대체 그 돈으로 내가 뭘 한단 말이야?"

그러자 제로니모가 이빨 사이로 씹어뱉듯이 말했다. "거짓말 하지 마! 나는 형이 거짓말하는 걸 잘 알고 있어!"

"거짓말이 아니야! 제로니모야, 지금 거짓말하는 게 아니야!" 까를로는 놀라서 말했다.

"에이, 벌써 그 여자에게 돈을 준 거야. 그렇지? 아니면 그 여자가 나중에 그 돈을 받겠지. 그렇지 않아?" 제로니모가 소리쳤다.

"마리아 말이야?"

"마리아가 아니고 누구겠어? 에이, 거짓말쟁이, 도둑놈!"

제로니모는 탁자에서 그의 옆에 앉아 있고 싶지도 않다는 듯 팔꿈치로 형을 밀쳤다.

까를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음엔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방을 나와 계단을 지나 가운데 뜰로 걸어갔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눈앞에 푸르스름한 안개에 잠겨 있는 길거리를 내다보았다. 비는 이미 그쳤다. 까를로는 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갔다. 마치 동생에게 쫓겨난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건 도대체 무슨 인간이었을까? 1프랑을 주고는 20프랑이라고 말하다니! 그 사람은 필경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까를로는 자기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일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그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보내 원수를 갚으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는 한 번도 누구를 모욕하거나 진심으로 누구와 다툰 적이 없었다. 그는 정말 지난 20년 동안 손에 모자를 들고 길거리나 뜰에 서 있었던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었다. 혹시 누가 여자 때문에 그에게 앙심이라도 품었을까?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여자와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 라 로자에서 만난 웨이트리스가 마지막이었다. 과거의 어느 봄이었지!

그러나 그 여자 때문에 그에게 앙심을 품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알지 못하는 저 바깥 세상에서는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살고 있단 말인가? 그들은... 온갖 곳에서 몰려온다.

나는 그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인가...? 제로니모에게 '내가 네 형에게 20프랑 주었다'라고 말한 것은 그 낯선 사람 나름대로 분명 무슨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 그렇다. 그러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갑자기 제로니모가 자기를 의심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그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무슨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까를로는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객실로 들어섰다. 제로니모는 벤치 위에 쭉 뻗고 누워 있었다. 까를로가 들어온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마리아가 두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왔다. 그들은 식사 중에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마리아가 접시를 치울 때 제로니모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마리아에게 말했다. "그걸로 도대체 뭘 사려는 거야?"

"대관절 뭘 산다는 거에요?"

"그래, 뭘 사는 거야? 새 치마? 아니면 귀걸이?"

"도대체 저 사람이 나더러 무슨 얘길 하는 거에요?" 마리아가 까를로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는 동안 아래 뜰에서 화물 마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큰 소리가 들리자 마리아는 서둘러 내려갔다. 2,3분 뒤 마부 세 사람이 오더니 식탁에 자리잡고 앉았다. 주인이 그들에게 가서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날씨가 좋지 않다며 투덜댔다.

"오늘 밤에는 아마 눈이 올 거야." 한 사람이 말했다.

두 번째 마부가 자기는 10년 전 8월 중순에 고개 위에서 눈에 덮여 하마터면 얼어죽을 뻔했다는 얘기를 꺼냈다. 마리아는 그들 있는 곳에 가서 앉았다. 하인도 곁에 와서 산 아래 보르미오에 사는 자기의 부모들의 소식을 물었다.

그때 여행객을 태운 마차가 한 대 또 들어왔다. 제로니모는 노래를 불렀다. 까를로는 모자를 내밀었다. 여행객들은 그들에게 적선하는 돈을 던져 주었다. 제로니모는 이제 아주 침착해 보였다. 그는 이따금 "얼마야?" 하고 묻고는 까를로의 대답을 듣고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안 까를로는 뭔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는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자기는 그걸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느낌이 계속 들어 답답했다.

형제는 다시 계단을 올라왔다. 이층에서는 마부들이 뒤섞여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웃고 있었다. 제일 젊은 마부가 제로니모에게 소리쳤다. "우리 앞에서도 뭐 좀 좋은 걸 노래해봐! 돈을 줄 테야! 안 그래?" 그는 이렇게 말하며 다른 마부들을 돌아 보았다.

그때 마침 붉은 포도주를 한 병 들고 온 마리아가 말했다. "오늘은 저 사람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마세요. 지금 기분이 무척 좋지 않으니까요."

대답 대신 제로니모는 방 한가운데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마부들은 다들 박수를 쳤다.

"이리 오게, 까를로!" 한 사람이 불렀다. "우리도 아래 손님들처럼 모자에다 돈을 던져 주겠어!" 그는 잔돈을 꺼내 까를로가 내밀고 있는 모자 속에 떨어뜨리려는 듯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장님이 그 마부의 팔을 꼭 붙잡고 말했다. "저에게 주세요! 차라리 저에게요! 옆으로 떨어지잖아요! 옆으로 떨어진단 말이에요..."

"어떻게 옆으로 말인가?"

"에이 참! 마리아 다리 사이로 말이죠!"

모두들 웃었다. 주인과 마리아도 웃었다. 까를로만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동안 제로니모는 한 번도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리 와서 앉게나!" 마부들이 외쳤다. "이 친구 재미있구먼!" 그들은 제로니모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서로 다가 앉았다. 대화가 뒤섞이면서 자꾸 요란해지고 또 문란해졌다. 제로니모는 이전보다 한결 더 소리를 높이고 유쾌하게 떠들어댔다. 그리고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마리아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자 그는 마리아를 자기에게 끌어당기려 했다. 마부 한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이 여자애가 예쁜 것 같은가? 실은 늙어빠진 못난 할망구란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