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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이 나무 계단 위로 가까워졌다. 여행객들은 이제 잠을 자러 갔다. 갑자기 그의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갔다. 저쪽 방에 가서 문을 노크하고, 손님들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사실 그대로 설명하는 거다. 그래서 그들에게 20프랑을 도와달라고 간청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런 생각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그들은 그의 이야기를 아예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문득 자기가 어두운 길에 서 있을 때 마차에 타고 있던 창백한 사나이가 깜짝 놀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시트 위에 몸을 눕혔다. 방안은 무척 어두웠다. 노동자들이 뭐라고 목소리를 높여 떠들면서 무겁게 나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양쪽 문이 닫혔다. 하인이 다시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서는 완전히 조용해졌다. 까를로는 다만 제로니모가 코를 고는 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다.
어지러운 꿈 속에서 그의 생각은 두서없이 혼란스러웠다. 눈을 뜨자 주위는 아직도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는 창문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눈에 신경을 집중시키자 꿰뚫어 볼 수 없는 어두움 가운데서도 짙은 회색 사각형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제로니모는 여전히 술에 취해 무거운 잠에 시달리고 있었다. 까를로는 내일 낮을 생각했다. 소름이 끼쳤다.
까를로는 이 날이 지나고 그 다음날, 그 다음날이 지나고 또 그 다음날... 자기 앞에 다가올 미래를 생각했다. 그러자 자기 앞에 놓인 절박한 고독에 대한 전율이 그를 휩쌌다. 왜 어제 저녁에는 그리도 용기가 없었을까? 왜 그 낯선 손님들에게 가서 20프랑만 도와달라고 부탁해보지 않았을까? 그들은 분명 그를 동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왜 말하지 않은 것이 더 좋았을까? 그는 느닷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의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왜 말하지 않은 것이 더 좋은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만약 부탁을 거절했다면... 하여간 자기는 그들에게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회색 점을 응시했다. 그것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지와 반대되는, 방금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저쪽 방의 문은 모두 잠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잠에서 깰지도 모른다. 그렇다, 저기 어두움 한복판에 있는 반짝이는 회색 점은 벌써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지 않은가!
까를로는 마치 그곳으로 끌리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마를 차가운 유리에 갖다 댔다. 도대체 나는 왜 일어났을까? 도대체 뭘 하려고... 그것은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범죄인 것이다! 하지만 재미로 수백 마일씩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20프랑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실상 그 돈이 없어진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맞은 편 문으로 걸어가서 살그머니 열었다. 두 발자국 거리밖에 되지 않는 다른 문은 닫혀 있었다. 기둥의 못에 옷들이 걸려 있었다. 까를로는 손으로 그 위를 더듬었다. 그렇다, 손님들이 지갑을 호주머니에 넣어 두었다면 일은 매우 간단하다. 더 이상 구걸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호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우리 방 시트 위로 돌아갈 것인가.
그러나 20프랑을 마련하는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위험하지 않고, 그리고 보다 정당한 방법 말이다. 3,4 쎈티시모씩 적선 받은 돈에서 조금씩 모아 20프랑이 모일 때까지 남겨두고, 그리고 나서 그걸 금화로 바꾼다면?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몇 달, 아마도 일 년은 걸릴 것이다. 아 나에게 용기가 있다면 좋으련만! 아직도 그는 복도에 서 있었다. 그는 문쪽을 넘겨다 보았다. 위에서 바닥으로 똑바로 드리워진 줄은 무엇일까?
그럴 수가 있을까? 문이 그냥 닫혀 있을 뿐, 잠겨 있지 않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도대체 그걸 보고 왜 이리 놀라는 것일까? 지난 몇 달 동안 그 문은 계속 잠겨있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잠그겠는가? 지난 여름 내내 이 방에서는 단 세 번밖에 손님이 묵지 않았다. 두 번은 견습공들이었고, 한 번은 발을 다친 관광객이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다. 이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그리고 행운이 있기를!
최악의 경우는 두 사람이 눈을 뜨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에는 또 나름대로 변명할 구실이 있을 것이다. 그는 문틈으로 방안을 엿보았다. 방이 캄캄해서 당장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두 사람의 희미한 윤곽 밖에는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손님들은 조용히, 규칙적으로 숨을 쉬고 있다. 까를로는 문을 살짝 열고 맨발로, 소리없이 방안에 들어섰다.
두 침대는 머리를 나란히 벽으로 향하고 발을 문 쪽으로 두고 있었다. 방의 한가운데데 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까를로는 살금살금 거기까지 걸어갔다. 손으로 탁자의 표면을 만져보자 열쇠 뭉치와 잉크를 지우는 칼, 조그만 책이 느껴진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 물론이지! 그들이 탁자에 돈을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아, 이제라도 곧 돌아가면 된다! 들키지 않고 돌아 나간다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괜찮다...
그는 문 옆 침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거기 안락의자 위에 뭔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더듬었다. 권총이었다... 까를로는 몸을 움츠렸다. 차라리 이걸 내가 집어넣는 게 좋지 않을까? 왜 이 사람은 권총을 여기 놓았을까? 이 사람이 눈을 뜨고 나를 알아본다면?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물론 이렇게 말해야지... 벌써 세 시입니다. 나리 일어나셔야죠!...
그는 권총을 놓았다. 그리고 살금살금 방안으로 더 들어갔다. 여기 다른 안락의자 위 속옷들 밑에... 이것 봐라! 고맙기도 하지! 여기 있구나... 이것이 지갑이다. 그는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 순간 그는 나지막하게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재빠르게 그는 침대 아래에 길게 몸을 뻗었다. 다시 한 번 쿵 하는 소리. 무거운, 편안한 한숨 소리. 기침 소리. 그리고 다시금 깊은 정적...
까를로는 지갑을 손에 쥐고 방바닥에 엎드린 채 기다렸다. 더 이상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벌써 새벽빛이 창백하게 방안에 스며든다. 그는 감히 일어서지 못하고 방바닥을 기어 문까지 갔다. 문은 그가 지나갈 만큼 열려 있었다. 복도까지 그는 계속 기었다. 그리고 거기서 깊은 숨을 내쉬며 비로소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갑을 열자 그것은 세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에는 단지 잔돈 은화가 있을 뿐이다.
까를로는 닫혀 있는 가운데 부분을 딸깍 열었다. 20프랑 금화가 세 개 있는 것을 감촉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가운데 두 개를 가질까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개만 꺼내고 지갑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무릎을 꿇고 아주 조용한 방안을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지갑이 두 번째 침대 밑까지 미끌어져 닿도록 한 번 쭉 밀었다.
손님이 잠에서 깨면 지갑이 안락의자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까를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 방바닥이 가볍게 삐걱거리고 동시에 방안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까를로는 숨을 죽이고 서둘러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조용히 미끌어져 들어갔다. 이제 안전하다. 그는 밖을 엿들었다. 다시 한 번 저쪽 방에서 침대가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손가락 사이에 금화를 끼고 있다. 성공했다. 성공한 것이다! 그는 이제 20프랑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동생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자, 봐라, 나는 도둑이 아니란 말이야!"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이 함께 오늘 안에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남쪽 보르미오를 향해서, 그리고 계속 벨트린을 지나고... 그리고 티라노로... 에돌레로... 브레노로... 작년처럼 이세오의 호수로... 그렇게 하면 전혀 의심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제 저녁에 주인에게 이미 말해두었기 때문이다. "2,3일 안으로 내려갈 겁니다"하고 말해두었던 것이다.
날은 계속 밝아졌다. 온 방이 잿빛 새벽빛 가운데서 어슴프레 밝아온다. 아, 제로니모가 깨어나면 좋을 텐데! 새벽에 길을 걷는 건 참 기분이 좋다! 우리들은 아직 해가 뜨기 전에 길을 떠나는 것이다. 주인과 하인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마리아에게도 인사를 해야지. 그리고 나서 떠나는 것이다. 두 시간 동안 걸은 다음에 계곡 가까이 가서야 제로니모에게 이야기를 해야지. 제로니모가 몸을 길게 뻗치며 기지개를 켰다. 까를로가 그를 불렀다.
"제로니모!"
"왜, 무슨 일이야?" 제로니모는 두 손을 짚고 일어났다.
"제로니모, 우리 이제 일어나자."
"왜?" 그는 멀어버린 눈을 형에게 돌렸다. 까를로는 제로니모가 어제 일을 아직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동생이 또다시 술에 취하기 전에는 그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날씨가 추워, 제로니모. 우리 떠나자. 올해 여기서는 이제 다한 거야. 이제 떠났으면 좋겠어. 점심 때에는 볼라도레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제로니모는 몸을 일으켰다. 집 여기저기서 잠을 깨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래 뜰에서 주인이 하인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까를로는 일어나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항상 일찍 일어나 새벽 어스름 속에서 길거리로 나가곤 했다. 그는 주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작별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아, 그래? 오늘 벌써 떠나나?" 주인이 물었다.
"네. 이제 뜰에 서 있으면 지독하게 추워요. 바람도 불구요."
"그래, 보르미오에 가거든 발데티한테 내 안부를 전해주게. 그리고 그 사람한테 잊지 말고 석유 보내달라고 그러게."
"네. 그 분께 안부 전해드릴께요. 그런데 참... 지난밤 숙박료가..." 그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냥 두게, 까를로." 주인이 말했다. "그 20쎈티시모는 자네 동생에게 그냥 줄게. 나도 그 친구 노래를 들은 거니까. 잘 가게."
"고맙습니다." 까를로가 말했다. "그런데, 저희들은 그렇게 서두를 건 없거든요. 주인 어르신이 오두막에 다녀 오시면 또 만나 뵐 거에요. 보르미오는 언제나 똑 같은 곳에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는 소리 내어 웃고 계단을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