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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항하기 하루 전날, 그들은 연안 부두까지 마차로 여섯 시간쯤 걸리는 어떤 작은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침식사 전에 외출했다. 돌아와서 엔신이 모자를 벗었을 때 목걸이의 끈이 그녀의 팔찌에 걸려 끊어지며 진주가 마룻바닥에 쫙 흩어졌다. 마치 그녀가 와락 울음을 터뜨린 것처럼 알렉산더는 네 발로 바닥을 기면서 한 알 한 알 주워 가지고 아내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그녀는 달콤한 공포 속에 앉아 있었다. 이 세상에서 깨뜨리기 두려웠던 한 가지를 깨뜨리고 만 것이다. 이것은 무슨 징조일까? "몇 알 있었는지, 당신 아세요?"하고 그녀는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남편은 마룻바닥 위에서 대답했다. "그래, 할아버지는 금혼식에서 이것을 할머니에게 주셨어. 50년, 한 해마다 한 알씩. 그러나 이후 할머니 생신 때마다 하나씩 보탰지. 그러니까 52개야. 트럼프 카드 장수와 같으니까 외우기 쉬워."
이윽고 그들은 전부 주워서 비단 손수건에 쌌다.
"이제 코펜하겐에 갈 때까지 걸지 못하겠군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때 여관 주인 아주머니가 커피를 갖고 왔다. 그녀는 이 재난을 보고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마을의 구둣방 주인이 목걸이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2년 전에도 영국의 귀족 부부가 수행원을 데리고 산에 왔을 때 젊은 부인이 진주 목걸이를 끊어뜨렸고, 그 구둣방 주인이 보기 좋게 수리해서 부인을 만족시켰다.
구둣방 주인은 매우 가난하고, 게다가 앉은뱅이였지만 성실한 노인이라고 한다. 젊을 때 눈보라로 길을 잃고 이틀 뒤에야 겨우 구조됐지만 양쪽 다리를 잘라야 했다. 엔신이 진주를 구둣방에 가지고 가겠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남편이 짐을 꾸리는 동안 혼자 길을 내려가 구둣방 주인을 작고 어두운 일자리에서 찾아냈다. 그는 오랜 고생으로 수척해진 얼굴에 수줍은 웃음을 띤,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키가 작은 노인이었다. 그녀는 진주를 한 알씩 세어 정중하게 그의 손에 맡겼다. 그는 그것을 내일 정오까지 고쳐놓겠다고 약속했다. 얘기가 끝난 뒤에도 그녀는 무릎에 손을 얹은 채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기 위해서. 그녀는 진주 목걸이를 끊어뜨린 영국 부인의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노인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방을 둘러보았다. 가난하고 초라한 방이어서 벽에는 한 두 장의 종교화를 압정으로 붙여놓았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여기 있으면서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았다. 운명에 의해서 무섭게 시련을 겪은 성실한 인간이 이 작은 방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하며, 매일의 빵을 위해 걱정하면서, 끈기 있게 고난을 견디어온 장소였다.
그녀는 아직 학교의 교과서를 손에서 놓은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심해어에 대해서 읽은 것을 생각해냈다 - 그들은 몇 천 미터 깊이 물의 무게를 견디어온 까닭에 만일 수면에 나오면 파열해 버리고 만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생활의 중압 밑에서 안정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심해어가 아닌가 의심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가족도 모두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만일 자기가 이 폭포에서 뛰고 있는 연어 혹은 날치와 같은 사내와 결혼했다고 한다면 이 심해어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녀는 나이 먹은 구둣방 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자기 앞으로 검은 모자에 검은색 웃옷을 입은, 키가 작고 건장한 사내가 바쁜 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 사내를 전에도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집에 묵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길가에는 벤치가 하나 있어서 거기서 멋진 전망을 볼 수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거기 앉고, 산에서 마지막 날을 보낼 엔신도 다른 한쪽에 앉았다. 사내는 그녀를 향해 잠깐 모자를 들었다. 그녀는 사내가 중년 정도 나이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30을 많이 넘긴 것 같지는 않았다. 정력적인 얼굴과 맑고 투명한, 쏘는듯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잠깐 있다가, 그는 미소를 띄면서 그녀에게 얘기를 걸었다.
"당신은 구둣방에서 나오셨지요. 산에서 구두를 잃으셨나요?"
"아뇨, 진주를 좀 가지고 갔어요"라고 엔신은 말했다.
"진주를 가지고 가셨다구요?"
낯선 사내는 유머러스하게 말했다. "저는 또, 그것을 바로 그 사람 집에 모으러 가는 길입니다."
그녀는 상대방이 머리가 좀 돌지 않았나 생각했다.
"저 노인은 저 집에 우리 민족의 보배를 많이 모아두고 있지요. 말하자면 진주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것을 저는 모으고 있지요. 옛날 얘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노르웨이에서 저 구둣방 주인만큼 많이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옛날 저 사내는 공부를 하고, 시인이 될 꿈을 꾸고 있었지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운명에 짓밟혀서 구두 직공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지요."
잠깐 침묵을 지킨 뒤에 그는 또다시 말을 이어갔다.
"당신 부부는 덴마크에서 신혼 여행을 오셨다구요. 희귀한 일이군요. 이곳 산들은 높고 위험하거든요. 여기로 오시려고 생각한 분은 두 분 가운데 어느편입니까? 당신입니까?"
"그래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가 높이 날아오르는 작은 새인 것같이, 그리고 나는 그를 싣고 가는 미풍인 것 같이' 이런 시 구절을 아세요? 무엇인가를 당신에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글쎄요." 그녀는 약간 당황해서 대답했다.
"저 푸른 산!" 이렇게 말하고 산책 지팡이에 손을 얹고 그는 말없이 고쳐 앉았다.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그는 계속했다.
"산꼭대기라! 뭘, 우리 두 사람은 구둣방 주인이 유명한 시인이 되는 꿈을 버려야 했던 불운에 동정하지만, 실제론 그 사람이 운수대통한 건지도 모르지요. 위대한 시인, 대중의 박수갈채! 정말이에요. 젊은 부인, 자식들을 가만 두는 게 좋아요. 구둣방 간판이나 구두창을 붙이는 귀한 지식이라 해도 적당한 값으로 팔기는 어렵죠. 원가로 흥정이 되면 그건 성공한 셈이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인?"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상대는 얼음같이 푸른 두 눈으로 그녀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정말, 이 아름다운 여름날에, 그게 당신의 충고인가요. 행상인이여, 너의 짐 곁에 머물러 있으라, 이건가요. 이 세상의 병든 인간이나 가축을 위해서, 환약이나 물약을 만들어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킥킥 웃었다.
"이건 제법 괜찮은 재담인데. 백년 내에 책으로 될 거예요. 덴마크에서 온 조그마한 부인이, 그에게 짐 곁에 서 있으라고 충고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그 말에 복종하지 않았다, 이렇게요. 저는 갑니다. 부인, 안녕!" 이렇게 말하고 그는 일어서서 가 버렸다. 그 검은 모습이 산 사이로 점점 작아지는 것을 그녀는 지켜봤다.
여관 아주머니가 나타나서, 구둣방 주인을 찾았느냐고 물었다. 엔신은 낯선 사람의 뒷모습을 눈으로 전송하면서 물어보았다. "저 분은 누구예요?"
아주머니는 눈 위에 손을 갖다대고 말했다. "어머, 정말 저 분은 학자이고 훌륭한 분이예요. 이곳에 옛날 얘기와 민요를 수집하러 오신 거예요. 옛날엔 약제사였대요. 그러나 베르겐에서는 극장을 갖고 있고, 연극 각본도 썼대요. 이름은 입센이라고 해요."
아침이 되자, 선창에서 전갈이 왔다. 배가 예정보다도 빨리 올 테니까, 빨리 떠나야 한다고. 아주머니는 작은 아들을 구둣방에 보내서 엔신의 진주를 찾아오게 했다. 나그네들이 마차에 올라탈 무렵 아들이 그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책에서 찢어낸 한 장의 종이에다 싸고, 초를 칠한 실로 동여맨 그것을 풀어 진주의 수를 세어보려다 엔신은 갑자기 중지하고 그대로 목에 걸었다.
"세어보지 않아도 돼?" 알렉산더가 물었다. 그녀는 힐끔 남편을 보고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도중에서는 쭉 말이 없었다. 남편의 말이 귓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세어보지 않아도 돼?"
그녀는 남편 곁에 승리자로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제 승리자가 어떤 기분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