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 / 전체 7
80년 쯤 전에 유별나게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결혼식이 있었다. 어떤 집안 좋은 근위사관이 부유한 모직물 상인의 딸과 결혼한 것이다. 그 상인의 아버지는 유틀란드에서 온 행상이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이런 결혼은 예외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화제가 되었고, 그 결혼을 꼬집는 유행가까지 생겨서 퍼지기도 했다.신부는 스무 살이었다. 검은 머리에 하얀 살결, 키가 늘씬한 처녀로 온 몸이 조각과 같은 기품을 풍기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행상인 조부의 친척인 나이 많은 숙모 두 사람이 있었다. 그 할머니들은 둘 다 미혼이었다. 이 노처녀들은 집안이 부자가 되어 바쁘게 일하는 처지를 벗어나 한가하게 손님 접대나 하는 팔자였다. 두 숙모 가운데 언니가 조카딸의 약혼 소식을 듣고 곧장 찾아와 이런 옛 얘기를 들려줬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에 젊은 로센크란츠 남작이 돈 많은 금은 세공인의 딸과 약혼했지. 혹시 그런 얘기 듣지 못했니? 너희 증조모님은 이 처녀를 알고 있었지. 신랑한데는 쌍둥이 누이가 있어서 대궐의 시녀로 있었어. 그 사람이 마차를 타고 금은 세공인의 가게로 이 처녀를 보러 왔지. 신랑의 누이가 돌아가고 난 후 처녀는 애인에게 이렇게 말했대. '당신의 누이는 제가 평소에 입는 옷을 보고 흉봤어요. 그 분이 프랑스어로 말을 건네자 대답할 수도 없었구요. 아마 심술궂은 분인가 봐요.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당신은 두 번 다시 그 분과 만나서는 안돼요. 저는 참을 수 없어요'라구 말이야."
"젊은 남작은 약혼녀를 달래기 위해 두 번 다시 그 누이를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지. 그 후 얼마 지나 주일날 그는 처녀를 어머니에게 보이려고 데려갔어.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처녀는 또 이렇게 말했어. '당신 어머니는 저를 보시더니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그 분은 더 좋은 며느리감을 원하셨던 거예요. 만일 당신이 저를 사랑하시면 당신은 어머니와 헤어져야 해요.' 이렇게 처녀는 요구했단다."
"처녀에게 정신없이 반한 남작은 또 한번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약속했어. 어머니가 과부인데다 남작이 독자여서 몹시 가슴 아픈 일이긴 했지만 말이야."
"그리고 나서 남작은 심부름꾼을 시켜 처녀한테 꽃다발을 보냈어. 그러자 다음날 처녀는 애인한테 '당신 하인이 저를 보는 눈초리를 참을 수 없어요. 다음달 곧 그를 쫓아버리세요'라고 했지."
"그래서 로센크란츠 남작이 말했지.
'아가씨 저는 하인의 눈초리에 마음을 쓰는 정도의 아내는 필요 없습니다. 자, 이게 당신의 반지입니다. 그럼 영원히 안녕.'이라고 말이야."
얘기 도중에 숙모는 작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조카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숙모는 성격이 강한 여자로 일찍부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작정한, 독립적이고 양심적인 여성으로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아무 희망도 공포도 주지 못하는 그녀는 다른 가족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활발하지만 낡아빠진 도덕적 기생충에 불과했다. 정열적인 젊은 신부 엔신은 이러한 기생충의 좋은 먹이였다. 게다가 늙고 젊다는 차이는 있지만 두 여자는 기질적으로 공통점이 많았다.
처녀는 조용히 커피를 따르면서도 마음속으론 분개해서 이렇게 다짐했다.
"마아렌 숙모님에게 이 복수를 하고 말테다."
그러나, 흔히 있는 일이지만 숙모의 충고는 그녀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몇 번씩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