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간 건지 모르십니까? 말씀해주세요." 라이젠보그는 절박하게 다시 물었다.
"그건 저도 말씀드릴 수 없어요. 패니는 헬 양이 어디 머물 것인지 결정하게 되면 곧 전보로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만... 아마 내일 아니면 모레쯤 뭔가 연락이 오겠지요."
"그렇군요..." 라이젠보그는 이렇게 말하고 피아노 앞에 놓인 조그만 등나무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그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서서 링아이저 부인에게 손을 내밀고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낡은 집의 어두운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매우 조심스러웠어. 정말 그렇지! 사실 그렇게까지 조심스러워 할 필요는 없는데... 내가 추근거리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을 텐데...
"어디로 모실까요, 남작 님?" 마부가 물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지붕 없는 마차에 올라앉아 한동안 멍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을 좇아 그는 "브리스톨 호텔(켈트너링 구역의 고급 호텔)로 가 주게"라고 대답했다.
지그루트 외르제는 아직 출발하기 전이었다. 그는 남작을 방으로 올라오도록 청했다. 그는 남작을 기쁘게 맞아 비엔나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자기와 함께 보내달라고 청했다. 라이젠보그는 지그루트가 여지껏 비엔나에 머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웠지만 아무튼 그의 반가워하는 태도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마웠다.
지그루트는 곧 클래레 얘기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는 라이젠보그에게 클래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몽땅 다 얘기해달라고 사정했다. 남작이 클래레의 가장 오래되고 좋은 친구라는 사실을 자기는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라이젠보그는 여행용 트렁크 위에 걸터앉아 클래레의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자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기사로서의 품위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얘기만 빼놓고, 이 가수에게 거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지그루트는 그 얘기를 들으며 황홀해하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지그루트는 오늘 저녁에 당장 함께 비엔나를 떠나 몰데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가자고 권유했다. 남작은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형편상 오늘 당장 떠날 수는 없다고 거절하고, 이번 여름 안으로 한 번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역까지 함께 마차를 타고 갔다.
"나를 미치광이라고 여기실지 모르지만... 한 번만 더 그녀 창문 곁을 지나가고 싶군요." 지그루트는 말했다. 라이젠보그는 곁눈질로 그를 훔쳐보았다. 이게 혹시 나를 속이려는 수작 아닐까? 아니면 정말 이 가수 녀석이 이 일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일까? 클래레의 집에 도착하자 지그루트는 닫혀 있는 창문을 향해 키스를 보냈다. 이어 그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제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라이젠보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돌아오면, 그렇게 전하리다."
지그루트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미 여기를 떠나 어디론가 갔습니다." 라이젠보그는 덧붙였다.
"오늘 아침에 여행을 떠났어요. 인사도 없이... 그녀는 늘 그런 식이랍니다." 하지만 이것은 남작의 거짓말이었다.
"여행을 떠났군요..." 지그루트는 이렇게 되풀이하더니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기차가 출발하려고 하자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게 포옹했다.
남작은 그날 밤 침대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어릴 때 이후 아직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클래레와 함께 했던 그 쾌락의 한 시간이 어두운 전율처럼 그를 감쌌다. 어젯밤 클래레의 눈이 마치 미친 것처럼 반짝이던 것이 떠올랐다.
이제야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너무 서둘렀던 것이다. 그녀의 부름에 너무 섣불리, 일찍 응한 것이다... 베덴브루크 대공의 망령이 아직 그녀를 지배하고 있다. 클래레를 소유하는 바람에 이제 영원히 그녀를 잃게 되었다고 라이젠보그는 생각했다.
그 후 며칠 동안 남작은 낮과 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엔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지금까지 그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 모든 일 - 신문 읽기, 카드 놀이, 승마... 이 모든 것에 그는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그는 자신의 생활 전체가 오직 클래레에 위해 존재한다는 것, 심지어 다른 여인들과의 정사조차도 실은 그녀에 대한 열정의 광채 안에서 명맥을 유지해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잿빛 먼지가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그와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뭔가 감추려는 듯 목소리를 더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를 이상한 눈초리로, 살피는 것처럼 쳐다보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는 느닷없이 역으로 나가 아무 생각 없이 이슈르(오스트리아의 온천 휴양지로 프란쯔 요셉 황제의 여름 궁정이 있다)로 가는 차표를 샀다.
거기서 그는 아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별 뜻 없이 그에게 클래레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나 그는 그 질문에 대해 신경질적이고 무례하게 응수하는 바람에, 별 상관도 어떤 신사와 결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전혀 흥분도 하지 않은 상태로 결투 장소에 나갔고, 총알이 귓전을 휭 하고 스쳐 지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허공에다 총을 쏘았다. 결투 후 30분만에 그는 이슈르를 떠났다.
그는 티롤, 엥가딘, 베르너 고원 그리고 제네바 호반 등을 여행했다. 보트를 젓기도 하고, 산길을 걷고, 가파른 산봉우리를 기어올랐다. 한 번은 알프스 산중의 오두막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제는 뭘 했고, 또 내일은 뭘 할지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그는 비엔나를 거쳐온 전보를 한 통 받았다. 그는 열에 들뜬 것 같은 손길로 그 전보를 펼쳤다. 전보에는 '만일 당신이 내 친구라면, 이 연락을 받은 즉시 저에게 와 주십시오. 저는 지금 단 한 사람이라도 친구가 필요합니다. 지그루트 외르제'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이 전보 내용이 틀림없이 클래레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허둥지둥 짐을 꾸려, 가장 빠른 교통편으로 머무르고 있던 아익스를 떠났다. 그는 중간에 아무 데도 들르지 않고 뮌헨을 거쳐 함부르크로 갔고 거기서 슈타방거로 가는 배를 탔다. 그리고 어느 활짝 갠 여름날 저녁에 그는 몰데에 도착했다. 그 여행은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처럼 느껴졌다.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경치 따위도 그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는 요즘 들어서 클래레의 노래나 얼굴조차도 더 이상 떠올릴 수 없었다. 비엔나를 떠난 것이 몇 년 전, 아니 몇십 년 전인 것 같았다. 그러나 하얀 플란넬 양복을 입고 하얀 사냥 모자를 쓴 지그루트가 바닷가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마치 어제 저녁에 그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곤했지만 그는 갑판에 서서 지그루트의 영접을 미소로 응답하고 여유 있는 태도로 배의 트랩을 걸어 내려갔다.
"제 요청에 응해주셔서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지그루트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간단히 덧붙였다. "전 이제 완전히 끝장났습니다..."
남작은 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그루트는 무척 창백해 보이고, 관자놀이 근처의 머리카락 색이 유난히 옅어졌다. 팔에는 흐릿한 녹색 숄을 걸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라이젠보그는 굳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물었다.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 - 5.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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