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 당시 아내를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에크벨트가 얼른 아내의 말을 받았다.

"아내는 그때 고독하게 자란 사람만이 갖는 아름다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지요. 나는 정말 감탄했지요. 그리고 나는 아내를 더없이 사랑했어요. 내게 재산은 없었지만 아내의 사랑으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로도 우리는 우리들의 결혼을 후회해본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밤이 무척 깊었군요. 이제 주무셔야지요." 베르타가 말했다. 그리고 베르타는 일어나서 자기 방으로 갔다. 발터는 일어서는 베르타의 손에 입을 맞추면서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부인 감사합니다. 그 이상한 새와 함께 있는 당신의 모습, 그리고 당신이 그 조그마한 슈트로미안에게 먹을 것을 주는 모습이 머리 속에 뚜렷이 떠오르는군요."

발터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에크벨트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방안을 왔다갔다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말았다." 그는 중얼거렸다.

"내가 괜한 얘기를 꺼내서 아내가 자기 과거를 털어놓고 말았어... 이제 와서는 후회가 되는군... 발터가 이 이야기를 악용하지 않을까?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인간의 본성이란 다 그런 것 아닌가? 우리가 갖고 있는 보석에 욕심을 내서, 그 때문에 흉계를 꾸미고 시치미를 뚝 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발터가 잘 자라는 다정한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자러 가버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물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일단 의심을 품게 되면 어떠한 사소한 일도 다 의심거리로 삼게 마련이다. 에크벨트는 마음을 고쳐먹고, 이 훌륭한 친구에게 점잖지 못한 의심을 품는 자기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나 원래 품었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밤새껏 그 생각과 싸우느라고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날 베르타는 몸이 아파서 아침식사 때 나오지 못했다. 발터는 거기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고, 그 집을 떠날 때도 어쩐지 냉담한 태도처럼 보였다. 에크베르트는 발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아내를 찾아갔다. 아내는 열이 대단해서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지난밤의 이야기가 이렇게 자기를 흥분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밤 이후 발터는 에크벨트의 집을 찾는 일이 아주 드물어졌다. 혹시 찾아오는 일이 있어도, 몇 마디 별 뜻도 없는 말을 하고 나서는 다시 가버리곤 했다. 이러한 행동은 에크벨트의 마음을 몹시 괴롭게 만들었다. 그는 물론 그의 고통을 베르타와 발터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했지만, 그들은 그의 행동을 통해 틀림없이 그의 마음 속 불안을 눈치챘을 것이다.

베르타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마침내 의사도 심각하게 걱정하게 되었다. 두 뺨에는 붉은 색이 사라지고, 반면 두 눈은 점점 더 불타 오르는 것 같았다... 어느날 아침 그녀는 남편을 침대 곁으로 불렀다. 그리고 하녀들을 모두 내보내고 입을 열었다.

"여보, 당신에게 털어놓을 게 있어요. 그 자체는 별것 아닌 하찮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에요. 건강이 이렇게 망쳐진 것도 사실은 그것 때문이에요. 내가 어린 시절 그렇게 오랫동안 사이 좋게 지내던 그 조그마한 개의 이름을 아무리 애를 써서 끝내 기억해내지 못한 것은 당신도 잘 알 거에요. 그날 밤 발터에게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그날 발터는 자러 가면서 갑자기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당신이 조그마한 슈트로미안에게 먹을 것을 주는 모습을 머리 속에 뚜렷이 그릴 수 있군요' 라구요.

이것은 우연일까요? 그는 개 이름을 어림짐작으로 맞혔을까요? 아니면 이미 알고서 슬쩍 불러본 걸까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나의 운명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나는 이 이상한 일이 단지 나의 공상에 불과한 것 아닌가 갈피를 못잡겠어요.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어요. 너무나 확실해요... 다른 사람이 내 기억을 그렇게 되살려주었을 때, 나는 무서운 공포감에 사로잡혔던 거에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에크벨트?"

에크벨트는 괴로워하는 아내가 가엾어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말없이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아내를 몇 마디 위로하고는 그 곁을 떠났다. 구석 방에 들어가서 그는 말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안절부절못하고 이러 저리 거닐었다. 발터는 여러 해 전부터 사귀어온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기를 괴롭히고 압박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만일 이 유일한 존재만 없애버릴 수 있다면 마음이 기쁘고 가벼워질 것만 같다. 그는 활을 꺼내 들고 기분전환을 할 겸 사냥을 나갔다.

눈보라가 사납게 몰아치는 겨울날이었다. 산에는 눈이 깊이 쌓여 있었고 나뭇가지들도 눈이 내려앉아 무겁게 아래로 휘어져 있었다. 그는 여기저기 뛰어다녀 이마에 땀이 서렸다. 그러나 짐승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불쾌한 기분이 점점 더해갔다. 별안간 그는 먼데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나무 아래에서 이끼를 채집하고 있는 발터였다. 에크벨트는 자기도 모르게 활을 겨누어 발터를 쏘려고 했다.

발터는 문득 그를 돌아보고서 몸짓으로 위협하는 듯한 몸짓을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화살이 시위를 떠나 발터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에크벨트는 마음이 가벼워지고 진정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다음 순간 공포감에 쫓겨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숲속 깊은 곳에서 길을 잃고 먼 길을 헤매야만 했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베르타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녀는 죽기 조금 전까지도 여전히 발터와 할머니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