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츠 산골의 어느 지방에 '금발의 에크벨트'라고 불리던 기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마흔 살쯤 된, 중키 정도의 사나이였다. 얼굴이 창백하고 훌쭉했으며 짤고 연한 색을 띤 금발이 머리에 부드럽게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아주 조용히 살고 있어서 이웃 사람들과의 다툼에 휩쓸려드는 일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작은 저택의 담 밖으로 나오는 일조차도 아주 드물었다.
그의 아내도 그와 마찬가지로 고독을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취향이 비슷한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하나님은 그들 부부 사이에 어린애가 생기는 축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만이 그들 부부의 한탄스러운 점이었다.
에크벨트에게는 찾아오는 손님도 거의 없었다. 혹시 손님이 찾아오는 일이 생겨도 그 때문에 그들의 일상이 달라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생활에 절제가 있었고, 검소 그 자체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원칙처럼 보였다. 에크벨트는 명랑하고 쾌활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무언가 숨기는 듯한 태도였다.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우울한 데가 있었다.
필립 발터는 조용한 이 집을 가장 자주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에크벨트는 이 사람의 사고방식이 자기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크벨트가 필립 발터와 가까이 지내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빌립 발터는 원래 프랑켄 사람이었지만, 가끔 반년 이상씩 에크벭트의 집 부근에 머물면서 약초와 광석을 채집하고 그것을 정리하는 일에 몰두하곤 했다. 그 역시 얼마 되지 않는 재산으로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살았다. 에크벨트는 종종 산보길에 그와 동행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 사이에는 진정한 우정이 은연중 싹트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비밀을 주의깊게 숨겨왔다 해도 가까운 친구 앞에서는 그 비밀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그럴 경우 인간은 그 친구와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속마음을 활짝 열어 보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이럴 때 다정다감한 사람들은 대개 서로 본심을 털어놓지만 때로는 상대방이 자기의 정체를 알아챌까 두려워 꽁무니를 빼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안개 낀 어느 늦가을 밤에 에크벨트는 친구 그리고 아내 베르타와 함께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 있었다. 불꽃은 방안을 환하게 비치면서, 천장 위에 너울거리는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창 밖은 캄캄했고, 나무들은 습기와 추위로 몸을 떨고 있었다. 발터가 돌아갈 길이 멀다고 투덜거리자, 에크벨트는 그에게 그대로 눌러앉아 밤이 깊도록 다정한 이야기나 나누다가 자기 집 아무 방에서나 자고 다음날 아침에 돌아가라고 제의했다. 발터는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포도주와 저녁 식사가 들어오고 나무를 더 집어넣어 불을 크게 지폈다. 친구 사이의 대화는 더욱 명랑하고 친밀해졌다.
저녁상을 치우고 하인들이 물러가자 에크벨트는 발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봐, 내 아내의 소녀 시절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게나. 아주 재미있고 기묘한 이야기라네."
"그러지." 발터가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다시 벽난로 가에 둘러앉았다.
때는 바로 한밤중이었다. 달은 매끄럽게 흘러가는 구름 사이에서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금발의 에크벨트 - 1. 에크벨트의 고독한 생활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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