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나를 옆에 앉히고 빵과 포도주를 조금 주었습니다. 내가 그걸 먹는 동안 할머니는 조용한 소리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할머니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의 목소리와 태도가 매우 이상해 보이기는 했지만, 나는 할머니가 이렇게 말해 준 것이 무척 기뻤습니다. 목발을 짚었지만 할머니는 산길을 꽤 빨리 걸었습니다. 그러나 한발한발 내디딜 때마다 얼굴을 온통 찌푸렸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것이 우스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험한 바윗돌들을 점점 뒤로 멀리하고 우리들은 아늑한 초원을 넘어서 꽤 긴 숲을 지나갔습니다. 우리들이 숲에서 빠져 나왔을 때는 해가 막 지평선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저녁의 풍경과 그 때 느꼈던 기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한없이 부드러운 붉은 색과 황금 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나무들의 우듬지는 저녁놀을 받아 붉게 물들어 있었고, 들판 위 하늘에는 황홀한 황금 빛이 깔려 있었습니다. 숲과 나뭇잎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잠잠했고, 맑은 하늘은 마치 활짝 열어 젖힌 낙원처럼 보였습니다. 졸졸 흐르는 샘물 소리와 나무들이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가끔 들려왔습니다. 주위의 쾌적한 적막 속에 뭔가 슬프면서도 기쁜 느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는 어렸지만 이때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일들에 대해서 어떤 예감 같은 것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나는 내 자신과 나를 안내하는 할머니의 존재를 잊어 버리고, 마음과 눈이 금빛 찬란한 구름 사이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는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언덕 위에서는 자작나무가 우거진 푸른 계곡이 아래로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 아래 나무들 한가운데에 조그마한 오두막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경쾌하게 개 짖는 소리가 우리를 맞이했고 곧 조그마하고 날렵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할머니에게 뛰어오르면서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나한테도 다가와서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다정한 몸짓으로 할머니에게 되돌아 갔습니다.
우리들이 언덕에서 내려오자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치 새소리처럼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오두막집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숲의 적막이
나를 기쁘게 한다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오, 나를 기쁘게 하는
숲의 적막이여
이 몇 마디 가사가 쉴새 없이 되풀이되었습니다. 그 소리를 굳이 표현한다면 마치 사냥꾼의 피리소리와 목동의 피리소리가 아주 먼 데서 한 데 뒤섞여서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서, 할머니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오두막집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주위에는 벌써 황혼이 깃들이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는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컵이 몇 개 벽장에 있었고 이국풍의 그릇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창가에 걸려 있는 번쩍이는 새장 속에 새가 한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이상한 가사는 바로 이 새가 노래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헐떡거리며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기에는 도저히 나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새와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 새는 늘 부르는 똑 같은 노래로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그 자리에 같이 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듯 행동했습니다.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나는 몇 번이나 무서워서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할머니는 얼굴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데다 나이를 먹은 탓인지, 줄곧 머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녀의 진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기침이 좀 가라앉자, 불을 켜고 아주 조그마한 식탁에 식탁보를 깔고, 거기에 저녁식사를 차려 놓았습니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나를 돌아보고, 등나무 의자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나는 할머니의 바로 앞에 마주앉았습니다. 등불은 우리 사이에 놓여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뼈만 앙상한 두 손을 모으고 얼굴을 찡그리며 큰 소리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화를 내지 않도록 무척 주의를 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 할머니는 다시 기도를 드리고 나서 천장이 낮고 좁은 방에 내 잠자리를 정해주고, 자기는 다시 그 방에 돌아가 잤습니다. 나는 내 방에 누워 얼마 동안 눈을 뜨고 있다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몇 번 잠을 깰 때마다 할머니의 기침소리와 개와 이야기하는 소리, 노랫소리 따위가 간간히 들려왔습니다.
새는 꿈을 꾸고 있는지 줄곧 그 노래의 한두 구절만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창문 앞에서 살랑거리는 자작나무 소리, 먼데서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 등이 아주 묘하게 한 데 어우러져, 나는 마치 깨어있는 것 같지 않고 또 다른 더욱 기이한 꿈속에 빠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