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숲속을 빠져 나왔을 때는 해가 이미 꽤 높이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숲속은 짙은 안개에 덮여 눈앞이 어두컴컴했습니다. 나는 언덕을 기어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바위 사이로 꼬부라져 지나가는 꼬부랑길을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나는 집 근방에 있는 산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라고 추측했고 그 때문에 외딴 곳에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평지에서만 살아와서 산을 본 일이 없었습니다. 남들이 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어린 나에게는 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뭔가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만 들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되돌아갈 용기가 없었고 오직 불안에 가득 차 앞으로만 달렸습니다. 내 머리 위 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나 멀리서 도끼로 나무를 자르는 소리가 고요한 아침 공기를 타고 울려 퍼질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서 돌아보곤 했습니다.
숯을 굽는 사람들 또는 산 속 광부들의 낯선 말소리를 들었을 때에 놀라서 거의 기절할 뻔했습니다. 나는 가끔 마을을 지나칠 때는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구걸을 했습니다. 누가 물으면 적당히 둘러대서 그 자리를 그럭저럭 넘겼습니다. 이렇게 거의 나흘 동안을 계속 헤매다가 작은 산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길은 더 산 속으로 들어가 나는 점점 큰 길에서 멀어지게 됐습니다.
주위에 보이는 바위들은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것과 다른, 훨씬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위들이 서로 겹쳐 쌓여서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 금방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계속 앞으로 걸어가야 할지, 어떨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일 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어서 밤에는 외떨어진 양치기 오두막에서 잠을 자거나 아니면 그냥 숲 속에서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동안 전혀 인가를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곳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길은 갈수록 험악해졌고, 때로는 현기증이 날 만큼 가파른 낭떠러지에 바짝 붙어서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길조차도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져서 소리쳐 울었습니다. 그러자 무섭게 생긴 바위 골짜기로 내 목소리가 무시무시하게 메아리치더군요. 날이 저물자 나는 이끼가 깔린 땅을 찾아 거기에 누워 쉬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밤중에 나는 아주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나운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바위 틈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이상한 새가 우짖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기도를 하고 멀리서 동이 터올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햇빛이 얼굴을 비치자 나는 눈을 떴습니다. 나는 바위 위에 올라가 멀리 살펴보면 이 외진 곳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어쩌면 사람들이나 인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겨우겨우 바위 절벽 위를 기어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높은 곳에 올라서서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내가 보아왔던 풍경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뿌연 안개로 덮여 있었고 날은 침침하게 흐렸습니다. 좁은 바위 틈으로 외롭게 솟아오른 두서너 그루의 나무를 제외하고는 초원도, 수풀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령 그 때 누구를 만났다면 또 나는 무척 두려워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때 심정으로는 누구라도 좋으니 단 한 사람이라도 만났으면 하고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너무 배가 고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엔 또 살고 싶은 생각이 솟아오르더군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쉬면서 다시 온종일 걸었습니다. 나중에는 나 자신을 거의 의식할 수도 없었고, 그저 피곤해서 기진맥진했습니다. 더 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지만, 그러나 죽는 것만은 두려웠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주위 일대가 약간 아늑해진 기분이었습니다. 나의 생각이 생기를 얻고, 나의 소망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살고 싶은 생각이 혈관 구석구석까지 퍼져갔습니다. 마침 어디선가 물레방아의 쏴 하는 물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황량한 바윗길의 끝에 이르렀을 때, 나는 얼마나 기쁘고, 마음이 홀가분하던지요.
멀리 보이는 산의 모습들이 무척 정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숲과 초원이 다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어서, 외로움도, 의지가지없는 신세도 이젠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물방아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들었던 것은 폭포 소리였던 것입니다.나는 말할 것도 없이 무척 실망했습니다. 폭포 아래로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서 한 모금 마셨을 때, 약간 떨어진 곳에서 가벼운 기침 소리가 난 것 같았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으나 그만큼 또 반가웠습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숲의 가장자리에 어떤 할머니가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온 몸에 검은 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검은 두건으로 머리와 얼굴을 거의 다 덮고 있었고, 손에는 목발을 들고 있었습니다.
금발의 에크벨트 - 3. 집을 나와 숲속으로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페이지 4 / 전체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