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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도 마지막이 가까워졌다. 이 불행한 하일랜드 사나이는 칼라일에서 재판을 받았다. 내 자신도 젊은 스코틀랜드 법률가이자, 변호사의 한 사람으로서 다소 이름이 있었기에 캠버랜드 주 장관의 호의를 얻어 판사단의 한 사람에 끼어있었다. 사실 심리는 이미 이야기한 내용을 그대로 되짚는 정도였다. 복수라고는 하지만 암살이라는 너무나 非잉글랜드적인 이 범행에 대해 처음에 법정의 반감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피고의 뿌리깊은 민족 정서, 육체적 폭력을 당했을 때 그로서는 지울 수 없는 치욕, 불명예로 여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 재판에서 잘 설명됐다. 또 그가 처음에는 무척 인내심을 발휘하며 화해하려 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잉글랜드 법정의 관용이라고 할까, 그의 범행이 결코 잔인한 심정이나 상습적인 범죄 성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됐다. 잘못된 명예심으로 인해 돌발적인 일탈 행위가 나온 것이라는 점을 재판 관계자들이 이해하게 된 것이다. 특히 노(老) 재판장이 배심원에게 한 발언은 대단한 웅변이나 비장한 감정을 담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법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무척 불쾌하고 꺼림칙한 그런 사건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특이한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적용해야 할 이 법률은 분명히 정당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금 적용하는 것은 슬픈 의무입니다. 이 사건은 아주 중죄이지만 악랄한 마음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정의에 대한 불행한 편견, 그것에서 생긴 것입니다."
"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둘 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상당히 존경을 받았으며, 또 서로 무척 친한 벗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이 살해당했고, 또 한 사람 즉 친구를 죽인 당사자는 지금 직접 법률의 복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 민족의 감정, 민족적 정서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행동한 것입니다. 이들은 고의로 잘못된 길에 접어들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충분히 동정의 여지가 있습니다."
"출발점에서는 피고에게 잘못이 없습니다. 피고는 울타리 내 풀밭에 대한 점유권을 정당한 시장 법칙에 따라 합법적인 계약을 거쳐 소유주인 애어비씨로부터 얻었습니다. 그렇게 정당한 권리에 대해 잘못된 비난, 특히 성격이 급한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그런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평화와 우정을 위해 자신의 권리 절반을 양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호의는 모욕적으로 거절 당했습니다."
"이미 잘 아시겠지만 그 뒤 헤스켓씨의 주막에서 벌어진 일 역시 피고인은 피해자를 포함해 여러 구경꾼들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오히려 이들 당사자들을 부추겨 일을 크게 벌어지게 만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고는 화해를 원했고, 대화로써 문제를 풀고자 했으며 치안관계자나 중재인의 중재를 기꺼이 따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그런 호의마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모욕을 받고 거절 당했습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구경꾼들은 페어플레이라는 국민정신을 망각한 자들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피고가 끝까지 평화적으로 현장을 피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피해자에게 붙잡혀 구타 당하고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앞서 진술한 박학다식하신 검사의 논고를 본관은 매우 괴로운 심정으로 들었습니다. 검사께서는 피고의 행위를 매우 악랄한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즉 피고가 피해자에게 당당히 도전하지 않고, 또 권투의 규칙에 따라 싸우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비열한 이탈리아 사람처럼 단검을 흉기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서는 결코 이기지 못할 상대를 흉기로 쓰러뜨렸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논고의 이 부분에서 피고는 특히 용기 있는 자 특유의 혐오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로서는 살이 떨리는 일일 것입니다. 본관이 이 고발의 부당함을 하나하나 논박해야 아마 피고도 본관의 공평무사함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피고가 꺾이지 않는 인간, 다소 과도하리만큼 불굴의 인간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본관으로서는 피고의 그런 본성이 다소 부드러운,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는 충분한 교육을 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심정을 갖게 됩니다."
"배심원 여러분, 검사께서 지적한 격투의 규칙 문제는 사실 투우장이나 투계장, 또 곰 따위 동물들이 싸우는 장소에서는 분명 공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자칫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이런 싸움에서 그런 격투 규칙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의 쌍방 당사자가 동등한 입장에 있고, 또 관련 법률을 양 당사자가 모두 알고 있으며 그 법률을 받아들이는 것도 양측이 모두 양해한 경우에 있어서만 그런 규칙은 의미가 있습니다."
"가령 높은 지위에다 교양까지 갖춘 신사에게, 젊고 기운이 세고 권투 기술이 뛰어난 사람과 대결하면서 똑 같은 격투 규칙을 따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권투의 규칙 역시 검사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유쾌한 옛 잉글랜드의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면 설마 이런 경우에까지 적용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만일 이 피고가 받은 것과 같은 직접적인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잉글랜드 신사가 받았을 경우 그 신사에게 자신을 지키기 위한 단검의 사용을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불쾌한 상황에 쫓긴 이 외국인, 이방인도 법에 의해 보호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 피고인이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의 조소를 받고,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 의한 직접 폭력 같은 불가피한 강박을 받아 마침내 흉기를 사용했다면(게다가 이 단검은 피고의 지방에서는 으레 몸에 지니는 것이라고 합니다) 본관은 양심적으로 도저히 이 사건을 모의살인죄로 판결해 달라고 배심원 여러분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번 피고의 자위 행위는 우리들 법률에서 말하는 정당방위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적용할 죄명은 모의살인이 아닌, 고의살인 정도여야 할 것입니다. 덧붙여 제임스1세가 공포한 법 제3장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작은 흉기에 의한 살해의 경우 비록 사전 음모나 살해 의사는 없었다 해도, 소위 교회 재판에 있어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이것 역시 관대한 소송 제기가 옳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법률 역시 일시적인 배경에 의해 제정된 것이며 범죄의 실체에 변함이 없는 한 그것이 단검에 의한 것이든 장검이나 권총에 의한 것이든 모두 똑 같은 사건으로 취급하는 것이 근대법 정신에 일치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배심원 여러분, 사실 이 재판의 핵심은 최초의 폭행이 일어난 후 복수극으로 살인을 벌이기까지 두 시간이 경과했다는 그 점에 있습니다. 직접 몸을 부딪혀 싸움을 벌이는 동안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법은 인간성이 약하다는 점을 참작하고 그런 격한 감정에 대해 너그럽게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싸움 당시의 고통이나 폭행에 대한 두려움, 몸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폭력 등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상처를 입히는 과도한 방어행위의 수준을 엄밀히 따지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런 정황을 충분히 배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피고처럼 폭력 사건 이후 12마일을 걸었다면, 아무리 빨리 걸었다고 해도, 충분히 냉정을 되찾을 시간은 있었을 것입니다. 충분히 생각할만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면 이것은 이미 일시적인 분노, 일시적인 공포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예정된 복수를 목적으로 저질러진 행위였으며 여기 대해서는 법률도 동정의 여지가 없고, 별다른 재량의 여지도 없습니다."
"물론 이 불행한 피고인의 행위는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는 특수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피고가 사는 지방은 극히 최근까지도 잉글랜드의 법은 커녕 인근 스코틀랜드의 법조차 시행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잉글랜드의 법은 아직 그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법 역시 사정은 비슷합니다. 즉 북미의 인디언들이나 마찬가지로 이들은 한 번 산간 지대에 들어가면 각 부족이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때문에 각 개인은 자연스럽게 자위의 방편으로 무기를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들은 가문의 이름을 존중한다고 할까, 일종의 자존심이라고 할까 그런 생각에서 자신을 평화로운 나라의 농민이라기보다 기사나 병사로 여기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앞서 검사께서 말씀하신 격투장의 규칙 같은 것은 이들 호전적인 산악 부족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자연이 만인에게 부여한 무기 즉 육체적 수단만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방식은 이들에게 아주 어리석은 해결책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 복수는 그들 사회의 습속으로 봤을 때 마치 체로키족이나 모호크족 등 인디안 부족이나 마찬가지로 일종의 일상사입니다. 그 본질에 있어서, 베이컨 경이 갈파한 것처럼 이것은 일종의 야만 미개인들의 정의인 셈입니다. 즉 폭력을 제지하는 데 있어서 제대로 법이 힘을 발휘하지 않는 곳에서는 복수의 공포, 그것만이 압제자의 손을 제지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모든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피고의 조상 이래로 이 지역 사람들에게 이런 사고방식이 일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법의 집행은 결코 변경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배심원 여러분이나 본 재판장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처럼 가슴 아픈 사건에 있어서도 그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문명의 제일 목적은 모든 사람이 그 칼이나 완력에 의해서 멋대로 적용하는 정의가 아닌, 만인에게 평등하게 시행되는 보편적인 법률의 보호를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을 향해서 '복수는 내가 맡는다'고 외치는 법률의 소리는 신의 계시 다음가는 소리입니다. 비록 일순간일지라도 격정이 식고 이성이 개입할 여유가 있었다면 당사자간의 시비를 판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법률 뿐입니다. 그 법률만이 각자가 각자에게 복수하려는 그 행위를 가로막는 영원불멸의 방패입니다. 다시 한번 되풀이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말하자면 이 사건의 불행한 피고인은 증오의 대상이기보다 오히려 동정의 대상일 것입니다. 피고는 이런 사실에 대해 무지했고, 또 그릇된 명예감으로 인해 죄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배심원 여러분, 피고는 어디까지나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여러분의 숭고하고 중대한 임무입니다. 분노의 격정으로 말하자면 잉글랜드 사람들 역시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아무 다름이 없습니다. 만일 피고의 행위에 대해 아무 형벌도 내려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야 어떻든 남으로 랜즈엔드에서 북으로 오니크섬의 끝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의 흉기를 일제히 풀어놓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나이 먹은 재판관은 이처럼 말을 맺었다. 그러나 그 감동적인 거동으로 보나, 또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을 보나 그로서는 그러한 발언을 한다는 것이 무척 괴로운 일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로빈 오이그 매콘비히, 본성 마그레가는 사형 선고를 받고 형이 집행됐다. 그는 매우 의연한 태도로 거기 복종하고 판정의 정당함도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무기를 지니지 않은 사람을 습격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결코 참으려 들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내가 빼앗은 생명에 대해서는 나도 생명으로 갚는다. 그 이상 어떻게 하란 말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