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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침이 채 오기 전에 이야기의 파국은 이미 다가왔다. 이미 두세 시간쯤 지나 그 싸움이 거의 잊혀졌을 때였다. 로빈 오이그는 헤스켓의 주막으로 돌아왔다. 술집 안은 여러 손님이 들어차고 그만큼 소란했다. 유달리 조용히 주고받는 이야기는 거래의 흥정이었을 것이고 유쾌히 노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 패들은 그저 웃고 노래하고 떠득석하게 농담을 지껄였다. 그 패거리 속에 해리 웨이크필드는 끼어 있었다. 들일을 하는 옷, 못박은 구두, 또 잉글랜드인 특유의 유쾌한 얼굴의 패거리 사이에서 그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야 농부가 좋아, 수레 끌고, 로자 나리인지, 어쨌단 말이냐?'
그 때 돌연 귀에 익은 목소리, 강한 하일랜드 사투리가 들려왔다.
"이 자식, 해리 웨이크필드, 사나이라면 나와라."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손님들은 일제히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 하일랜드 녀석이야." 이미 술이 꽤 취한 관리인이 말했다. "오늘 말이지, 해리에게 뜨거운 국을 한 그릇 얻어먹었지. 양배추 수프가 식었다고 또 데우러 온 모양이지."
"해리 웨이크필드!" 불길한 도전이 다시 소리 높이 울렸다. "사나이라면 나왓!"
이미 생각의 결론을 내리고 지르는 소리, 그것은 그 울림만으로도 기묘하게 듣는 사람의 귀를 울리고, 공포를 자아내는 어떤 것이 있었다. 손님들은 일제히 벽으로 물러나 한가운데 서 있는 하일랜드 사나이, 눈을 험하게 치켜뜨고 결의에 찬 굳은 얼굴을 응시했다.
"로빈, 얼마든지 상대해주지. 단 그건 말이야, 자네와 화해의 악수를 하고 언짢은 것을 모두 술로 씻어버리기 위해서야. 좋지 않나? 어쩐지 자네는 악수하는 법도 모르는 것 같지만 뭐 자네 마음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그는 상대방 바로 앞에 가서 섰다. 상대방을 믿고 있는 그의 거침없는 얼굴은 어둡고 불길한, 요기(妖氣)마저 띠고 있는 로빈의 얼굴과는 기묘하게 대조적이었다. 로빈의 눈동자는 외골수로, 마음 속에 자리잡은 복수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로빈, 자네는 잉글랜드 태생이 아니야. 그렇지 않은가? 계집애처럼 제대로 싸울 줄 모른다고 해서 그게 자네의 수치는 아니야."
"뭐라고? 그렇지 않아." 로빈의 대답은 날카로웠지만 이상하게도 냉정하게 들렸다. "이제 그걸 보여주지. 해리, 자네는 오늘 색슨 사람의 싸우는 법을 보여주었지. 그러니까 이번엔 하일랜드 젊은이의 방법을 가르쳐주지."
그 뒤는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쑥 칼을 뽑았는가 싶더니 날쌔게 커다란 잉글랜드 농민의 가슴에 꽂았다. 있는 힘을 다해 필살의 일격을 가한 것이다. 해리의 가슴뼈에서 일순 뿌드득 하는 소리가 나고, 칼은 바로 심장을 찔렀다. 해리 웨이크필드는 한마디 신음 소리를 냈을 뿐 그대로 쓰러져 숨이 끊어졌다. 로빈은 이어 관리인의 멱살을 잡고 단검을 목줄에 갖다 댔다. 공포와 경악으로 관리인은 방어할 기력조차 없었다.
"네 녀석도 함께 재워주려고 했다." 로빈이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칼에 이 멋진 사내의 피와, 너 따위 거지 같은 녀석의 피를 함께 묻힐 수는 없지." 로빈은 상대의 몸을 힘껏 밀어 던졌다. 사나이는 바닥에 쓰러졌다. 로빈은 동시에 또 한 손으론 피투성이 흉기를 석탄불 속에 탁 던졌다.
"자, 잡을테면 잡아라. 피는 이 불로 깨끗하게 할 테다."
모두들 넋을 잃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로빈은 조용히 경관을 찾았다. 경관이 한 사람 다가섰다. 그는 순순히 줄에 묶였다.
"지독한 짓을 저질렀군." 경관이 말했다.
"당신 잘못이야." 로빈이 대답했다. "두 시간 전에 당신이 만일 저 녀석을 말렸더라면 저 녀석도 아직 살아서 생생하게 떠들고 있을 텐데."
"하지만, 이건 벌이 무거울 거야." 경관이 또 말했다. "상관없어. 죽으면 온갖 빚이 모두 끝나는 거야. 이 녀석한테도 빚을 다 갚는 거니까."
구경꾼들의 공포는 점차 분노로 변했다. 그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던 사나이가 당장 눈앞에서 살해 당한 것이다. 아무리 복수라 해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들은 당장 여기서 린치를 가해 죽여 버리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찰도 수수방관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몇몇 비교적 이성을 잃지 않은 패들의 도움을 받아 칼라일까지 가는 호송마차를 찾을 수 있었다. 다음 순회 재판까지 판결을 기다리기 위한 것이었다.
호송을 준비하는 동안 로빈은 전혀 무관심한 태도로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막 주막을 나서려고 할 때 처음으로 다시 한번 시체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시체는 의사의 검시가 있을 때까지 커다란 탁자, 바로 얼마 전까지 해리 웨이크필드가 의기양양하게 좌중을 휘어잡고 있었던, 바로 그 탁자 위에 눕혀져 있었다. 얼굴에는 깨끗한 손수건이 덮여 있다. 구경꾼들은 놀래서 야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로빈은 살짝 손수건을 제치고 슬프게, 그러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친구의 죽은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 바로 아까까지 생명이 넘치던 그 얼굴은 자기 힘에 대한 흐뭇함과 적에 대한 경멸, 그리고 지금은 화해로 누그러진 표정 그런 것들이 뒤섞인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방금 방안을 피바다로 만든 상처에 범인의 손이 닿아 다시 피를 뿜지나 않을까 구경꾼들은 아슬아슬한 심정이었다. 로빈은 도로 손수건을 덮고는 모두에게 의외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정말 멋진 녀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