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서로 사랑한 친구는 없었다
어찌 다툴 일이 일어날 까닭이 있으랴!

아아, 그토록 그들은 친구를 사랑하고
어떻게든 우정을 보답하고자 염원했거늘
지금은 하나의 벗조차도 남지 않고
아아 그는 그 벗과 싸울 결심을 세웠다.'
- 스코틀랜드의 옛 노래

두 친구는 전과 다름없이 다정하게 리데스딜의 초원을 넘어 캔버랜드의 스코틀랜드 쪽 황무지 지대를 지나고 있었다. 이렇게 황량한 지대에서는 소들이 제멋대로 먹이를 찾아가든지, 아니면 부근의 목장과 운 좋게 부딪히면 잠깐 침범, 실례하고 가는 일도 있다. 그런데 마침 무대가 바뀌었다. 마침내 울타리를 친 비옥한 지대에 내려왔지만 이제 제멋대로 소들의 배를 채울 수는 없다. 사전에 토지 소유자와 교섭을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스코틀랜드의 큰 시장이 가까운 곳은 그랬다. 잉글랜드의 가축 상인도 스코틀랜드의 가축 상인도 몰고 온 소 얼마는 이 큰 시장에서 팔게 되지만, 그러려면 되도록 소의 원기를 북돋고 좋은 상태로 시장에 내보내야 했다. 그래서 초원의 이용권을 얻기 어렵고 값도 비쌌다. 할 수 없이 두 사람은 헤어져 가야 했다. 제각기 소의 사료 조달을 위해 떠나는 것이다.

불운하게도 두 사람은 하필 근방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 어느 시골 신사의 땅을 동시에 교섭했다. 해리 웨이크필드는 전부터 잘 아는 관리인을 통해 교섭을 시작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 주인인 시골 신사가 관리인에게 의심을 품고 '울타리 안의 목장을 누가 사용하려고 신청하면 반드시 사전에 자신에게 알려야 한다'고 지시했던 것이다.

마침 그 시골 신사 애어비 씨는 바로 전날 일이 생겨서 수마일 떨어진 북쪽으로 떠났기 때문에 관리인은 그 조건을 이미 끝난 것으로 마음대로 해석하고 해리 웨이크필드의 요청을 수락했다. 주인과, 아마도 자신의 이익을 잘 고려해준다면 허락한다는 것으로 얘기를 끝냈던 것이다.

한편 로빈 오이그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소를 몰고 가는 중이었다. 그 때 뒤에서 망아지를, 그것도 당시의 유행으로 털을 짧게 깎은 망아지를 타고 굉장히 멋을 부린 작은 남자가 뒤따라왔다. 착 달라붙은 가죽 바지를 입고 반짝반짝 빛나는 말채를 든, 목이 긴 이 사나이는 시장의 경기가 어떠니, 소 값이 어떠니 하며 오이그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로빈도 꽤 이야기가 통하는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말결에 어디 근방에 풀밭을 빌릴만한 곳이 없는가, 잠시 소에게 풀을 먹이고 싶다고 물어보았다. 운이 좋았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으리라. 이 가죽바지의 사나이는 바로 먼저 해리가 관리인과 교섭한, 아니 그 때는 아직 교섭중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목장의 소유주였던 것이다.

"그야 젊은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운이 좋은 거야. 보아하니 당신의 소도 퍽 지친 것 같은데. 바로 여기서 3마일쯤 가면 좋은 들이 하나 있지. 이 근방은 그 곳 밖에 없을 걸."

"2,3메에르나 4메에르 쯤이라면 소도 아직 걸을 수 있죠." 빈틈없는 로빈 오이그는 "그런데 그 풀밭을 2,3일 빌린다면 나리, 빌린 삯이 한 마리당 얼마입니까?"하고 물었다.

"뭐 서로 무리가 없도록, 겨울장을 볼만한 송아지 여섯마리 얻으면 더 말 않지."

"그렇더라도 어떤 소가 좋을까요?"

"응, 글쎄... 저 검은 놈으로 두 마리. 빨간 놈으로 하나... 그리고 저기 저 두 살 배기 소, 저 뿔이 휘어진 놈, 그리고 이 뿔없는 놈 정도면... 한데 대체 한 마리에 얼만가?"

"참, 나리는 눈이 높군요. 좋습니다. 척 들어맞았어요. 가령 내가 말이죠, 여섯 마리를 고른다고 해도 그 이상 고르진 못하죠. 내 자식처럼 잘 아는 내가 말이죠."

"그건 그렇고, 한 마리에 얼만가?" 애어비씨는 되풀이해서 물었다.

"도운이나 핼커크도 꽤 좋은 값이었다는데고 하던걸요."

이야기는 대개 이런 투로 나아가고 결국 소는 타당한 값으로 일단락 지었다. 로빈은 이것으로써 풀만 좋다면 웬 땡잡은 장사냐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어비씨는 줄곧 소떼를 따라갔다. 안내인으로서 소를 풀밭까지 넣은 것을 보기도 하려니와 스코틀랜드 일대의 최근 시황을 듣고싶기도 했던 것이다.

마침내 목장에 닿았고 풀의 상태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거기에서 놀라운 것은, 방금 소유주와 로빈 사이에 이야기가 됐던 풀밭에 관리인이 유유히 소떼를 끌어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애어비씨는 즉각 말에 박차를 가해 관리인에게 달려갔다. 관리인과 해리 사이의 이야기는 곧 알아들었으나 그는 해리에게 관리인이 여기를 빌려주긴 했으나 자기의 승인을 받지 않았으므로 풀은 아무데나 딴 곳에서 구하기 바란다, 아무튼 여기는 빌려줄 수 없다고 한 마디로 거절하고 말았다.

애어비씨는 관리인이 자신의 지시를 무시했다고 마구 힐난하고 그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지쳐버린, 모처럼의 진수성찬을 눈앞에 두고 뜯어먹으려는 해리의 소떼를 밖으로 쫓아내도록 명령했다. 대신 당장 로빈의 소떼를 넣어주라는 것이었다. 해리는 처음으로 로빈을 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때 해리의 가슴에 품은 감정으로는 당연히 애어비씨의 결정에 항의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잉들랜드인, 준법의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더구나 관리인인 존 프리스뱀킨까지 뚜렷이 월권이라는 점을 인정한 이상, 해리로서도 억울하지만 실망한 소들을 다시 모아 어디든 다른 곳을 찾아 몰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일의 자초지종을 안 로빈 오이그는 난처했다. 그래서 해리에게 문제의 풀밭을 함께 쓰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나 해리 웨이크필드는 자존심이 상했다. 앙연히 대답했다.

"까짓, 다 주지. 몽땅 줄게. 흥, 담배를 둘이 필 수야 있나. 높은 사람과 직통이라 평민 따위는 벙어리 방석이란 말이렸다. 제기랄 그만 둬. 난 말야, 더러운 구두에 입맞추고 남의 부뚜막에서 빵을 굽겠다곤 안해. 천만의 말씀이지."

로빈 오이그는 친구가 화를 내는 것이 슬프긴 했지만 무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친구를 설득해봤다. 불과 한 시간만 참아줄 수 없을까. 애어비씨의 집에 갔다가 소의 대금을 받은 즉시 다시 돌아와서 함께 딴 휴식장을 찾도록 하고 또 이렇게 둘이 엉뚱하게 엇갈리고 만 까닭도 자세히 설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리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그렇군. 그럼 장사까지 했군. 맙소사, 틀림없는 선생님이시군. 척척 장사의 썰물 때를 잘 맞추시거든. 가란 말이야. 지옥이든 어디든 맘대로. 여하튼 배신하는 녀석의 낯짝 따위는 두 번 다시 보고싶지 않으니까. 자네, 그래도 내 얼굴을 보는군."

"뭐, 누구의 얼굴이라도 볼 수 있지." 로빈도 다소 화가 났다. "그뿐인가. 오늘이라도 자네, 저 아랫마을에서 묵게 되면 틀림없이 또 한번 보기 마련일걸."

"뭐라고? 아무튼 나오지 않는 게 나을 걸세." 해리는 대답했다. 그리고 휙 등을 돌리고 관리인과 함께 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관리인도 어떻게 해서든 해리에게 서비스를 함으로써 약간의 주머니 계산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두세 군데 근방의 농장주들을 부딪혀 보았으나 맘에 드는 풀밭을 제공하겠다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해리 웨이크필드는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겨우 주막집 주인을 통해 우선 급한 불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 주막집은 처음에 그가 로빈과 헤어질 때 오늘 밤 함께 묵기로 약속을 정했던 집이었다. 주막집 주인은 바로 옆의 습지에 먼젓번 관리인이 요구한 풀값보다 조금 싸게 소를 넣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땅은 습기가 많고 거친 곳이었다. 이런 곳에 돈까지 지불하고 보니, 해리는 그것이 로빈의 우정과 신의의 배신의 결과라고 느꼈다. 또 해리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은 관리인과 주인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두어 손님이었다. 관리인으로 말하자면 생각지도 않던 주인의 꾸지람을 산 이유가 로빈에게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로빈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이유가 분명했다.

주막 주인과 손님들이 해리의 노여움을 부채질한 것은 우선 옛날부터 국경지대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었다. 또 아담 이래 신분,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일이 벌어져라'는 심정도 분명히 작용했다. 더구나 맥주를 마시며 그런 얘기를 한 것이 기분을 선동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말 많은 주인과, 배신자에 대한 벗의 저주는 큰 컵을 몇 차례 비우는 동안 완전히 일종의 맹세로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