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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는 가라앉은 기분으로 장난감 재목을 상자에 넣고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내가 빌리에게 뭘 잘못했단 말인가. 내가 만든 장난감 집을 부순 것은 빌리 아닌가. 드와이트는 언제나 내가 다 만들 때까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제일 나이가 많은 내가 뭐든 앞장 서서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녀의 이유를 들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뭣이든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부엌 바닥을 깨끗이 닦으면서 눈물을 흐르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좀 있다가 엘머가 돌아와서 그녀의 기분은 좀 밝아졌다. 엘머는 뒤 현관 계단에 올라서자 부엌을 지나면서 "에드너!"하고 아내를 불렀다.
"저쪽에 있어요." 데이지는 묻지도 않은 것을 일러 주었다.
"이제 갈까? 어! 우리 아기는 잠들었나?" 의외란 듯이 엘머는 말했다.
에드너의 얼굴에 경고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데이지는 되도록 조용히 빗질을 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이 얘기하는 것이 띄엄띄엄 들려온다 - "거북해지면 싫어요... 그건 그렇지만 일단 시작한 바에는... 하루 종일 뭐 하나도... 우리가 저 애를 데려온 것은..." 데이지는 이 말들의 뜻을 잘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급히 청소를 끝내고 빗자루를 치웠다. 그리고 자신도 외출 준비를 해도 좋은지 어쩐지 분명히 알고 싶었다.
엘머가 활발하게 방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대로 데이지 곁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창으로 내다보니 차고에서 자동차를 돌려 밖으로 꺼내고 있다. 이층에서 에드너와 빌리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을 깨서 칭얼거리는 아이의 울음 소리도 들렸다. 나도 여기서 우물쭈물하지 말고 외투라도 입어야 하지 않을까.
엘머가 클랙슨을 울렸다. 곧 에드너가 외투에 모자를 쓰고 급히 계단을 내려왔다. 빌리는 빨간 스웨터를 입고 뜨개 모자를 쓰고 있어 어쩐지 어린이 걸스카웃 단원 같은 모습이다. 아이도 조그만 외투를 입고 있다.
"여보, 애 좀 데리고 가요." 에드너가 밖에 있는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데이지쪽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렇게 돌아 보지도 않으면서 빠른 말투로 "데이지, 우린 잠깐 드라이브하고 올 테니까... 청소는 끝냈니? 그래, 그럼 식당에 어질어진 걸 치워라. 곧 돌아올 테니까 그리 알고. 다섯 시 십오분이 되거든 불을 켜는 거야. 낮에 내가 보여줬지? 그리고 남은 감자를 얇게 썰고 그리고 고기도. 그것이 다 되거든 식탁 준비도 해 둬."
클랙슨이 또 울렸다.
"네! 알았어요. 그럼 갔다 오겠다. 데이지! 자, 아가 아빠가 빨리 오라고 그러시잖니."
데이지는 제 자리에 서서 그들이 출발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빌리가 소리를 지르며 아빠 옆에 앉았다. 에드너는 남편 손에서 아이를 받아 뒷자리 자기 옆에 앉혔다. 자리는 넉넉하다 -뒷좌석 반이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이다. 집에서 할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 이 사실이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나를 데려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모두가 제 집안 사람, 남의 집 사람은 데려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이방인인 것이다. 그들은 모두 저 아이까지도 -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엔진이 부릉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출발했다. 대문까지는 진흙을 튀기면서 천천히 가다가, 거기서부터 차츰 속력을 내서 모퉁이를 돌아선 뒤 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맥없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비오는 날의 오후 늦은 시간. 창으로 스며드는 빛도 어두침침하다. 쥐색 깔개 위에 내리닫이 아기 옷의 핑크색 천이 흩어져 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그것을 모아 코로 슬쩍 냄새를 맡으면서 천천히 치우기 시작했다. 빅벤을 본뜬 부엌의 기둥시계가 크게 시간을 새겨 가는 소리가 들린다.
무서운 쓸쓸함이 그녀의 전신을 휩쌌다. 누구 하나 이것을 알아줄 사람은 없다. 전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걱정하면서 집에 돌아왔다. 이따금 나무랄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 기분이 상하지 않나 늘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 주었다. 엄마도 고르디도 드와이트도 그녀를 생각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먼 시골에 와 있고 그들은 모두 집에 있다.
그녀는 이렇게 남의 집에 있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엄마 말을 들어보면 이번 여름부터는 나도 차차 일을 돕지 않으면 안 되는 모양이다.
못생긴, 조그만 입 언저리가 이지러지며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소리는 내지 않았다.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럴 밖에 없다. 울건 어쩌건 누구 하나 생각해 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달래 줄 사람도 없다는, 소름 끼치는 이 현실을 그녀도 이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