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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눈물 어린 눈, 그리고 여윈 팔로 갑자기 거세게 안아주는 모습 등 정확히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머니의 태도를 데이지도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데이지는 갑자기 자기가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데이지의 조그만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처음으로 훌륭한 어른이 된 것 같은, 자신만만한 생각도 어쩐지 폭삭 사그러드는 것 같았다.
엘머의 커다란 새 자동차는 진흙탕이 된 길에 당당한 차체를 기우뚱하게 서 있었다. 자동차 바퀴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다. 길은 질컥거리는 황토 흙으로 엉망이고, 구덩이마다 흙탕물이 고여 있어 운전하기에는 썩 좋지 않은 날이었다.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 변두리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집 앞을 지나 언덕을 넘어가는 좁은 길은 비에 젖어 아주 쓸쓸하고 고요한 풍경이었다. 엘머는 운전석에 앉아 있고 뒷좌석에는 커다란 식료품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를 밀어놓지 않아도 앉을 수 있겠어?" 엘머가 상냥하게 데이지에게 물었다. "내려서 그걸 밀어 주면 좋겠지만 길이 워낙 진흙탕이어서..."
"괜찮아요, 괜찮아요, 내리지 마세요." 어머니가 당황해서 말했다. "그 정도는 저 애 힘으로 해도 돼요. 자리 아래에 내려 놓아도 되구요."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말을 찾아 눈치를 보며 말했다. "가는 길도 별로 좋지 않겠죠?"
"네, 하지만 농부들은 그런 것에 익숙하니까 길이 좀 나빠도 상관 없어요."
"그렇겠군요."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엘머는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또 데이지를 억세게 끌어안았다. 데이지는 식료품 상자를 넘어가서 좌석 한 쪽 귀퉁이에 겨우 앉았다.
"앞으로 이쪽에 볼 일이 있어 나오시면 이 애도 데리고 와 주시겠지요?" 어머니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네, 그러고 말구요. 데리고 와야지요."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엘머는 엔진을 걸었다. 엔진 움직이는 소리가 가라앉으면서 차 바퀴가 깊은 진흙 속에서 돌기 시작했다.
순간 데이지는 자기 집 전체를 눈에 담았다. 황량하고 높은 곳에 서 있는 작은 집, 바람과 비에 씻겨 더러워진 벽 위로 여기 저기 빗물이 흐른 흔적이 보인다. 위태롭게 경사진 현관 앞 돌층계는 양쪽 난간이 부서진 채 빗물에 젖어 있다. 비쩍 마른 닭이 먹을 것을 찾아 젖은 땅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장난감 삼아 가지고 논 여러 가지 돌, 짐수레, 낡은 들통의 덮개 따위가 몇 장씩 흩어져 있다. 뒷마당에는 색이 바랜 속옷이 한 장 물에 젖은 채 빨래 줄에 걸려 있다. 정원은 풀이 엉성하다. 도로에 닿은 언덕에는 잡초가 길게 자라 있었다. 그 아래쪽 누런 땅에는 구멍이 군데 군데 패여 있다.
고르디와 드와이트는 딱딱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의 얼굴도 보였다 - 깡마르고 피곤한 듯 하면서 상냥스러운 얼굴, 눈물을 흘려도 위로해줄 사람 하나 없으면서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다. 이가 빠진 탓인지 입 언저리가 유난히 쓸쓸한 것 같다... 낡은 외투에다 초라한 신을 신고 청소할 때 쓰는 모자를 쓰고서... 일에 시달려 관절이 툭 불거져 나온 손가락으로 자기 외투 자락을 꼭 움켜쥐고 있다.
바로 어제까지도 타고 놀았던, 한 그루밖에 없는 나무에 매여 있는 낡은 그네는 양쪽 줄이 비에 젖어 있고 앉는 자리도 줄이 꼬여 엉켜 있었다.
자동차는 진흙에 미끄러지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녀는 자신이 지금 이런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손을 흔들었다.
그들도 데이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곧 단풍나무 아래에 있는 낡고 검은 무쇠 펌프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을 위해 물을 길어다 놓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남의 집에 일하러 가려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