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너가 뒷문 층계참에 나와 있었다. 엘머는 식료품 상자를 내리면서 그쪽을 보고 씩 웃었다. 에드너도 약간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상냥하게 말했다.
"어머, 데이지를 데리고 오셨군요. 어서 와, 데이지. 올 여름에는 우리 집에 있어 주겠지?"
"그럼요." 그녀는 약간 뽐내듯이 대답했다. 그러나 차를 내려 좀 썰랑한 바람을 몸에 받으면서 정원 가운데 서 있자니 어쩐지 갑자기 마음이 허전하고 서글퍼졌다.
"데이지 집에 들러서 데리고 왔어." 엘머가 말했다.
"길이 좀 어때요?"
"별로 좋진 않아. 그련데 왜?"
"응, 조금 이따가 엄마한테 가보고 싶어서."
"아, 그 정도 가는 건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
데이지는 그 조그마한 귀를 곤두세웠다. 그렇다면 또 자동차에 탈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자 그녀는 기뻤다.
"문 안을 좀 봐요." 에드너가 턱으로 그 쪽을 가리키면서 일부러 낮은 목소리로 애교 있게 말했다.
조그맣고 동그란 금발 머리가 두 개 거기 문 뒤에 숨어 있었다. 거기서 "압빠! 압빠아!"하고 요란하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식료품 상자를 안고 서 있는 엘머는 눈을 꿈뻑거리고 어깨를 으쓱으쓱 추키면서 일부러 놀란 것 같은 몸짓으로 "저런, 저게 누굴까?" 말했다.
"도대체 누구지? 누가 압빠 압빠 부르는 거니? 압빠가 뭘 가지고 왔는지 너희들 알겠니?" 엘머는 이렇게 말하면서 에드너를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때 에드너가 데이지를 생각하고 그녀를 서둘러 불렀다.
"데이지야, 이리 오렴!"
부엌에 들어간 데이지는 따돌림 받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꼈다. 큰 아이 빌리는 신이 나서 엘머의 무릎에 기어 오르며 캔디를 달라고 조른다. 빌리의 동생도 웃으면서 주변을 깡총깡총 뛰어 다니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한편 반짝반짝 빛나는, 푸르고 흰 체크 무늬의 리놀륨이나 에나멜에 니켈을 칠한 요리 솥, 나무로 잘 다듬은 벽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에드너가 웃으면서 엘머와 빌리를 나무란다. 빌리가 기어코 아빠에게서 캔디를 뺏은 것이다. 데이지의 조그만 눈은 그 레몬 드로프스를 마치 집어삼킬 듯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너도 이것을 눈치챘다.
"데이지 누나도 한 개 줘야지."
그러나 빌리는 데이지한테 가는 것이 싫었다. 데이지가 와서 제가 한 개 집어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데이지는 에드너가 캔디 봉투를 접시에 넣어 식기 선반에 넣는 것을 보았다. 조금 있다가 꺼내서 나에게도 주겠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제 여행 가방이 바깥 차에 있는데요." 데이지는 그들이 잊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엘머! 당신이 가져다 이층까지 올려다 주지 않을래요?"
"뭘?"
"데이지의 가방인지... 뭔지 몰라도... 자동차에 놓고 왔다는데요..."
"아, 그래?" 엘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낡은 여행 가방이에요." 데이지가 공손하게 말했다. "상당히 낡은 거에요. 우리 아버지가 옛날에 쓴 것이니까요. 오늘 아침 엄마가 뚜껑을 덮고 조르다가 가죽 끈이 끊어졌어요. 우리 집에는 슈트케이스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그걸 가지고 온 거에요. 엄마가 새 걸 사주지도 않아서..."
에드너는 체면치레로 미소했다. 그리고 어린애가 달려들어 오는 것을 보고 몸을 움츠려 아이의 손을 뿌리칠 시늉을 하다가, 그래도 귀엽다는 듯 그 동그란 머리에 그녀의 볼을 비비는 것이었다.
데이지는 딱딱한 표정으로 그들의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집 아이들이 둘 다 남자 애일줄은 몰랐어요"하고 말했다. "하나는 계집애인 줄 알았어요. 우리 집이 그래요... 남자 애 하나 여자 애 하나."
"응, 응" 에드너는 별 흥미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저씨 따라가서 이층에 외투도 벗어놓고 오거라, 데이지." 그녀는 계속해서 데이지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층에서 가방 짐도 정리하면 어떻까? 그게 끝나거든 내려와서 부엌 일을 도와 줘야지. 내 심부름을 하려고 왔으니까." 이 사실을 잊으면 곤란하다는 듯 에드너가 데이지에게 말했다.
데이지는 시키는 대로 엘머를 따라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이층 복도에는 얼룩 하나 없는, 섬세한 천으로 만든 노란색 깔개가 두 장 바닥에 깔려 있었다. 엘머는 침실 하나에 데이지의 가방을 운반해 갔다.
"자, 이 방이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방을 나갔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다가 부엌에서 뭔가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주고 받으며 웃는 소리도 들려왔다. 뒤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데이지는 급히 창가로 달려갔다. 엘머가 성큼성큼 가축 우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신기한 듯 방안을 둘러 보았다. 방바닥도 깨끗하게 니스 칠이 되어 있다.
혼자 쓸 수 있는 침대 - 조그만 구식 침대가 있다. 옛날에 쓰던 것이겠지. 물 탱크로 가는 파이프가 통하는 이 방에 그대로 넣어 둔 것이리라.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샅샅이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살금살금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양복장 서랍도 열어보고 창 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녀의 시선에는 사람의 눈을 꺼리는 것 같은, 남 모르는 불안함이 서려 있었다.
데이지는 외투와 모자를 벗어 침대에 놓았다. 지금 당장 가방의 짐을 꺼내는 것보다 오히려 부엌에 있는 에드너한테 내려가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자기도 가는 것이니까 거리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출발 - 4. 깨끗하고 차가운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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