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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는 되도록 빨리 일을 끝내고 에드너가 아이들의 내리닫이 옷을 만들고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에드너는 바느질하는 손을 쉬지 않았다. 데이지는 서글픈 얼굴로 앉았다. 기묘한 마음의 아픔이 전신에 퍼져 갔다. 그녀는 들릴락 말락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또 이가 아픈 것 같아요."
에드너가 실을 이로 물어 끊었다.
"얼마 전에 무척 앓은 일이 있어요. 좀 있으면 엄마가 치과 의사한테 데리고 간다고 했었는데..."
"그거 어떡하니..." 마지 못해 에드너가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더 이상 위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반들거리는 가죽 소파 한 귀퉁이에 담요를 깔고 베개를 베고 자고 있는 자기 아이의 얼굴을 이상한 미소를 띠고 바라보았다.
"엘머 아저씨는 내일 시내에 자동차를 타고 가시나요?"
"내일? 내일은 안 가겠지."
"내 체크 무늬 옷 벨트를 엄마가 찾다가 못 찾았어요. 그래서 혹시 엘머 아저씨가 가시면 저도 같이 가서 가져오려구 생각했어요. 그게 매고 싶어서요."
데이지는 울 것처럼 보기 흉한 입술을 깨물고 있다. 그녀의 이가 아픈 것쯤은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에드너는 데이지의 몸이 불편하다는 얘기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은 눈치였다. 데이지는 에드너가 약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정도 걱정은 해주기를 기다렸지만 사실 이가 아픈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몸 전체가 뒤틀릴 것 같은 적적하고 막막한 기분을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대로 가면 무서운 병이 될지도 모른다. 엄마가 저녁 때 집에 돌아 와도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알려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으로 흘낏 본 엄마의 그 모습이 그녀의 뇌리에 되살아왔다 -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으면서도 억지로 웃으려고 애쓰던 그 얼굴, 낡은 청소용 작업모를 쓰고 한 손으로 외투 자락을 꽉 틀어쥐고 있던...
에드너는 데이지를 힐끔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매력이 없는 아이다. 외로움에 젖어 있을 때도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구석이 없다. 에드너는 약간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데이지야, 빌리가 좀 귀찮게 구는구나. 부엌에 데리고 가서 놀아 주지 않을래?"
"제가 안으면 우는 걸요." 자신 없다는 듯 데이지가 대답했다.
"이젠 안 울 거야. 거기 데리고 가서 나무 블록을 가지고 놀게 해. 애들을 상대해서 놀아주는 것도 네 일이야."
"저하구 같이 갈까요? 빌리가..."
"그럼 가구 말구. 자 가지? 빌리야, 데이지하고 같이 가서 놀아라, 우리 애기 참 착하지."
빌리는 커다란 눈으로 한동안 데이지를 흘겨 보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까닥까닥 걷는 빌리의 조그맣고 통통한 손을 잡고 나란히 부엌에 들어 가면서 데이지는 몸이 짜릿할 정도로 기쁨을 느꼈다. 이렇게 통통한 손이 또 있을까... 데이지는 생각했다. 에드너는 장난감 나무 블록 상자를 가져다가 데이지의 옆에 놓았다.
"자, 빌리를 잘 보고 있어라. 나는 바느질을 끝내야 하니까."
"같이 놀자, 빌리 - " 데이지는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손으로 상자를 잡고 속에 든 블록을 요란하게 바닥에 쏟아놓고 기쁜 듯이 그리고 자랑스러운 듯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안 돼, 빌리야. 그렇게 다 쏟아 놓으면... 그냥 둬. 넌 아직 어리니까 이걸 쌓아 올리진 못할 거야. 안 돼, 안 돼... 가만 있어! 누나가 해 줄게. 누나가 정말 굉장한 걸 만들어서 보여 줄게 응?"
빌리는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지는 매끄러운 리놀륨 바닥 위에 장난감 블록을 가지런히 놓았다. 이렇게 좋은 블록을 만져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동생 드와이트의 것은 낡고 수도 적으며 종류가 다 갖추어져 있지도 않았다. 무엇이든 집에서 동생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놀던 기분이 살아났다. 그래서 자기가 블록을 쌓아 올렸다가 옆에서 빌리가 손을 뻗칠 때마다 그 통통한 손을 매섭게 밀쳤다. 이렇게 좋은 장난감이라면 정말 좋은 것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가만히 있어, 빌리! 그러면 안 돼. 누나가 말이야, 끝까지 다 만들거든 말이야, 이게 무슨 모양인지 알게 될 거야."
그녀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블록을 하나 하나 맞춰갔다. 자기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새 집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니 새 교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벽을 다 만들었을 때였다. 빌리가 슬쩍 손을 뻗어왔다. 그리고 빌리는 기쁜 듯 소리를 지르면서 방바닥 하나 가득 블록을 흩어버렸다. 블록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빌리는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펴고 만족스럽게 "야!" 환성을 올렸다.
"얘, 빌리야 - 참, 애두... 기껏 짓고 있던 집이 부숴졌잖아! 네가 부순 거야. 자, 여기 떨어져 앉아 있어. 내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줄 테니까."
통쾌하고 자랑스러워 하던 빌리의 얼굴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빌리가 큰 소리로 투정을 하는 것도 모른 척하고 데이지는 그를 안아다 부엌 한 귀퉁이에 앉혔다. 빌리는 큰 소리로 울었다. 그는 이렇게 밀려난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에드너가 놀라서 뛰어왔다. 데이지는 자기가 한 일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아 주려니 하고 에드너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순간 그녀는 직감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했다.
"빌리가, 쌓아놓은 장난감 집을 무너뜨렸어요. 공들여 만든 걸 헐어 버렸어요."
"앙! 앙!" 빌리는 더욱 슬프게 큰 소리로 울었다. 통통 살이 찐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구원을 바라는 듯 엄마를 향해 두 손을 벌렸다.
"전 때리지는 않았어요." 데이지는 어쩔 줄 모르고 말했다.
"괜찮다, 아가." 에드너는 쓰다듬듯 속삭였다. "얘가 제 장난감을 흐트린 게 뭐가 나쁘냐? 이건 빌리의 장난감이지 네 것이 아니야, 데이지." 에드너는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앉아서 네가 하는 걸 보고만 있으라니까 그게 싫은 거지 뭐냐. 얘도 그걸 가지고 놀고 싶은 거야. 알았니? 네가 울린 거야."
"나 엄마 있는 데 갈래." 빌리가 울면서 말했다.
"그래, 그래. 엄마 있는 데로 가자." 에드너는 아이를 안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전 때리지도 않았어요." 억울한 듯이 데이지가 말했다.
"자, 그만 둬. 블록을 치우고 부엌 바닥이나 청소해라. 너 그릇들만 씻고, 부엌 바닥 소제는 안 했지?" 그리고 다음은 빌리에게 말했다. "곧 아빠가 오실 거야. 오시거든 같이 재미있게 차를 타고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