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머 크루즈가 시장에서 일을 볼 동안 데이지가 떠날 채비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스위처 네 집은 지금 야단법석이었다. 엘머가 데이지를 데리러 온다는 것을 일 주일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가 시간에 맞춰 와 버린 것이다.

"이렇게 비가 오고 길도 험해서 다음 주일쯤 데리러 올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준비가 안된 것을 변명은 했지만, 실상 언제 왔다고 해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을 것이다.

데이지의 어머니는 지금 침대 위에 낡은 여행 가방을 꺼내 열어 놓고 딸의 물건을 전부 챙겨 넣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침대 위 잠자리는 아직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방에 물건을 다 넣기만 하면 준비는 끝나는 셈이다. 데이지가 그걸 들고 떠나면 곧장 오늘 약속한 우드워즈 씨 집으로 달려가서 세탁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데이지의 물건이 흩어져 있는 갈색 담요나, 꾀죄죄한 시트가 음침한 날씨 탓인지 더욱 지저분하고 눅눅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 침실 전체가 불쾌할 정도로 스산했다. 천장은 경사져서 기울어져 있고, 딱딱하게 네모가 진 구식 유리창, 온 식구가 함께 화장대로 사용하는 작은 장롱 위에는 머리핀이 담긴 그릇이라든가 클립, 부러진 빗, 리본, 그을음이 낀 등잔 따위가 지저분하게 어질어져 있었다. 옷장 문은 열려진 채로 안에 옷가지와 낡은 구두가 멋대로 흩어져 있는 게 훤히 보였다... 스위처 집 사람들은 모두 이 방에서 잔다... 어머니와 드와이트가 하나의 침대에서 자고, 두 딸도 한 몸처럼 엉겨서 벽에 붙은 간이 침대에서 자는 것이다.

"엄마, 그 체크 무늬 드레스의 허리띠가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그래? 거기 어디 있을 텐데? 하지만 그걸 찾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중에 나올 테니까 그때 보내주마. 누구든 그리 가는 사람이 있을 거야."

어머니로서는 빠짐 없이 준비를 갖춰서 딸을 보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언제나 집에 돌아와보면 손을 대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의 집 청소나 세탁을 해주는 그녀는 하루 종일 집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정작 자기 집 일을 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오늘은 이미 가야 할 시간이 지났다. 우드워즈 집에서는 늘 세탁을 빨리 해치우고 청소까지 좀 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지만, 오늘만은 아무래도 그럴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다. 데이지를 시골로 먼저 떠나 보내기 전에는 일터로 갈 수 없는 것이다. 엘머가 오면 곧 출발할 수 있는 준비는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푸른색이 바래서 회색처럼 보이는 청소 모자를 쓰고, 세탁이 있는 날만 입고 가는 작업복에 소매에 주름을 넣은 검은색 구식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내복은 어떠니? 모두 더러워지지는 않았겠지?"

"아니, 더러워요. 지난 주일에는 엄마가 우리들 옷은 하나도 빨아주지 않았잖아요."

"그러면 깨끗한 것만 가져가렴. 나머지는 뒤에 어떻게든 너한테 보내 줄 수 있을 거야."

"엘머 씨 네는 일 주일에 한 번씩 시장에 오지 않나요?"

"오기는 하겠지만 그때마다 너를 데리고 오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될 대로 되라는, 몸에 밴 체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하지만 이것만은... 하면서 될 수 있는 한 많은 물건을 여행 가방에 쑤셔 넣었다.

"데이지, 네 준비는 다 됐지?"

"다 됐어요. 그런데 엄마, 그 리본을 달고 싶어."

"그래, 그건 가방 밑에 있을 게다. 그런데 그렇게 깔끔하게 차릴 필요는 없어. 넌 지금 손님으로 가는 게 아니니까.

데이지는 조그만 거울 앞에 서서 옷 매무새를 고쳤다. 볼품이라곤 전혀 없는 아가씨였다. 누가 봐도 한 눈에 스위처 네 집 딸이라는 것을 눈에 알아볼 정도로 그게 뚜렷했다. 비쩍 마른 몸매, 두 눈이 맑고 푸르기는 해도 피로한 느낌이 들고 처량해 보였다. 숱이 적은 머리는 붉게 탄 색깔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보기 싫은 모습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장녀였기 때문에 남의 집에서 입던 양복이라도 얻어오면 제일 먼저 자기 맘에 드는 옷을 고르곤 했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동생인 고르디나 드와이트의 부러움을 샀다. 뭐니뭐니 해도 그녀는 그 조그만 가정에서는 중심 인물인 것이다. 그녀는 시내에 사는 변호사의 딸 앨리스 브로커에게서 물려받은 푸른 외투가 자랑스러웠다. 실은 그 외투를 입으면 고르지 못한 옷자락 밑으로 깡마르고 조그만 무릎이 드러나고 단추도 지나치게 내려 달려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를 위해서 뜯어 고쳐준 오버코트였다.

어머니는 지금 딸에게 여러 가지를 일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가닥이 잡히질 않았다. 딸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데이지는 리하이(펜실베이니어주 동부)에 사는 프레드 삼촌을 방문한 것 외에는 집을 떠나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엘머의 집에 가는 것도 그녀는 삼촌 집에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배워야 될 것이 너무 많다. 물론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눈치 채고 배우기는 할 테지만... 이것은 이제 눈앞에 닥쳐온 일이다.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한다는 것 -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그녀도 알게 될 것이다. 엘머도 에드너도 마음씨 좋은 젊은 부부니까 데이지에게 나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으로 세상 맛을 보는 아가씨로서는 그래도 다행인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삼촌 집에 갔을 때와 대접이 같을 수는 없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데이지는 자랑스러움으로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세상에 나가 돈을 번다'는 것은 놀라운 일 아닌가. 주급 일 달러 반을 받으니까 여러 가지 물건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동생들은 깜짝 놀라서 주춤거리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녀를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있다. 자기들도 데이지처럼 남의 집에 일하러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때 진흙을 튀기며 천천히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벌써 왔다. 너 잊은 물건은 없니? 고르디, 너 먼저 뛰어가서 누나가 곧 간다고 얘기하렴."

"내가 갈 거야. 내가 가서 말할 거야!" 드와이트가 부러운 듯 앙탈을 부렸다.

"그럼 둘이 가서 이야기하고 오거라, 어머나!"

그녀가 불룩한 여행 가방의 뚜껑을 닫고 가죽 끈을 조이는 순간 한 개의 끈이 툭 끊어진 것이다.

"이렇게 억지로 집어넣었으니 안 끊어질 리가 있나."

가방에 유행이 지나간, 낡은 것으로 그녀의 남편 마트가 죽기 전 외판원 일을 그만 두면서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죽은 남편이 이미 닳도록 오래 쓴 물건이었다.

"얘, 이제 빨리 가 봐라. 엘머 씨가 오래 기다리게 하면 기분이 나쁠 거야. 다 가져가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든 보내줄 테니까."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은 곧 울상이 되어 버렸다. 누구나 말하지만, 그녀도 이 길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데이지도 집안을 도와야 할 나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일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딸을 거친 세파 속에 내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딸의 출발을 전송하는 마음이 쓰라렸다. 세상 풍파 속으로 뛰어들어 남의 집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내 말 잘 들어라. 올 여름에 열심히 일을 도와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계속해서 너를 집에 두고 싶어 할 거야. 그리고 가끔씩 놀고 오라고 집으로 보내주기도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