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이 되어 엘머가 집에 들어왔다. 그는 흙 냄새가 나는 바깥 공기도 함께 집안에 가지고 왔다. 부엌의 난로가 활활 타고 있었다. 식탁에는 하얀 기름 종이가 덮여 있고 니스 칠을 한 껑충한 어린이 의자에 조그만 아이들이 살이 통통 찐 조그만 손들을 올려놓고 앉아 있다. 그러나 부엌에는 어쩐지 찬 바람이 도는 것 같았다.

에드너는 엘머를 향해서 뭔가 뜻 있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그러나 데이지는 그걸 보지 못했다. 그녀는 에드너가 요리를 만들고 있는 곳에서 좀 떨어져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너는 데이지에게 등을 돌리고 의식적으로 신경을 쓴 말투로 말했다.

"자, 데이지, 엘머 아저씨가 식사하러 돌아오셨어. 급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돼. 너도 도와 줘야지. 빵을 썰고 식기를 날라야 한다. 너는 일을 해야 하는 거야. 그것 때문에 와 달라고 한 거니까."

데이지는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한 표정이다. "빵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요."

"오늘 아침 넣어 두라고 그랬잖아? 그런데 어디다 넣었는지 모르겠어? 저기 선반의 큰 상자 안에 있어. 데이지, 정신을 차리고 뭣이 어디 있는지 항상 알아 둬야 해."

엘머는 자기를 보는 에드너의 표정에 약간 어리둥절했으나 곧 휘파람을 불면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

"압빠의 친구들은 안녕하신가?" 그는 아이들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건드리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에드너는 그 옆을 지나다가 머리를 흔들면서 "오늘 아침부터 저 모양이에요" 하고 소리를 죽인 채 거의 입술만 움직여 이렇게 말했다.

엘머는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대답으로 빙긋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다.

데이지는 그들이 주고받은 말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에드너가 가지고 있는 물건과 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이 집의 분위기 밑바닥에는 무언지 종잡을 수 없는, 신경을 자극하는 묘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침에 왔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느낌이 지금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곳의 분위기에서 그녀가 지금껏 몰랐던 기묘한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 그녀의 입장과 이 집 두 아이들의 입장에는 무언가 묘한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손님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하고 엄마가 한 말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쩐지 또 이가 아플 것 같아요." 그녀는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에드너는 감자를 꺼내서 물기를 닦아냈다... "데이지, 접시 한 개 가져다 주렴." 데이지가 무척 오래 접시를 찾는 동안 보다 못한 에드너가 돌아보고 손가락으로 접시를 가리켰다. 그리고 에드너는 다른 식기까지 자기 손으로 식탁에 갖다 놓았다. 젊은 목소리로 활발하게 떠들던 입술이 지금은 굳게 닫혀 있다. 분명히 어떤 생각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지는 어리둥절해서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바짝 마르고 아무리 봐도 귀여운 데가 없는 소녀였다. 털 오버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걸친 빌리가 서투른 걸음으로 부엌을 여기저기 걸어 다니고 있었다. 금발 머리가 탐스럽고 귀여웠다. 데이지는 아이를 식탁에 데리고 가려 했다. 순간 빌리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에드너가 깜짝 놀라 몸을 돌리더니 얼굴빛이 확 달라졌다.

"얘를 식탁에 데려다 주려고 했어요." 데이지는 가냘픈 소리로 변명했다.

"네가 무섭게 하니까 그래. 얘는 아직 너한테 낯이 익지 않았어. 네 손이 닿는 게 싫은 거야. 자, 빌리, 울지 마라 응. 누나는 괜찮아."

"자, 압빠가 데려다 주마." 당황한 엘머가 달려들었다.

빌리는 눈물이 고인 푸른 눈에 증오의 빛을 띠고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데이지를 노려 보았다. 데이지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런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고르디와 드와이트를 데리고 사 남매가 집을 지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 드와이트를 식탁에 앉히는 것은 언제나 그녀의 책임이었다. 그녀가 제일 나이 많은 연장자였기 때문이다.

에드너가 스스로를 자제하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는 것을 식탁에 갖다 놓아라, 데이지..."

모두 식탁에 앉았다. 지금까지 데이지는(그녀의 동생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자기 집의 빈약한 식탁보다 다른 집에서 밥을 얻어 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는 것을 항상 느껴왔다. 그래서 그들은 점심 때가 되면 메인저 아주머니 집 근처에 모여 웅성거리면서 그 집에서 불러 주길 마음 속으로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며 그 집에서 쫓아낼 때도 그다지 감정을 상하지는 않았다.

데이지는 지금 그 조그만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무척 먹고 싶은 듯 감자나 구운 햄, 파이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메인저 아주머니처럼, 혹은 그들을 동정해서 자기 집에 불러들인 브로커 부인처럼, 그녀의 눈치를 살펴서 좀더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데이지는 파이가 더 먹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도 더 먹으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너는 남의 집 살이를 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집에 있는 것과는 다르단 말이야." 엄마가 일러준 말이 생각났다. 이 말의 뜻을 그녀는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에드너가 말했다. "데이지야, 접시를 씻어라."

말을 하고서 에드너는 아이들을 데리고 옆 방으로 가버렸다. 부엌에 혼자 남아서 조심스럽게 설거지를 하는 데이지의 귀에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의자에 앉아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에드너의 행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 밖을 내다보니 비가 올 듯한 하늘을 배경으로 커다란 가축 우리가 희미하게 서 있었다. 빨리 자동차로 에드너의 어머니 집에 가지 않으려나 하고 데이지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