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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는 테이블 위에 있는 <데일리 텔리그래프>를 집어들었다.
"오늘 신문에 나온 피에로의 광고를 보셨습니까?"
"뭐야? 또 나왔어?"
"바로 이겁니다. '오늘밤, 시간과 장소 같음. 두 번 두드릴 것. 매우 중요함. 당신의 신변 안전도 의심스럽다. - 피에로.'"
레스트레이드가 외쳤다.
"굉장한데! 만일 상대가 이걸 보고 나와 준다면 독 안에 든 쥐가 되는 거야."
"그런 생각으로 내가 광고를 낸 겁니다. 두 분이 오늘밤 8시경에 콜필드 가든에 오시면 이 사건의 해결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홈즈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몰두하고 있었던 사건이 해결의 기미가 보이면, 얼른 생활을 바꿔 자기의 취미 활동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점이다.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면 보다 가벼운 활동에 힘을 쏟는 것이다. 이 날 역시 홈즈는 고대 교회 음악인 라사스의 다음 성가곡(多音 聖歌曲)에 관한 논문 집필에 관심을 돌렸다.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은 마음의 여유를 갖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 날 하루가 유난히 긴 것처럼 느껴졌다. 이 사건이 어떻게 결말이 나느냐에 따라 국가적으로 미칠 영향, 그리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고위층, 우리들이 시도하는 이 시험의 무모함 따위가 모두 내 신경을 피로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가벼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모험에 나서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마이크로프트는 약속대로 글로스터 거리의 지하철 역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오버스타인 저택 지하의 뒷문은 어제밤부터 우리가 열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난간을 넘어가는 일은 싫다고 화를 냈기 때문에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현관 문을 열어 주어야 했다. 9시에는 모두 서재에 앉아서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또 한 시간이 지났다. 11시가 되자, 교회의 큰 시계가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 주었다. 그 소리는 마치 우리의 희망을 부질없다고 비웃는 것 같았다.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마이크로프트는 불안한 듯이 의자에 앉아 1분 동안에 두 번씩이나 회중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홈즈는 입을 다물고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반쯤 눈을 감고 있었으나, 신경은 면도날처럼 예민해진 상태다.
갑자기 홈즈가 머리를 들었다.
"온다!"
조심스럽게 현관을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는 조금 있다가 되돌아왔다. 밖에서 발을 끄는 소리가 들리고, 다음에는 문에 달린 쇠 고리를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홈즈는 우리에게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손짓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관에 하나 놓여 있는 가스등을 빼면 불빛은 전혀 없었다. 홈즈는 현관 문을 열고 검은 그림자가 미끄러지듯 들어오자, 문을 닫고 열쇠를 채웠다.
"이리로!"
홈즈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우리가 기다리던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홈즈는 바로 그의 뒤를 따라왔다. 남자가 놀라서 부르짖으며 달아나려고 하자, 홈즈가 멱살을 잡아 방안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상대가 아직 균형을 잡기 전에 문을 닫고 거기에 등을 기대고 가로막았다. 그 남자는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비틀거리며 기절해서 방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지는 순간, 머리에서 챙이 넓은 모자가 벗겨지고 목도리가 미끄러져 내렸다. 그리고 거기에 발렌타인 윌터 대령의 길고 옅은 턱수염과 기품 있고 단정한 얼굴이 나타났다.
홈즈는 놀라서 혀를 찼다.
"와트슨, 이번에는 우리 얘기에 나를 멍청이라고 써도 좋아. 이런 사람이 걸려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네."
마이크로프트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도대체 이 친구는 누구야?"
"잠수함 건조 부장이었던 제임스 윌터 경의 동생입니다. 그래 그래, 이제 사정을 알 것 같군. 아, 깨어났군. 조사는 내게 맡겨 주는 것이 더 좋겠어요."
우리는 대령의 축 늘어진 몸을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 대령은 일어나 자리에 앉더니, 공포에 떠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이마에 손을 대며, 마치 자기가 지금 보고 듣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어찌된 겁니까? 나는 오버스타인 씨를 찾아왔는데요."
홈즈가 말했다.
"이미 모든 것이 다 드러났소, 윌터 대령. 영국 신사라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얘기요. 오버스타인과 당신이 주고받은 통신문은 모두 우리 손에 들어왔소. 캐드건 웨스트 청년이 죽은 사정도 마찬가지요. 남자답게 죄를 뉘우치고 자백을 해서 조금이라도 동정을 받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 입으로 보다 상세하게 들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오."
대령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우리는 좀더 기다렸지만 대령은 말이 없었다. 홈즈가 말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모조리 알고 있소. 당신이 돈에 쪼들린 것도, 당신 형님이 보관하고 있던 열쇠를 복제한 것도, 오버스타인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해서 오버스타인이 <데일리 텔리그래프>의 광고란으로 연락했던 사실도 알고 있어요. 월요일 밤, 당신은 관청에 갔었지. 그런데, 캐드건 웨스트가 당신의 모습을 보고 뒤를 밟은 거요. 웨스트는 전부터 당신을 의심하고 있었던 거지.
웨스트는 당신이 서류를 훔쳐내는 것을 보았어. 하지만, 그것을 런던의 형님에게 가지고 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위급한 상황을 알리지 않았던 거요. 웨스트는 선량한 시민이었기 때문에 약혼녀까지 거리에 팽개쳐 두고 안개 속에서 당신의 뒤를 밟았지. 당신이 이 집으로 들어오자 웨스트는 여기까지 따라와 당신의 일을 방해한 거야. 그래서 당신은 국가 기밀을 판 데에 더해 무서운 살인까지 저지른 겁니다, 월터 대령."
대령이 외쳤다.
"내가 아니오! 내가 아니야! 하나님께 맹세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