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9 / 전체 11
"거리는 여기서 반 마일 정도지만 서둘 건 없으니 걸어가세. 혹시라도 연장은 떨어뜨리지 말게나. 괜히 수상하다고 해서 붙잡기라도 하면 귀찮으니까 말이야."
콜필드 가든은 넓직한 정면에 돌 기둥이 줄지어 있는 집이었다.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은 멋진 건물이었다. 이웃집에서 어린아이들이 파티라도 벌이는지 귀여운 목소리로 얘기하는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밤하늘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행히 주위에 아직도 안개가 자욱해서 우리의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홈즈는 칸델라에 불을 붙이고 우람한 현관을 비춰 보았다.
"이건 만만치 않겠는데... 열쇠를 채우고 거기에 빗장까지 질러 놓았어. 뒷편 지하 출입구로 들어가는 게 낫겠어. 글쎄 저걸 보라구. 꼬장꼬장한 경찰관이 들어올 때에 대비해서 도망치려고 아치까지 있군. 와트슨, 잠깐 손 좀 빌리세. 나도 자네를 올려줄 테니까."
이윽고 우리 두 사람은 지하 출입구로 내려갔다. 막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기자, 위쪽 안개 속에서 순찰 경관이 걷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멀어지자 홈즈는 출입문을 비틀어 열기 시작했다. 몸을 구부리고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이 한참 보이더니 이윽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우리는 출입구를 닫고 어두운 복도로 들어갔다. 계단에는 양탄자가 깔려 있지 않았다. 홈즈는 계단을 앞서 올라가 모통이를 돌았다. 부채 모양의 노란 빛이 칸데라에서 나와 낮은 창문을 비추었다.
"겨우 찾았군, 와트슨. 바로 이것인 모양이야."
홈즈가 창문을 활짝 열자 나지막하게 칙칙폭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엄청난 굉음으로 변했다. 그 소리와 함께 열차가 어둠 속을 지나갔다. 홈즈는 창틀을 칸데라로 비춰 보았다. 거기에는 기관차의 검댕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 검은 표면의 군데군데에 벗겨진 곳이 있었다.
"여기에 시체를 놓아둔 흔적일 거야. 이봐, 와트슨. 이건 뭘까? 뭐 볼 필요도 없겠지. 틀림없는 핏자국이네."
홈즈는 창틀에 묻어 있는 희미한 얼룩을 가리켰다.
"계단의 돌에도 묻어 있어. 이제 증거는 갖춰진 셈이야. 열차가 멈출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보자구."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다음 열차가 앞서간 열차처럼 땅을 울리며 터널에서 나왔다. 기차는 터널을 나오자 속도를 줄이고 제동을 걸면서 바로 창문 밑에서 멈췄다. 창문에서 열차 지붕까지 거리는 1미터 50센티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홈즈는 조용히 창문을 닫았다.
"여기까지는 들어맞은 것 같네. 어떻게 생각하나, 와트슨?"
"정말 걸작이야. 이렇게 훌륭한 솜씨는 아직까지 못 본 것 같군."
"별로 그렇지도 않네. 시체가 지붕 위에 있었다는 생각에서부터 모든 것이 이어진 셈이지. 그걸 생각해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야. 다른 일은 당연히 거기서 이어지는 것이고... 국가의 중대사가 아니라면 이 사건은, 지금으로선 아직 시시한 사건에 불과해. 그러나 앞으로 곤란한 일들이 많이 남아 있어. 하지만, 이 집에서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나오겠지."
우리는 부엌의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이어져 있는 방 가운데 하나는 검소하게 꾸민 식당으로, 별로 흥미를 끌 만한 것이 없었다. 또 하나는 침실이지만, 이것 역시 별다른 것은 없었다. 나머지 방에 뭔가 있을 것 같은지 홈즈는 계획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책이나 서류 따위가 흩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 서재로 쓰는 방인 것 같다. 홈즈는 재빨리 차례차례 서랍이나 찬장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물건을 뒤졌다. 그러나 그의 엄숙한 표정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났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교활한 자식 같으니라고! 흔적을 모조리 감춰 버렸어. 범죄를 드러낼 만한 물건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어. 위험한 편지는 찢어 버렸거나 가지고 갔을 테지. 이제 이것이 마지막 희망인데..."
그것은 책상에 놓여 있는, 함석으로 만든 조그마한 휴대용 금고였다. 홈즈는 그것을 끌로 비틀어 열었다. 그 안에서는 돌돌 말아 둔 몇 개의 종이가 나왔다. 종이에 숫자나 계산이 가득 쓰여 있었으나 설명은 전혀 붙어 있지 않았다. '수압'이라든가 '1평방인치와 압력'이란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 잠수함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홈즈는 화를 내며 그것을 던져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봉투 하나뿐이었다. 그 안에는 신문지에서 오려 낸 조그만 종이들이 들어 있었다. 홈즈는 테이블 위에 그것을 쏟아내더니 갑자기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뭔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이건 뭘까, 와트슨? 이건 신문 광고를 이용한 연속 통신이야. 인쇄와 종이로 봐서 <데일리 텔리그래프>의 개인 광고란이네. 지면 오른쪽 제일 위에 있는 거야. 날짜는 없지만 통신문의 순서는 알 수 있지. 아마 이것이 맨 처음 통신일 거야.
'통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건 승낙함. 카드 주소로 상세하게 알려주기 바람 - 피에로'
다음은 이거라네.
'복잡해서 이해하기 힘들다. 자세한 설명을 바람. 현품과 교환 조건으로 사례금을 준비하겠다. - 피에로.'
그 다음은, '사정이 긴박해졌다.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취소할 수밖에 없다. 만날 날짜를 편지로 통지할 것. 이쪽에서는 광고로 알리겠다. - 피에로.'
마지막은... '월요일 밤 9시 이후. 두 번 두드릴 것. 우리 둘뿐이다. 의심할 필요 없다. 현품과 교환 조건으로 현금 지불한다. - 피에로.'
완전한 기록이 갖춰져 있네. 와트슨, 이 광고의 상대방을 잡을 수만 있다면 말이야."
홈즈는 테이블을 손가락 끝으로 두드리면서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이 집은 이 정도 해 두면 충분해. <데일리 텔리그래프> 신문사로 마차를 몰아 오늘 일을 마무리짓기로 하세."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자 약속한 대로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집으로 찾아왔다. 셜록 홈즈는 우리가 어제 한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강도와 같은 일을 한 것을 들려주자 경감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 경찰관은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홈즈 씨, 당신이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성과를 올리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당신이나 와트슨 씨 두 분 모두 곧 봉변을 당할 겁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조국 영국을 위해서 한 일입니다. 와트슨 군, 그렇지 않은가? 우린 조국이라는 제단의 순교자인 셈이지. 그건 그렇고,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훌륭한 일이야, 셜록. 정말 감탄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