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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셜록, 세밀하게 자료를 모으는 게 문제야. 만약 내게 상세한 자료를 알려준다면, 나 역시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멋진 의견을 되돌려줄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거나, 철도 감시원에게 물어서 정보를 캐낸다거나, 확대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서투르단 말이야.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국가에 뭔가 공을 세워 표창을 받고 싶으면..."
하지만 홈즈는 싱글거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형님, 나는 오직 승부 자체를 즐길 뿐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확실히 흥미가 있군요. 그러니 기꺼이 나서서 조사해 보겠어요. 좀더 자세하게 얘기를 해 주시죠."
"좀더 자세한 내용은 이 서류에 적어 왔다. 도움이 될 만한 주소도 두서너 개 적어 놓았어. 그 서류의 보관 책임자는 유명한 제임스 월터 경이야. 오랫동안 관청에 근무한 훌륭한 신사여서, 그 양반이 받은 훈장과 직위를 일일이 적는다면 아마 인명사전에 두 줄 이상 차지할 걸? 그 양반은 머리가 백발이 된 지금까지 오래 근무해온데다 신분이 높은 가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고, 특히 그 애국심으로 봐서 절대 나라를 팔아먹을 사람은 아니지.
금고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두 명인데, 제임스 경이 그 중 하나야.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월요일 근무 시간 중에는 서류가 분명히 기밀실에 있었어. 그리고 제임스 경은 3시경에 열쇠를 가지고 런던으로 나갔어.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날 밤에는 버클리 광장에 있는 싱클레어 제독의 저택에 있었어."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틀림없어. 제임스 경이 울리지를 떠난 것은 동생 발렌타인 월터 대령이, 그리고 런던에 도착한 건 싱클레어 경이 증언했어. 그러니까 제임스 경은 이 사건과 직접 관계는 없다고 봐야겠지."
"또 한 사람,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주임 사무관인 제도사 시드니 존슨이야. 40세의 기혼자로 아이가 다섯이나 있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대체적으로 근무 성적은 좋은 모양이야. 동료간 평판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아주 부지런한 편이야. 그의 말로는 월요일 저녁엔 근무를 마친 후 줄곧 집에 있었고, 시계줄에 매달아 놓은 열쇠는 한번도 풀어놓은 일이 없었다는 거야."
"캐드건 웨스트에 대해서 말해 주시죠."
"근무한 지 10년째로,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 왔어. 성미가 급하고 흥분하기 쉽다고 하지만, 정직하고 착실한 사람이어서 나쁜 평판을 들은 일이 없어. 직장에서는 시드니 존슨 다음의 지위에 있고, 직무상 매일 설계도를 만질 기회도 있었지. 그밖에 설계도를 취급한 사람은 없다는군."
"그 날 밤 설계도를 금고에 넣은 사람은 누구지요?"
"주임 사무관인 존슨이야."
"그렇다면 설계도를 훔쳐낸 사람이 캐드건 웨스트라는 건 분명하군요. 그의 시체에서 설계도가 발견되었으니까, 그것이 결정적인 증거 아닙니까?"
"하지만 셜록, 몇 가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어. 첫째로 무엇 때문에 그걸 가지고 나왔느냐 하는 거야."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걸 팔면 수천 파운드쯤은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어."
"그밖에 설계도를 런던으로 가져갈 만한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지."
"그러면 그걸 팔 작정이었다고 가정하고 생각해야겠군요. 웨스트는 돈 때문에 설계도를 끄집어냈다... 그런데 그것은 여벌 열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사실은 열쇠가 여러 개 필요하지. 건물이나 사무실 문도 열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여러 개의 여벌 열쇠를 가지고 있었겠지요. 그리고 기밀 설계도를 팔려고 런던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다만 다음날 아침에 분실된 것이 탄로 나기 전에, 금고에 도로 갖다 놓으려고 했겠지요. 그리고 런던에서 그런 매국 행동을 하는 동안 살해된 거겠지요."
"어떤 식으로 살해됐다는 건가?"
"울리지로 돌아가려고 할 때 살해되어 열차 밖으로 내던져진 것으로 가정해봅시다."
"시체가 발견된 올드게이트는 울리지로 가는 방향인 런던 브리지 역에서는 상당히 떨어진 지점이야."
"런던 브리지를 통과해 버린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가령 차 안에서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가 싸움이 벌어져 목숨을 잃었다거나, 아니면 차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다가 철로에 떨어져 죽었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나서 상대방은 그냥 문을 닫아버리고... 어느 쪽이건 안개가 짙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까지의 정보로는 그 이상 생각할 수도 없겠지... 하지만, 우리가 아직 검토해보지 않은 점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여러 가지로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이런 가정을 해보자. 즉 캐드건 웨스트가 이전부터 그 설계도를 런던으로 가져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웨스트는 당연히 외국의 스파이와 만날 약속을 하고, 그 날 밤에는 다른 약속을 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그는 극장표를 두 장 사서 약혼녀와 함께 가다가 갑자기 모습을 감춰버린 거야."
초조하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끼어들었다.
"아마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고 그랬을 테지요."
"정말 이상한 일이야. 아무튼 그게 첫째 의문이고, 두 번째 의문은 이거야. 웨스트가 런던에 가서 외국 스파이와 만났다고 가정하자. 아침까지는 서류를 도로 갖다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류가 없어졌던 사실이 들통이 날 테니까. 그가 훔쳐낸 것은 열 장이었는데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것은 일곱 장뿐이었어. 나머지 세 장은 어떻게 했을까? 아무 대가도 없이 순순히 내주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스파이 행위를 해서 받은 대가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의 주머니에는 많은 돈이 있어야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거든."
"그거야 전혀 의문의 여지가 없이 분명한 것 같은데요..." 레스트웨스트가 말했다. "웨스트는 서류를 팔 생각으로 스파이와 만났습니다. 그런데 흥정이 잘되지 않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겁니다. 스파이가 그 뒤를 밟았습니다. 그래서 열차 안에서 그를 죽이고 중요해 보이는 서류를 빼앗은 다음, 시체를 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잘 설명되지 않습니까?"
"어째서 차표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차표가 있으면 스파이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 알려지니까요. 그래서 스파이는 웨스트의 주머니에서 차표를 꺼냈을 겁니다."
홈즈가 말했다. "레스트레이드 씨, 아주 훌륭한 추리입니다. 당신의 이론은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이미 끝장입니다. 우리는 때를 놓친 거요. 웨스트는 죽었고, 브루스 파팅턴 잠수함 설계도는 벌써 대륙으로 건너갔을 테니까.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없는 셈이지요."
홈즈의 말에 마이크로프트는 펄쩍 뛰면서 말했다.
"그건 안돼! 내 예감으로 봤을 때 그 설명에는 반대야. 셜록, 힘을 좀 써줘야겠다. 너는 범행 현장으로 가야 해. 관계자를 모두 만나야 해. 이 잡듯이 샅샅이 조사하는 거야. 네가 이렇게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홈즈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자, 가세. 와트슨. 레스트레이드 경감도 한두 시간 시간을 내줄 수 있겠습니까? 일단 먼저 올드게이트 역으로 가봅시다. 그럼, 형님... 안녕히 가세요. 저녁까지는 뭔가 보고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미리 말씀드리는데,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