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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명한 관리는 푸른 잔디가 템즈 강 기슭까지 이어지는 훌륭한 저택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안개가 개이기 시작하고 엷고 축축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고 있었다. 엄숙한 표정의 집사를 우리를 맞이하러 나왔다.
"제임스 경을 찾으신다구요? 제임스 경은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홈즈는 깜짝 놀라 소리를 높였다.
"아니, 뭐라고요! 어떻게 해서 돌아가셨습니까?"
"들어오셔서 동생 되시는 발렌타인 대령님을 한 번 만나 보시지요."
"그럼, 그렇게 해 주시오."
집사는 우리는 조명을 어두운 응접실로 안내했다. 얼마 있다가 키가 크고 용모가 단정한, 약간 턱수염을 기른 50세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가 죽은 제임스 경의 동생인 발렌타인 대령이었다. 미칠 것 같은 눈, 젖은 볼, 흩어진 머리카락 등이 이 집에 갑자기 닥친 불행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령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무서운 불상사 때문입니다. 형님은 각별히 명예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었습니다. 도저히 이런 사건을 견뎌낼 수 없었던 겁니다. 형님은 평소에도 자신의 부서가 유능하다는 것을 늘 자랑하고 계셨으니까요. 이번 일은 형님으로선 회복 불가능한 타격이었습니다."
"형님을 찾아 뵙고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들을 생각이었습니다만..."
"그건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형님에게도 완전히 수수께끼였습니다. 형님이 알고 있던 것은 모조리 경찰에 말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건 캐드건 웨스트의 소행이라고 믿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밖의 다른 일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그러시더군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혹시 무슨 단서가 될 만한 일이라도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저 역시 신문에서 읽었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밖에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홈즈 씨, 실례인 줄은 압니다만, 지금 보시다시피 집안이 아주 어수선하니 가급적 일을 빨리 끝내 주셨으면 합니다."
마차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서 홈즈가 말했다.
"사건이 뜻밖의 방향으로 나가는군. 자연사일까, 아니면 자살일까? 자살이라면 직무를 소홀히 한 데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일단 그 문제는 뒤로 미루기로 하세. 자, 지금부터 캐드건 웨스트의 집으로 가보세."
울리지의 교외에 있는, 손질이 잘된 자그마한 집에는 캐드건 웨스트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나이 많은 어머니는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 부인에게선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곁에 얼굴이 하얀 아가씨가 있어 스스로 자기 이름을 밝혔다. 그녀는 웨스트의 약혼녀이자, 사건이 있던 날 밤 웨스트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인 바이올릿 웨스트베리 양이었다.
바이올릿은 이렇게 말했다.
"홈즈 씨, 저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 밤부터 한숨도 자지 못하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모르겠어요. 캐드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용감하며,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었어요. 자기가 맡고 있는 나라의 비밀을 파느니 차라리 자기 오른팔을 잘라냈을 겁니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사건은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고, 도저히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런 사건이 생긴 건 사실 아닙니까, 웨스트베리 양."
"예, 하지만,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웨스트 씨는 돈을 욕심내는 편이었나요?"
"아닙니다. 뭐 욕심이 있다 해도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또 봉급도 충분했습니다. 200-300파운드 정도 저금도 있어서, 내년 1월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거든요."
"뭔가 마음이 흔들리는 눈치는 없었습니까? 웨스트베리 양 생각나는 건 남김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홈즈의 날카로운 눈은 바이올릿의 태도가 약간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바이올릿은 얼굴을 붉히면서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녀는 드디어 말을 꺼냈다.
"예,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뭔가 걱정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게 언제부터였습니까?"
"바로 지난 주부터였어요. 가만히 생각에 잠겨서 뭔가 걱정이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저는 그에게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직장에서 뭔가 걱정이 되는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당신에게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그 이상은 캐물을 수 없었습니다."
홈즈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 다음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웨스트베리 양. 비록 웨스트 씨에게 불리한 일이라고 생각되더라도 말해 주셔야 합니다. 그게 반드시 웨스트 씨에게 불리하다고만 볼 수는 없으니까요."
"이 이상 드릴 이야기는 없습니다. 한두 번 저에게 당장 뭔가 말할 것 같은 눈치를 보인 적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엔가 그 비밀이 아주 중대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외국의 스파이라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엄청난 돈도 낼 것이라고 한 기억이 나요."
홈즈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그밖에 뭐 다른 건 없습니까?"
"그런 점에서 관청은 별로 주의 깊지 못하다고 말했어요. 나라를 배신하는 인간이 쉽게 설계도를 가져갈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말은 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까?"
"예,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그럼, 마지막 날 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는 극장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안개가 너무 짙어서 마차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걸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관청 바로 앞에 이르자 그 사람이 갑자기 안개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말입니까?"
"무슨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기다렸지만, 그 사람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12시경에 그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된 거예요. 아아, 홈즈 씨. 제발 그 사람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세요. 그 사람은 명예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이었습니다."
홈즈는 슬픈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 와트슨.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다음 장소는 서류를 도둑맞은 바로 그 관청이야."
마차가 덜컹거리며 달리기 시작하자 홈즈가 말했다.
"그 청년은 벌써부터 수상하긴 했지만, 조사해보니 더욱 수상해지는군.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는 것도 충분히 범죄의 동기가 되지. 돈에 탐이 났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있었을 테지. 그 아가씨에게 자기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나라를 파는 일에 끌어들이려고 했던 거야. 이거, 아무래도 쉽지 않겠는데."
"하지만 홈즈. 그래도 웨스트의 품성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성실하고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었다지 않은가. 게다가, 약혼녀를 거리 한복판에 팽개쳐두고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은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바로 그거야! 확실히 그 점이 의심스러워. 그러나 그 의문만으로는 이 사건의 커다란 파장을 잠재울 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