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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아내를 맞아 들이려고 하니, 드라보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어. 이 문제를 회의에 붙이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어. 비리 휘슈만이 나중에 '아가씨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말하더군. 드라보트는 결국 화를 터뜨렸지. 인브라의 석상 앞에 서서 '도대체 내가 뭐가 문제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 거야.'내가 개냐? 너희들의 딸의 상대로 부족하다는 거냐? 나는 이 나라를 위해 모든 힘을 바쳤다. 아프가니스탄 무슬림들이 공격해오는 것을 막은 사람이 누구야?' 사실 그 일은 내가 해낸 것이지만 드라보트는 그런 걸 기억해낼 상황이 아니었어. '누가 총을 사들였나? 다리를 고친 사람이 누구야? 저 돌에 새겨진 기호의 지부장이 도대체 누군지 말해봐!' 그는 그렇게 말하고 회의 때 의자 대신 앉았던 둥근 나무를 손으로 딱딱 내리쳤어."
"비리 휘슈는 한 마디도 못하고, 다른 녀석들도 가만히 있었지. '이봐, 진정하라구.' 내가 말했어. '역시 아가씨들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어. 우리 조국에서 모두 그렇게 하고, 여기 사람들은 영국인과 꼭 같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드라보트는 버럭 화를 냈지. '왕의 결혼은 국가적인 행사다.'라면서 말이야. 그는 회의실에서 나가 버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땅만 쳐다보면서 침묵을 지켰지."
"나는 비리 휘슈 바슈가이 추장에게 이 문제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알아봤어. '친구에겐 숨기지 말고 말해야 하네' 하면서 말이야. '잘 알지 않습니까?'하고 비리 휘슈가 대답하더군. '뭣이나 다 알고 있는 당신에게 일부러 말씀드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인간의 딸이 신이나 악마하고 결혼할 수 있습니까? 이건 보통 일이 아니예요.'
성경에 비슷한 얘기가 있었던 걸 난 기억했지. 그러나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가 신이라고 믿어온 녀석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더군.
'신은 뭐든 할 수 있어.' 난 말했어. '만약 우리 왕이 누구의 딸을 좋아하게 되면 그 딸이 죽게 버려두지 않아.'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리 휘슈가 대답했어. '이곳 산중에서는 여러 신이나 악마들이 때로 인간의 딸과 결혼하지만 그러고 나면 그 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됩니다. 당신들은 저 석상에 새겨진 기호를 알고 있어요. 그걸 아는 자는 신 뿐입니다. 그 지부장 표시를 보이기 전에는 나도 당신들이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난 그 제 3 급 결사단원 표시가 전혀 우연의 일치였다는 걸 털어놓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어. 그날 밤 내내 산중턱 모든 사원에서 뿔 피리가 울리고 어떤 아가씨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지. 어떤 사제가 말해주기를, 그 아가씨가 왕에게 시집 오기로 결정됐다는 거야.
'이런 어리석은 소동은 그냥 둘 수 없어.' 드라보트가 말했어. '난 너희들 관습에 간섭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난 어쨌든 아내를 얻어야 해.'
'저 아가씨는 지금 무서워하고 있는 겁니다.' 그 사제가 대답했지. '신에게 시집가면 반드시 죽는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지금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잘 위로해줘.' 드라보트는 말했어. '그렇잖으면 이 개머리판으로 너희들을 갈겨 주겠어. 두 번 다시 위로 따위를 할 수 없도록 말이야.' 그리곤 그는 다음날 아침 자기 손에 들어올 여자를 생각하면서 한밤중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녔어. 아무래도 침착해질 수가 없었던 거야. 설혹 스무 번이나 왕 노릇을 했다 해도 외국에서 여자를 맞아들인다는 것은 참 시끄러운 일이라는 걸 안 거지."
"다음 날 아침 드라보트가 아직 자고 있을 때 내가 일찍 일어나 보니 사제들이 여기저기서 쑥덕쑥덕 하고, 추장들도 얼굴을 맞대고 수근거리고 있더군. 그러면서 날 힐끗힐끗 보는 거야.
'무슨 일이 있나, 비리 휘슈?' 난 모피 옷을 걸친, 풍채가 당당한 바슈가이 추장에게 물었어. '확실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는 대답했지. '지금 임금님의 결혼을 중단시키는 것이 왕이나 당신, 그리고 내 자신에게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난 말해줬지. '하지만, 이봐. 비리 휘슈 당신은 우리에게 맞서기도 했고, 또 우리 편에서 싸우기도 했으니까 말하지. 왕도 나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만들어낸,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야. 맹세코 우린 그저 평범한 인간이야.'
'아마 그렇겠지요.' 비리 휘슈가 대답했어. '그래도 역시 유감이군요.' 그리고 나서 녀석은 잠시 모피 외투에 고개를 박고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어. '임금님, 당신이 인간이건 신이건, 또 악마라 할지라도 그건 상관 없소. 오늘 난 당신 곁에 있겠어요. 난 20명의 병사를 데려왔지만, 그들은 내 명령에 따를 겁니다. 우린 이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바슈가이에 가 있기로 합시다.'
밤에 눈이 조금 내려, 북쪽 하늘에 두껍게 드리워진 어두운 구름을 빼면 모든 것이 아주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어. 드라보트 녀석은 팔을 휘젓는가 하면 발을 구르면서 그림 속 인물보다 더 기쁜 표정으로 머리에 왕관을 쓰고 나오더군.
'더 이상 부탁하지 않겠어. 제발 그만 두게.' 난 소리를 죽여 말했지. '비리 휘슈가 그러는데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네.'
'내 백성이 폭동을 일으킨다고?' 드라보트는 말했어. '별 일 아닐 거야, 피치. 여자를 얻지 않겠다니, 바보 같군. 색시는 어디 있지?' 그는 마치 수 당나귀처럼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추장과 사제들을 모두 소집해. 그리고 황제에게 어울리는 황후를 어떻게 골랐는지 보여달라고 해.'
일부러 소집할 필요도 없었지. 소나무 숲 가운데 공터로 총과 창을 든 녀석들이 전부 모여 있었어. 사제 몇 명이 신부를 데리러 조그만 사원으로 내려가자 죽은 사람을 부르는 것 같은 뿔 피리 소리가 울리더군. 비리 휘슈는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되도록 다니엘 옆에 붙어 있었고, 그 뒤에는 20명의 부하가 구식 총을 들고 서 있었지. 녀석들은 모두 키가 6피트가 넘는 놈들이었어."
"나는 드라보트 옆에 서 있었지. 신부가 올라오는 걸 보니 대단한 미인이더군. 은과 터어키 구슬로 장식했지만,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지. 신부는 자꾸만 사제들 쪽을 쳐다 보더군.
'이 정도면 됐어.' 드라보트가 신부를 내려다 보며 말했어. '이봐, 아가씨. 무서워할 필욘 없어. 자, 와서 내게 키스해줘.' 그가 신부를 안자, 신부는 두 눈을 감고 비명을 지르더니 얼굴을 그의 타는 듯 붉은 수염에 갖다 댔는데, 그만...
'이 계집이 나를 물어 뜯었어!' 드라보트는 손으로 자기 턱을 두들기면서 말했어. 과연 그 손으로 빨간 피가 흐르더군. 비리 휘슈와 구식 총을 든 두 사람의 병정이 그의 어깨를 잡고 바슈가이 사람들 쪽으로 끌어 당겼지. 사제들은 악다구니를 써대더군. '신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냥 보통 인간이야!' 난 간이 서늘해졌지. 사제 한 놈은 똑바로 내게 달려들고 그 뒤 병사들은 바슈가이 사람들에게 총을 쏘아대기 시작하더군.
'전능하신 하나님!' 다니엘은 말했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돌아와요! 피해요!' 비리 휘슈가 말했어. '모든 게 끝났어요. 폭동이 일어났어요. 바슈가이로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해 봅시다.'
난 내 부하들 즉 정규군들을 진정시켜 보려고 했지만 허사였지. 그래서 별 수 없이 마르티니 총을 쏘아서 그 거지 같은 녀석 세 명을 한꺼번에 쓰러뜨렸어. 골짜기는 온통 울부짖고 외치는 소리로 가득 찼어. 어느 놈이나 한결같이 '신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냥 보통 인간이다!'하고 떠들어 대는 거야."
"바슈가이 병사들은 모두 용감화게 비리 휘슈 편에 붙어 있었지만, 그들의 구식총은 위력이 가브르제 총의 절반도 못되지. 네 사람이 총에 맞았어. 다니엘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소처럼 고함을 지르고 있었어. 비리 휘슈는 그가 사람들 앞으로 뛰어가려는 것을 막느라고 무척 고생을 했지.
'이제 버틸 수 없소.' 비리 휘슈가 말했지. '골짜기로 내려가. 모두 적이다.' 구식총을 든 병사들이 달려가자 우리도 드라보트를 억지로 끌고 골짜기를 내려갔지. 그는 무섭게 몸부림을 치며 '나는 왕이다'하고 외쳐댔어. 사제들은 우리에게 큰 돌을 굴러 떨어뜨리고 정규군이 총을 탕탕 쏘아대는 바람에 살아서 골짜기에 도착한 사람은 드라보트와 비리 휘슈와 나를 제외하면 겨우 여섯 명 뿐이었어."
"놈들은 사격을 중단했지만 이번엔 사원 안에서 요란스럽게 뿔 피리를 불어대더군. '도망가요. 빨리 도망가요!' 비리 휘슈가 말했어. '놈들은 우리가 바슈가이에 도착하기 전에 모든 부락에 파발을 보낼 겁니다. 바슈가이라면 당신들을 보호할 수 있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소.'
내 생각으론, 그때 다니엘의 머리가 돌아버린 것 같아. 그는 마치 목구멍을 찔린 돼지처럼 여기저기 힐끔거리더군. 그는 혼자 돌아가 맨손으로 사제들을 죽일 생각이었던 거야. '난, 황제야!' 다니엘이 그러더군. '그리고 내년엔 여왕 폐하의 기사가 되는 거야.'
'맞아, 단' 내가 그랬지. '그래도 지금은 빨리 달아나야 해.'
'이건 네가 군대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야. 이건 네 잘못이야.' 그는 말했어.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는 걸 모르고 있다니. 이 멍청한 기관수, 선로공, 기차를 공짜로 타는 가짜 선교사, 도둑놈!' 그는 바위에 걸터앉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게 마구 욕설을 퍼부었지. 이런 곤경에 처한 건 순전히 단의 바보짓 때문이었지만, 당시 난 완전히 절망해서 그걸 따질 기운도 없었어.
'미안해, 단' 나는 말했어. '하지만 여기 놈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이 소동은 우리가 57년에 겪은 사건이나 마찬가지야(1857년 인도인들의 폭동. 이 사건을 이용, 영국은 인도에 대한 통제를 공고히 했다). 그렇지만 바슈가이에 도착하면 또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럼 바슈가이로 가자.' 단이 말했어. '그리고 내가 한 번 더 여길 올 때는 맹세코 골짜기를 싹 쓸어서 고양이 새끼 한 마리 남겨놓지 않겠어.'